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ep15 지옥에서 탈출한 여자

by윤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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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이제 작가야.”


등단 소식을 듣자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엄마였다. 난 어릴 때부터 엄마를 졸졸 따라다녔다. 엄마가 너무 좋아서 항상 좋은 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항상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도 4년 내내 장학금 받고 다니고. 졸업하자마자 취직도 해서 열심히 돈을 벌었다.


어릴 때 엄마를 가장 기쁘게 하는 방법은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는 거였다.


엄마는 매번 상을 받을 때마다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을 “우리 딸은 나중에 훌륭한 작가가 될 거야”라고 말하며 날 안아줬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난 매번 글짓기 대회를 하는 날만 기다렸다.


그런데 가정폭력으로 인한 이혼으로. 엄마를 한 번에 무너뜨릴 거라곤. 감히 상상도 못했다.


엄마는 결혼 기간 내내 나를 걱정했다. 점점 말라가는 몸과. 생기를 잃어버린 표정. 끊이지 않는 잔병치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다 아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난. 더 말을 아끼게 되었다. 엄마와는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세상에서 온전히 나를 지지하는 내 편이지만.


그렇게 말도 못 하게 소중하게 키운 귀한 딸이. 지옥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는걸.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알고 있었다. 엄마와 태아가 탯줄로 연결되어 있듯이. 보이지 않는 어떤 연결고리로 모든 것은 공유되고 있었다.


말을 해야만 아는 건 아니었다.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들이.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을 전달했다.


“우리 딸... 너무 축하해.”


엄마한테 등단 사실을 알리자 엄마는 눈망울이 촉촉해진 채로 날 쳐다봤다. 그리고 나를 끌어안았다. 엄마 품에 파묻히니. 엄마의 가슴 벅찬 행복이 온전히 느껴졌다. 힘들었던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한참을 울었다.


“엄마... 그동안 너무 마음 아프게 해서 미안해.”


죽을 위기에서 벗어나 이혼했을 때. 가족들한테... 그리고 엄마한테 가장 미안했다.


나보다 더 힘들었을 거라는 걸 알아서. 더 미안했다. 어쩌자고 난 이런 일을 당한 걸까. 어쩌자고 난... 가족들까지 지옥으로 끌어들인 걸까.


“빛나야. 엄마는 우리 딸이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었어... 너무 장하다...”


엄마는 내가 이혼했다고 해서. 돌싱녀가 됐다고 해서. 나를 무안하게 하거나 깎아내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엄마가 힘들었던 건. 나를 영영 잃을 뻔했다는 그 공포감이지. 돌싱녀라는 타이틀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래서 엄마한테 더 미안했다.


엄마는 그 일을 겪은 후 “너처럼 착하고 예쁜 사람한테. 왜 그런 시련을 줬을까. 하늘도 무심하지.”라고 말했다.


내가 왜 그런 당했는지. 제대로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머리를 맞대어 같이 생각해 봤지만.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우울증으로 상담받을 때. 상담사 선생님이 “빛나씨. 아무리 열심히 바르게 살아도... 살다 보면 안 좋은 일은 반드시 생깁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자바카라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흘러 보내세요”라고 말했지만. ‘자연스럽게’ 극복하는 건 쉽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 자신을 용서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계속 달랬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잘 극복할 수 있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어.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스스로를 위로했다.


엄마와 난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돌침대에 내장된 장판에 온도를 올리니. 등이 금방 따뜻해졌다. 지옥 속에 있을 때는 마음이 항상 불안했기 때문에 어딜 가든 불편했다. 본가마저 불편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안정을 되찾고 나니 특유의 편안함이 느껴졌다.


“빛나야. 사는 게 별거 없어. 성공 안 해도 되고 화려하게 안 살아도 돼. 건강하고 마음 편한 게 최고야.”


엄마는 항상 내게 마음 편하게 사는 게 최고라고 했다. 인생을 살면서 뭔가 대단한 성공을 해야 하는 행복한

건 아니라고.


그냥 다정한 사람 만나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에 맞게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 된다고.


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어떤 말보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가슴 깊숙이 찡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 난 그냥 모든 게 무서웠어. 이혼을 하면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루도 한순간도 편한 날이 없었어.”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았다. 뭔가 내가 한 선택이 실패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오기로 버틴 것 같기도 하다.


그냥 인정하면 되는데... 왠지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그동안 이뤄왔던 것들이 다 무효가 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밀려왔었다.


“엄마가 빛나라도 그랬을 것 같아...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랬을 거야.”


작가가 됐다는 사실보다. 따뜻한 언어로 온전히 나를 감싸주는 엄마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벅차서 눈물이 났다.


내게 집이란 항상 편안한 안식처였기 때문에 불안정하기만 했던 결혼생활이 힘들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으로 맺어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남에게도 안 듣는 험한 욕설을 듣고. 폭력을 당하고. 밖에 있을 때보다 집에 들어가는 게 더 무서운. 그런 삶을 경험하게 될 줄 몰랐다.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냉혹하고 차가운 현실이었다.


“그래도 엄마랑 가족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


든든한 가족들이 없었다면 나 어떻게 됐을까.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잔인한 결말을 마주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아빠, 오빠 모두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줬다.


이제 앞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앞으로는 좋은 일만 더 많을까. 또다시 그런 시련이 닥치면 난 견딜 수 있을까. 불행을 막는 방법이 있긴 한 걸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두서없이 이런저런 생각이 들며 멍해졌다.


엄마는 마음을 읽은 것처럼. 내게 말을 건넸다.


“빛나야.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을 즐겨.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거야. 엄마가 꿈을 이룬 것처럼 너무 기뻐.”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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