단 한 번의 사랑으로 우리는 나머지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영화 <말없는 소녀>는 1981년 아일랜드 시골을 배경으로 한다. 아홉 살 코오트는 집 안에서 좀처럼 자신의 자리를 잡지 못한다. 시끄러운 식구들 틈에서 눈치를 보다가 침대 밑에 숨어 있곤 한다. 아이는 말이 없고, 어른들은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다섯째 아이를 임신한 엄마는 집안일과 아이들 돌보는 일에 지쳐 있다. 술과 도박에 빠진 아빠는 가족을 돌보는 데 무심하다. 버터를 만들고, 동생들을 씻겨 성당이나 학교에 보낼 채비를 하고, 송아지를 돌보는 일까지 엄마의 하루는 쉴 틈이 없다. 그런 집에서 코오트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아이처럼 보인다. 그러다 엄마가 출산을 앞두자 코오트는 여름 동안 친척인 킨셀라 부부의 농장에서 지내기로 한다. 아빠는 아이를 데려다만 놓고 짐도 내려주지 않은 채 돌아간다. 낯선 집에 남겨진 아이는 그곳에서 자신이 알던 것과는 다른 어른들을 만난다.
사실 낯선 집에 맡겨진 아이에 대한 클리셰가 있어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어떤 시련과 고난이 아이에게 생길까 하는.
첫날밤 코오트는 긴장한 탓에 침대에 오줌을 싼다. 코오트는 더 주눅이 든다. 집에서는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어디론가 도망가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에드나는 아이를 나무라지 않는다. 오래 비워둔 방이라 습기가 찼을 거라며, 오히려 아이를 그런 곳에서 재운 자신이 미안하다고 한다. 그리고 코오트와 함께 매트리스를 계단 아래로 끌고 내려가 햇볕에 넌다. 둘이 힘을 합쳐 해냈다고 말해 주고, 수고했다며 베이컨 구이를 해준다. 아이의 실수를 자기 잘못으로 돌리는 어른은 코오트에게 낯설기만 하다. 실수를 했다고 해서 혼나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이는 그렇게 배워 간다.
숀은 에드나처럼 살갑게 다가오는 사람이 아니다. 말수도 적고 무뚝뚝하다. 하지만 어느 날 코오트에게 우체통까지 달려가 편지를 가져오라는 심부름을 시킨다. 코오트는 우체통까지 가는 길을 달린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몸을 숨기던 아이가 이제는 햇볕 아래서 마음껏 달린다. 숀은 코오트가 돌아오는 시간을 재어준다. 그리곤 앞으로 더 빨라질 거라고 말한다. 그 말에는 어서 따라오라는 재촉이 없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질 수 있고, 그렇게 성장할 거라는 믿음이 담겨 있다. 코오트는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기다려 주는 경험을 처음으로 한다.
킨셀라 부부에게도 상실의 시간이 있었다. 그들은 어린 아들을 잃었다. 아이를 잃은 집에 다른 아이가 찾아온 것이다. 코오트는 그 집에서 충분히 먹고 씻으며 보살핌을 받는다. 무엇보다 자신의 존재를 귀찮아하지 않는 어른들과 함께 살아간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것을 다른 어른에게서 받는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온다. 영화는 가족이라는 이름이 반드시 사랑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 반대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도 누군가의 삶을 깊이 돌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름이 끝나고 코오트는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제 코오트는 킨셀라부부를 만나기 전과 같은 아이는 아니다. 사랑받은 기억이 생겼기 때문이다. 자신을 타박하지 않고 매트리스를 함께 널어 준 사람, 달려오는 시간을 재어 주던 사람, 말하지 않아도 곁에 있어 주던 사람의 기억은 코오트에게 다른 삶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었다. 돌아갈 집은 여전히 차갑고, 일상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코오트는 이제 자신이 어떤 대접을 받아야 하는 사람인지 안다.
마지막 장면에서 코오트는 떠나는 숀의 차를 향해 달려간다. 대문 앞에서 숀에게 매달린 아이는 아빠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숀에게 안겨 귀에 속삭이듯 “아빠”라고 부른다. 그 말은 다가오는 친아빠를 알리는 말일 수도 있고, 자신을 안고 있는 숀에게 건네는 말일 수도 있다. 무엇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침대 밑에 숨던 아이가 이제는 누군가를 붙잡기 위해 달려간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사랑을 받기만 하던 아이가 처음으로 자신이 원하는 사람에게 다가간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 <맡겨진 아이>를 영화로 옮긴 <말없는 소녀>는 많은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같은 작가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도 이런 절제를 읽을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외면하던 수녀원의 비밀을 마주한 석탄 상인 펄롱은 결국 그곳에 갇혀 있던 소녀를 데리고 나온다. 그의 행동은 거창하지 않다. 그저 자신이 본 것을 모른 척하지 않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을 할 뿐이다. 키건의 이야기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대개 그런 순간들이다. 누군가를 돕겠다는 말보다 실제로 내민 손이 기억에 남는다.
코오트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았던 기억이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오래 지탱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힘든 날마다 그 여름을 떠올릴 수 있다면, 자신이 언제나 외면받아야 하는 아이는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머지 삶을 살아갈 힘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