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결의 잔혹함과 영원성<헤어질 결심>

헤어질 결심이라 쓰고, 잊히지 않을 결심이라 읽는다

by모아

산에서 떨어져 죽은 남자의 시신 앞에서 그의 아내 서래와 사건을 맡은 형사 해준이 만난다. 잠을 줄여가며 사건을 파고드는 해준의 시선을 서래는 피하지 않는다. 남편이 죽었는데도 이상할 만큼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여자. 해준은 그녀를 의심하면서도 자꾸 눈길이 간다. 망원경으로 지켜보며, 먹고 걷고 잠드는 시간까지 알아버린다. 수사로 시작한 일이지만 한 사람을 오래 들여다보다 보니 의심과 사랑의 경계가 흐려진다. 취조실에서 초밥을 나눠 먹고, 휴대폰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말을 번역한다. 잠 못 드는 밤을 함께 보내면서, 서로에게 깊이 빠져든다.


해준은 결국 서래가 남편의 죽음에 관여했음을 알아낸다. 서래가 간병하던 할머니의 휴대전화로 알리바이를 만든 사실도 밝혀진다. 해준은 누구보다 서래를 오래 지켜보고도 진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해준은 자신이 붕괴되었다고 말하며, 증거가 담긴 휴대전화를 바다에 버리라고 서래에게 시킨다. 형사가 지켜야 할 선을 넘어 그녀를 감싼 뒤 떠나버린다.



그렇게 해준이 사랑을 끝낸 순간, 서래의 사랑이 시작된다.


서래를 감싸기 위해 원칙을 저버린 일은 해준에게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해준은 자신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하고 서래에게서 돌아선다. 사건이 끝나면 벽에 붙은 사진을 떼어내듯, 서래와의 관계도 정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려 했을 것이다. 그래야 무너진 자신의 삶을 다시 붙들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해준은 자신이 이별이라고 여긴 순간이 서래에게는 사랑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은 안개 낀 이포에서 다시 만난다. 서래에게는 새 남편이 있고, 그 남편도 죽는다. 해준은 또다시 서래를 의심한다. 서래는 해준을 다시 만나려고 사건을 만든 걸까. 해준이 떼어낸 사진 속 자신을 다시 벽에 붙이고 싶었던 걸까. 씁쓸하다.



서래는 해준이 남긴 녹음 파일을 반복해서 들으며 살아왔다. 해준이 자신의 삶이 무너졌다고 말하던 그 목소리를 서래는 사랑의 고백으로 간직해 왔다.


둘은 서로 사랑했지만 같은 때에 사랑하지는 못했다. 밤마다 어두운 방에서 죽은 이들의 사진을 바라보며 잠 못 이루었을 해준을 상상해 본다. 범인을 잡으면 사진을 떼어내고, 사건이 끝나면 다음 사건으로 넘어간다. 해준에게는 익숙한 일일 것이다. 서래는 해준이 자신에게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안다. 첫 사건이 끝나자 해준은 그녀를 떠난다. 서래는 해준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대신 이포 바닷가의 모래를 파고 들어가 밀물을 기다린다. 해준이 사건을 해결하듯 자신을 찾아내 끝내버리는 일만은 막으려던 것인지도 모른다.


서래는 해준이 자신을 잊고 사는 것보다 찾아 헤매기를 바랐던 걸까. 그것이 벌이었는지 사랑이었는지 서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해준은 바닷가를 헤매며 서래의 이름을 부른다. 파도가 밀려오고 모래가 잠긴다. 그는 그녀를 찾지 못한다. 사건은 풀려야 끝난다. 범인을 찾고 증거를 확인하고 더는 의심할 것이 없을 때 형사는 사건에서 벗어난다. 사랑이 사건이라면, 해준에게 서래는 끝내 풀지 못한 사건으로 남는다. 다른 사건이라면 사진을 떼고 넘어가겠지만, 서래는 해준이 사랑한 사람이기에 끝낼 수 없다.





제목이 그래서 묘하다. 헤어지기로 결심한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질 수 없게 된다. 서래는 바다에 묻히고, 해준은 그 바다를 떠나지 못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성복 시인의 시 한 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시에서 화자는 사랑하는 여인을 따라 돌 속에 들어가고, 끝내 혼자 바닷물에 잠긴다. 안개 낀 바닷가에서 찾지 못할 이름을 부를 해준이 나직하게 이 시를 읊을 것만 같았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이성복 <남해 금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