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 아니라 속도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영어를 10년 넘게 공부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or 그녀는) 토익 점수도 꽤 높은 편이다. 문법 문제를 풀면 거의 틀리지 않고, 심지어 어려운 단어도 많이 알고 있다.
그런데 처음 해외 출장을 가서 호텔 프런트 직원이 "Would you like a wake-up call tomorrow morning?" 하고 묻자 머릿속이 하얘진다. 'wake-up'이 무슨 뜻인지 알고 'call'도 아는데, 문장이 귀로 들어오는 순간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Sorry?"를 두 번 정도 반복한 끝에 직원이 천천히 다시 말해 주고 나서그제서야 알아듣는다. 그리고 대답하려는 순간에 또 한번 막힌다. '필요 없다'를 뭐라고 하더라.. 'need'를 써야 하나, 'want'를 써야 하나... 그 사이 직원은 이미 다음 손님을 바라보고 있다.
이런 경험은 특별하지 않다. 한국에서 영어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비슷한 장면 하나쯤 갖고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도 마찬가지다. 10년이나 공부했는데 왜 호텔 프런트에서 한 문장을 말하지 못 하는가, 이는 머리가 나빠서도, 노력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외국어를 시험 공부처럼 대했기 때문이다.
앞 장에서 공부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고 종류마다 그에 따라 요령이 다르다고 언급했다. 그 차이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외국어 영역이다. 시험공부의 핵심은 정확성이고, 시험은 틀린 답에 점수를 깎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시험공부를 하는 사람은 한 문제를 오래 붙들고 따져 보는 데 익숙할 수 밖에 없다. (비록 전체적인 시간 제한은 있을지라도!)시험 공부에서는 좀 시간이 걸려도 정답을 찾는 것이 중시되는 경향이 짙다.
그런데 언어구사는 좀 다르다. 언어의 핵심은 바로 "속도"다. 현실 대화에서는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가 말하는 속도로 알아듣고, 상대가 기다릴 수 있는 시간 안에 빠르게 대답해야 한다. 아무리 정확한 문장이라도 30초 뒤에 나온다면 대화에서는 쓸모가 없게 된다. 반대로, 문법이 좀 틀리더라도 1초 만에 불쑥 나오는 문장은 대화를 이어 가는 원동력이 된다.
앞의 온라인 게임인이 막힌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그(or 그녀)는 분명히 'wake-up call'의 뜻을 알았다. 시험이었다면 답을 잠시 생각한 후에 맞추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지식을 꺼내는 속도가 대화의 속도를 미쳐 따라가지 못했다. 일상 회화에서 대답할 때도 시험에서 훈련받은 대로 가장 정확한 문장을 찾으려 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여기서 직원이 원한 건 "No, thanks" 한마디뿐이었는데. 10년 동안 정확성만을 집중적으로 훈련했으니 정확성은 월등히 늘었지만, 속도는 따로 훈련하지 않았으니 속도는 별로 늘지 않았다. 공부의 종류를 구분하지 못한 대가의 일반적인 예시로 제안할 수 있다.
외국어 공부는 단어장을 사는 것도, 학원을 등록하는 것도 아닌 질문 하나에서 시작해야 한다.
나는 왜 이 언어를 배우려는가?
간단하지만 이와 같은 질문을 건너뛰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이 사실이다. "영어는 당연히 잘하면 좋으니까!" 하는 생각에 그냥 무작정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목적에 따라서 공부해야 할 범위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1년에 고작 한두 번 해외여행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길을 묻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 때 필요한 것은 다양한 생활 표현(expression)과 그것을 겁 없이 꺼내는 배짱이다. 해외 논문이나 원서를 읽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말하기보다 어휘와 독해력이 우선이다. 그리고 해외 거래처와 일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업무 이메일을 쓰고 회의에서 의견을 전달하며 거래 조건을 협의할 수 있는 비지니스 영어 스킬이 필요하다.
이걸 미리 정하지 않으면 여행 회화가 필요한 사람이 문법바카라 첫 장부터 붙들고, 원서를 읽어야 하는 사람이 회화 학원에서 "How was your weekend?"를 연습하게 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나타난다. 모든 걸 다 이루려다 어느 것도 충분히 하지 못하고, 또 성과가 보이지 않으니 금방 지치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된 자원이므로,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부터 정해야만 그 한정된 자원을 엉뚱한 데 쓰지 않는다.
실제로 이런 사례는 매우 흔하다. 회사에서 해외 사업을 맡게 된 김 과장은 의욕적으로 새벽 회화 학원에 등록했다. 1년 동안 성실하게 다녔고, 원어민 강사와 주말 계획이나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서는 제법 수다를 떨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그의 업무는 해외 거래처가 보낸 영문 계약서와 기술 자료를 읽고 검토하는 일이었다. 회의는 통역이 붙었고, 그가 혼자 해내야 했던 건 수십 쪽짜리 문서를 빠르게 읽는 일이었다. 1년의 새벽은 성실했지만 과녁이 어느정도 빗나갔다. 반대로 은퇴 후 크루즈 여행을 꿈꾸는 사람이 토익 문법바카라을 붙들고 있다면 그 역시 과녁이 틀린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같은 영어라도 사람마다 필요한 영어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효율적으로 공부를 이어가고 좋은 성과를 이룰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밝혀 둘 것이 있다. 이 장의 외국어 공부의 예시는 대부분 영어를 기본으로 삼는다. 이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배우는 외국어이기 때문이다. 영어 공부 원칙의 대부분은 다른 언어에도 통하지만, 언어마다 다른 부분은 필요할 때마다 짚어두기로 한다.
여행이나 일상에서 쓰는 언어, 이른바 생존 언어부터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많은 사람이 여기서부터 겁을 먹는다. 하지만 생존 언어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식당에서 쓰는 말을 우선 떠올려 보자. 자리가 있는지 묻고, 메뉴를 고르고, 물을 더 달라고 하고, 계산서를 달라고 한다. 이 정도면 왠만한 상황은 대부분 해결된다. 호텔, 공항, 상점도 마찬가지다. 상황마다 오가는 말은 몇 가지 패턴으로 반복된다. 그래서 생존 언어는 솔직히 따로 공부할 것이 별로 많지 않다.
그저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많이 부딪혀 보는 것과 용기를 잃지 않는 것. 첫 주문에서 버벅거렸다고 실패한 것이 아니다. 두 번째 식당에서는 조금 덜 버벅거리고, 다섯 번째쯤 되면 메뉴판을 보며 할 말이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생존 언어는 바카라상 앞에서 외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상황 속에서 몸으로 익히는 것이다. 가장 큰 적은 실력이 아니라 위축이며, 한 번 못 알아들었다고 입을 닫으면 그 다음 기회는 잘 오지 않는다.
생존 언어의 깊이가 얼마나 얕은지는 해외여행을 몇 번만 다녀 보면 알게 된다. 이탈리아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계산서를 받고 싶을 때 필요한 말은 '계산서 주세요' 이 한마디 뿐이다. 그것도 모르면 허공에 펜으로 서명하는 시늉을 하면 웨이터가 알아서 계산서를 들고온다. 물을 더 달라고 할 때는 빈 잔을 들고 "Water, please"면 충분하다. 정중한 의문문이면 좋겠지만 문법도, 관사도 의사소통에는 별로 중요치 않고 간단한 말도 잘 통한다 . 이렇게 생존 언어의 세계에서는 완벽한 문장보다 웃는 얼굴과 손짓, 그리고 'please' 한 단어가 더욱 많은 일을 해낸다.
한국인이 외국어를 말할 때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발음"이 아닐까? 영어 학원 광고에는 '원어민 선생님' '원어민 같은 자연스러운 발음'이라는 문구가 늘 따라다닌다. 많은 사람이 자기 발음이 촌스러울까봐 입을 열기 전부터 움츠러든다. 그런데 희망적인 소식은 실제 대화에서 개별 소리의 정확도는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속도, 정확히는 말이 끊기지 않고 흘러가는 "유창함(fluency)"이다.
두 사람을 한번 떠올려 보자. 한 사람은 단어 하나하나를 교과서처럼 또박또박 말한다. 그런데 단어 사이에 틈이 있고, 문장 중간에 "음(umm)…" 하고 멈춘다. 다른 한 사람은 한국어 억양이 꽤 남아 있지만 말이 막힘없이 흘러나오고 상대의 말에도 바로 반응한다. 외국인은 거의 예외 없이 두 번째 사람과의 대화를 더 편하게 느낀다. 말이 흐르면 듣는 사람은 그 흐름을 타고 뜻을 잡고, 조금 부정확한 소리는 앞뒤 맥락으로 채워 넣는다. 말이 자꾸 끊기면 듣는 사람이 매번 문장을 머릿속에서 조립해야 하니 대화가 피곤해진다. 우리도 사투리가 섞인 사람과는 대화가 잘되지만, 한 마디씩 힘겹게 끊어 말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금방 지치게 되는 원리와 같다.
춤을 배우는 과정을 떠올려 보면 더 이해하기 쉽다. 춤을 배우는 사람들은 느린 춤이 훨씬 어렵다고 말한다. 느린 동작에서는 손끝 하나, 발 디딤 하나까지 정확하고 정교해야 하고, 조금만 흔들려도 바로 티가 나는데, 실수가 그대로 눈앞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반면 빠른 춤을 출 때는 동작이 금방 다음으로 넘어간다. 심지어 박자를 하나 놓치거나 동작이 조금 어긋나도 리듬감만 살아 있으면 보는 사람은 실수인 줄도 잘 모른다. 외국어를 구사할 때도 마찬가지다.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면 발음 하나, 문법 하나가 틀릴 때마다 그대로 드러나지만, 리듬을 타고 흐르는 말에서는 작은 실수가 흐름에 묻혀 지나갈 수 있다. 그래서 정확하게 천천히 말하는 것보다 리듬 있게 빠르게 말하는 것이 오히려 쉽고, 유창하게 잘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발음을 아예 무시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크게 신경 써야 할 것이 두 가지 정도 있다.
하나는 한국어에 없는 소리다. V와 B, F와 P, R과 L처럼 한국어는 구분하지 않지만 영어는 구분하는 소리가 있다. 'vest(조끼)'와 'best(최고)', 'fan(선풍기)'과 'pan(냄비)'은 소리 하나로 뜻이 갈린다. 이런 몇 가지는 의식적으로 익혀 두는 것이 좋다.
이와 같은 차이가 때로는 웃지 못할 상황을 만들 수 있다. 한국인이 R과 L을 구분하지 않고 "I love rice"라고 말하면 원어민의 귀에는 '나는 이(lice)를 사랑한다'로 들릴 수 있다. 밥을 좋아한다고 말하려다 머릿니 애호가가 되는 것이다. 카페에서 "Coffee, please"를 '커피'의 'ㅍ'으로 발음하면 'copy'처럼 들려 복사를 해 달라는 말로 오해받기도 한다. 우스갯소리로 넘어갈 사례이지만, 이러한 대표적인 소리 몇 가지는 의식적으로 신경써두면 불필요한 오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나아가, 더 중요한 다른 하나는 강세와 리듬이다. 원어민이 한국인의 영어를 못 알아듣는 이유는 V와 B보다 강세인 경우가 많다. 영어는 단어마다 힘을 주는 자리가 정해져 있고, 문장 안에서도 중요한 단어는 세게, 나머지는 약하고 빠르게 지나간다. 그런데 한국어는 음절마다 비슷한 힘으로 말하는 언어라서, 한국인은 영어도 모든 음절을 고르게 발음하기 쉽다. 'strike'를 '스-트-라-이-크'처럼 받침 뒤에 모음을 붙여 다섯 박자로 말하는 것도 같은 습관이라고 볼 수 있다. 소리 하나하나가 정확해도 강세가 엉뚱한 곳에 있으면 원어민은 단어를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반면에 소리가 좀 서투르더라도 강세와 리듬이 맞으면 놀라울 만큼 잘 통한다.
대표적인 예가 맥도날드(Mac Donald)다. 미국에서 한국식으로 '맥-도-날-드'를 또박또박 말하면 직원이 못 알아듣는 일이 흔하다. 원어민은 가운데 'DON'에만 힘을 주고 나머지는 거의 삼키듯 지나가니, 귀에는 '먹다널즈'에 가깝게 들린다. 네 음절을 모두 정확하게 발음했는데 오히려 못 알아듣고, 소리가 뭉개져도 강세만 맞으면 바로 알아듣는다. 'banana'도 마찬가지다. '바나나'처럼 세 음절에 같은 힘을 주면 어색하고, 가운데 '나'에 힘을 주고 앞뒤를 약하게 흘려야 영어처럼 들린다. 이런 경우들 몇 가지만 챙기면 나머지는 속도가 붙으면서 자연스럽게 다듬어질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단서가 필요하다. '발음보다 속도'는 영어처럼 소리의 높낮이가 뜻을 바꾸지 않는 언어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러나 예컨대 중국어처럼 성조가 있는 언어는 다르다. 중국어에서는 같은 'ma'라도 높낮이에 따라 엄마(妈), 삼(麻), 말(马), 꾸짖다(骂)로 뜻이 갈린다. 성조가 틀리면 억양이 어색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단어를 말한 것이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성조 언어에서는 발음, 특히 성조가 곧 의미다. 처음부터 성조를 정확하게 익히는 데 시간을 들여야 하고, 그 위에서 속도를 쌓아야 한다. 언어마다 무엇이 핵심인지 다르다는 것 역시 처음에 확인해 둘 일이다.
속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이 이것을 놓친다. 특히 듣기에서 그렇다. 듣기가 안 된다는 사람은 보통 듣기 평가 문제를 많이 푼다. 그런데도 듣기가 잘 안 되는 이유는 귀가 아니라 머릿속의 처리 속도에 있는 경우가 많다.
듣기를 한번 분해해 보자.
상대가 말을 하면 소리가 귀로 들어오고, 머리가 그 소리를 단어로 바꾸고, 단어를 문장으로 묶고, 문장의 뜻을 이해한다. 이 모든 과정이 상대가 말하는 속도에 맞춰 실시간으로 일어나야 한다. 상대는 내가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한 문장을 처리하는 동안 다음 문장이 이미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같은 문장을 글로 읽는다고 해 보자.
글은 기다려 준다. 이해가 안 되면 다시 읽으면 되고 천천히 읽어도 된다. 그런데 글로 읽을 때조차 원어민이 말하는 속도보다 느리게 처리한다면 어떻게 될까. 일상 대화의 말하기 속도는 흔히 분당 150단어 안팎이라고 한다. 글로 읽을 때 이보다 느린 사람이, 기다려 주지도 않는 소리를 그보다 빨리 처리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읽기 속도는 듣기의 필요조건이다. 머릿속 처리 엔진 자체가 빨라져야 귀로 들어오는 문장도 따라잡을 수 있다.
시험공부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이 같은 함정에 빠지기 쉽다. 독해 시험은 한 문장을 천천히 분석해도 정답만 맞히면 된다. 주어를 찾고, 동사를 찾고, 관계대명사가 어디에 걸리는지 표시하며 읽는다. 정확하게 읽는 훈련은 되지만 빠르게 읽는 훈련은 되지 않는다. 그렇게 10년을 읽으면 정확하지만 느린 독자가 되고, 그 느린 속도가 고스란히 듣기의 벽이 된다.
다만 읽기 속도만 빠르면 듣기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글을 빠르게 읽는 사람도 막상 들으면 못 알아듣는 경우가 있다. 말소리는 글자와 다르기 때문이다. 원어민은 단어를 하나씩 끊어 말하지 않는다. "What do you want to do?"는 실제로 "와루유워너두?"에 가깝게 들린다. 'want to'는 'wanna'로, 'going to'는 'gonna'로 줄고, 'Did you'는 '디쥬'로 붙는다. 앞 단어의 끝소리와 뒤 단어의 첫소리가 이어지고, 약한 소리는 거의 사라진다. 글자로는 다 아는 단어인데 소리로는 처음 듣는 말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미국에서 우스갯소리로 도는 대화가 있다. 한 사람이 "Jeet?" 하고 묻자 상대가 "No, d'you?" 하고 답하고, 다시 "Squeat!" 하고 끝난다. 이 대화를 글자로 풀면 "Did you eat?(밥 먹었어?)", "No, did you?(아니, 너는?)", "Let's go eat!(먹으러 가자!)"이다. 과장된 농담이지만 원어민의 실제 말소리가 글자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교과서의 또박또박한 문장만 들어 온 사람에게 이 대화는 외계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읽기 속도와 함께 이런 소리 덩어리에 익숙해지는 훈련이 필요하다. 자주 쓰는 표현이 실제로 어떻게 줄고 이어져 들리는지를 덩어리째로 귀에 익히는 과정이다. 'wanna'를 'want to'로 머릿속에서 풀어서 이해하는 게 아니라, 'wanna'라는 소리 자체를 하나의 단어처럼 받아들이게 되어야 한다. 앞에서 말한 강세와 리듬도 여기에 포함된다. 세게 들리는 단어를 잡고, 약하게 지나가는 소리는 흘려보내는 감각이다.
읽기 속도를 높이는 방법은 단순하다. 쉬운 글을 많이 읽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쉬운'이다. 어려운 글은 속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르는 단어가 문장마다 나오면 멈출 수밖에 없고, 멈추면 다시 분석하는 습관으로 돌아간다. 속도 훈련은 거의 다 아는 단어로 된 글을 멈추지 않고 쭉 읽어 나가며 이루어진다. 운동선수가 기초 체력을 기를 때 가벼운 무게로 반복 횟수를 늘리는 것과 같다.
그래도 모르는 단어는 여전히 계속 나온다. 이때 멈춰서 사전을 찾지 말고, 맥락으로 대충 퉁치고 넘어가는 훈련이 필요하다. 시험공부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이게 가장 어려울 수 있다. 모르는 단어를 그냥 두고 넘어가면 괜히 찜찜하고 뭔가를 놓친 것 같다. 하지만 단어 하나 때문에 멈추면 읽기의 리듬이 끊기고, 리듬이 끊기면 속도 훈련은 거기서 끝난다. 결정적으로 지치는 게 문제다. 한 페이지에서 다섯 번 사전을 찾다 보면 열 페이지를 못 가서 바카라을 덮는다. 대부분의 단어는 몰라도 문장의 뜻을 아는 데 지장이 없고, 정말 중요한 단어라면 반드시 다시 나온다. 그 때 알아도 늦지 않다.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는 「재버워키」라는 시가 나온다. 첫 줄부터 'brillig', 'slithy toves', 'gyre and gimble' 같은 지어낸 단어가 쏟아진다. 세상 어느 사전에도 없는 단어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시를 읽은 사람들은 대충 무슨 장면인지 그린다. 어느 저녁 무렵, 미끈거리는 무언가가 풀밭에서 빙빙 돌며 구멍을 파고 있구나. 앨리스도 시를 읽고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머릿속이 어떤 생각들로 가득 찬다고 말한다. 단어를 하나도 몰라도 문장의 구조와 소리와 맥락이 뜻을 실어 나른다. 퉁치고 넘어가는 힘은 바로 이러한 감각을 믿는 데서 나온다.
그리고 소리 내서 읽는다. 눈으로만 읽으면 대충 훑고 넘어가도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소리 내어 읽으면 막히는 곳이 정확히 드러난다. 입이 꼬이는 지점, 단어가 바로 안 나오는 지점이 아직 온전히 내 것이 되지 않은 부분이다.
소리 내어 읽을 때는 한 가지 방식만 고집하지 말자. 뉴스 앵커처럼 또박또박, 친구에게 말하듯 편하게, 영화 속 인물처럼 감정을 한껏 넣어 읽어 본다. 같은 문장이라도 억양과 스타일을 바꿔 읽으면 그 문장이 여러 상황에서 어떻게 소리 나는지 몸이 익힌다. 원어민의 발음 녹음이 있다면 따라 해 보는 것도 좋다. 들리는 그대로, 속도와 리듬과 줄어드는 소리까지 흉내 내는 것이다. 이러한 훈련이 앞의 소리 덩어리 감각을 함께 길러 준다.
이 같은 방법이 효과가 있는 이유는 발음과 속도가 근육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자전거 타는 법을 바카라으로 배울 수 없듯, 입이 빠르게 움직이는 법도 머리로 이해해서는 익혀지지 않는다. 혀와 입술과 호흡이 그 소리에 익숙해져야 한다. 발음은 따로 공부하는 대상이라기보다, 속도와 반복 속에서 몸에 붙는 것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