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연결: 다름을 보고, 같음을 알아보는 공부 과정
정답을 외우는 공부에서 원리를 이해하는 공부로의 전환: 공부는 그물을 촘촘하게 짜는 일이다.
두 살배기 아이가 그림바카라을 넘기고 있다. 개를 가리키며 “멍멍이!”라고 외친다. 다음 장에 고양이가 나오자 또 “멍멍이!”라고 한다. 소도, 말도 멍멍이다. 처음에 아이에게 네 발 달린 동물은 모두 '멍멍이'인 셈이다. 어른이 고양이를 가리키며 “이건 야옹이야~”라고 친절하게 알려 준다. 며칠 뒤에 아이는 고양이를 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야옹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몇 달 뒤 동물원에서 호랑이를 처음 본 아이가 소리친다. “큰 야옹이!” 이 지점에서 어른들은 크게 웃음보를 터뜨리지만, 아이의 말 속에는 제법 대단하고 놀라운 지적 성취가 담겨있다. 아이는 개와 고양이의 다름을 배웠고, 고양이와 호랑이의 같음을 찾아냈다. 생김새도 크기도 전혀 다른 호랑이와 고양이에게서 같은 것을 알아본 것이다. 이미 아는 개념을 낯선 대상에 옮겨 보기도 했다. 틀리고 고치고 다시 연결하는 과정이 공부의 출발점이다.
교과서를 외우는 것도, 문제를 많이 푸는 것도, 점수를 올리는 것도 전부 공부의 본질과는 동떨어져 있다. 오해하지 마시라, 암기와 문제풀이, 성적과 자격증이 아무짝에도 쓸데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들은 목적에 이르는 중요한 수단이다. 수단이 공부의 전부가 될 때 우리는 무언가를 많이 외웠으면서도 정작 이해하지 못하는 기묘한 상태에 빠진다. 본질은 아이가 멍멍이와 야옹이를 가르고, 야옹이와 호랑이를 잇는 그 과정에 있다.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는 연구자도,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도, 결국 동일한 작업을 훨씬 정교한 수준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온라인카지노 바카라에서 저자가 말하는 공부란 다름과 같음을 구분하고, 개념들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 가며, 그 관계가 새로운 상황에서도 통하는지를 검증하는 활동이다.
밀리의 서재에서 『엔비디아 젠슨 황, 생각하는 기계』( 스티븐 위트(Stephen Witt) 를 읽은 적이 있다. 이 바카라은 젠슨황을 둘러싼 엔비디아 회사 안팎의 인물을 폭넓게 취재해 엮은 전기문이다. 이 바카라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성공담 그 자체보다, 젠슨 황(Jensen Huang)이 문제를 대하는 방식과 자신의 판단을 설명하는 태도였다. 물론 바카라을 읽고 느낀 그에 대한 인간적인 호감과 그가 실제로 남긴 발언이나 성과에 대한 검증은 별개의 일이다. 그래서 바카라을 덮은 뒤에 그가 직접 출연한 2024년 스탠퍼드대학교 경영대학원 대담을 찾아보았다. 그가 한 말 중에서 가장 오래 남은 말은 제1원리(first principles)였다. 이는 남들이 써 온 정답을 외우는 대신에 그 정답은 무엇을 전제로 만들어졌는가, 그 전제는 지금도 맞는가를 처음부터 묻는 사고법이다. 생각해 보니, 멍멍이와 야옹이를 구분하는 아이, 중력을 발견한 과학자, 어려운 계약 문제를 푸는 법률가가 하려는 일도 동일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그건 바로 현상의 겉모습을 넘어, 이를 설명하는 주요한 원리를 찾아가는 것, 이 장에서 이야기하려는 공부 과정의 핵심이 여기 있다.
공부의 첫걸음은 비슷하거나 유사한 보이는 개념이나 원리 사이에서 점과 선을 긋는 일이다. 예컨대, 고래는 바다에 살고 지느러미가 있으며 물고기처럼 헤엄치지만, 아가미가 아니라 폐로 숨 쉬고,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인다. 그래서 '포유류'로 분류된다. 고래가 물 위로 올라와 숨을 내쉬는 까닭도 그 때문으로 설명된다. 우리가 흔히 ‘고래가 물을 뿜는다’고 표현하는 장면은 주로 숨을 내쉴 때 생기는 응결된 수증기와 주변 바닷물의 물보라가 함께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겉모습보다 작동 원리를 살피게 되면 분류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법률 공부법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민법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에게 ‘무효’와 ‘취소’는 둘 다 계약의 효력이 없어지는 일처럼 비슷하게 들린다. 그러나 '무효'인 법률행위는 처음부터 법적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 반면, '취소'할 수 있는 법률행위는 취소권이 행사되기 전까지 일단 효력이 문제없이 취급될 수 있으며, 적법하게 '취소'되면 처음부터 '무효'인 것으로 본다. 더욱이 취소권자와 행사 기간은 따로 정해져 있다. 이러한 차이를 구분하고 알면 다른 세부적인 규정을 하나씩 따로 외우는 부담이 훨씬 줄어든다. 물론 '무효'에 따른 반환청구 등과 같이 관련 청구권에는 별도의 소멸시효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무효'에는 기한이 없다고 싸그리 뭉뚱그려서는 곤란하다.
마찬자기로, 의학 분야에서 세균(Bacteria)과 바이러스(Virus)의 차이점을 아는 원리도 유사하게 이해할 수 있다. 둘 다 감염을 일으킬 수 있지만 항생제는 일반적으로 세균을 표적으로 하므로 바이러스성 감기에는 효과가 없다. 이 둘의 개념을 제대로 구별하면, 불필요한 기대와 잘못된 판단을 줄일 수 있다. 공부는 지식을 무턱대고 모으는 것이 아니라, 뭐가 비슷하고 결정적으로 다른지를 끊임 없이 비교하고 질문하는 과정이다. 비교는 ‘A와 B가 다르다’에서 끝나지 않고, 어떠한 기준 때문에 다르며, 그러한 차이가 어떠한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지까지를 차례로 묻는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무언가를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그 근본적인 원인까지 이해하는 것이라고 보았으며, 이 때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제1원리(First Principles)다. 쉽게 말해, 남들이 정해 놓은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가장 근본적인 사실과 전제까지 거슬러 올라가 생각하는 것이다.
공부의 다음 걸음은 그 반대 방향으로 향한다. 즉, 얼핏 달라 보이는 개념들 사이에서 같음(내지 유사함)을 알아보는 작업으로 이해하면 쉽다. 일례로,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과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은 언뜻 무관해 보인다. 하나는 정원에서, 하나는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하나는 떨어지고, 하나는 떨어지지 않고 계속 돈다. 그런데 뉴턴은 이 둘이 같은 힘(중력)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사과를 땅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달도 끌어당기고 있고, 달은 옆으로 움직이는 속도가 워낙 빨라서 떨어지면서도 계속 지구 둘레를 돌 뿐이다. 이러한 일화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와 같은 뉴턴의 발견이 과학의 역사를 바꾸는 대단한 일이었음은 분명하다. 서로 다른 두 현상 밑에 흐르는 같은 원리를 본 것, 그 유명한 만유인력법칙(Universal Gravitation) 발견의 시작이었다.
생물학에도 비슷한 실마리를 가진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사람의 팔, 고래의 앞지느러미, 박쥐의 날개는 생김새나 쓰임새가 전혀 다르다. 하나는 물건을 쥐고, 하나는 헤엄을 치고, 하나는 하늘을 난다. 그런데 뼈를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같은 구조를 띄고 있다. 이러한 같음(내지 유사함)을 눈치 챈 순간, 생물학자들은 이 같은 동물들이 먼 옛날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연구의 빅 픽쳐(큰 그림)에 함걸음 더 다가설 수 있었다. 같음을 알아보는 능력을 발전시키면, 공부해야 하는 양이 훨씬 줄어드는 마법같은 효과가 생긴다. 오직 다름만 보고 아는 사람은 모든 것을 따로 외워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당해야 한다. 사과는 사과대로, 달은 달대로, 밀물과 썰물은 또 그대로, 그렇지만 같음을 아는 사람은 하나의 원리를 알고 나머지는 거기서 끌어낸다. 그래서 수십 개의 사실이 하나의 원리로 접히고 사고 과정이 더욱 단단해지는 경험을 한다.
다름과 같음을 구분하면 개념들이 하나씩 자명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공부는 거기서 마침표를 찍지 않으면 안 된다. 마지막으로 그 개념들이 서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즉 상관관계를 알아야 한다. 개별적인 개념을 아는 것과 개념들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일례로, 지하철 노선도를 한번 떠올려 보자. 서울 지하철역 이름을 수백 개 외운 사람이 있다고 하자. 강남, 시청, 홍대입구, 잠실. 역 이름은 막힘없이 줄줄 나온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홍대입구에서 잠실까지 어떻게 가느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못한다. 어느 역이 어느 노선에 있는지, 어디서 갈아타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역 이름을 아는 것과 노선도를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아무리 서울 지하철역의 이름을 수백 개 외운 사람이라도 세부 노선과 환승역을 모르면 홍대입구에서 잠실까지 길을 찾기 어렵다. 개념을 아는 것이 역 이름을 아는 것이라면, 그 상관 관계를 아는 것은 전체적인 노선도를 익히는 것이다. 실제로 어딘가에 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바로 노선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역 이름은 지식의 '점(dot)'이고, 노선은 지식의 '선(line)'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또 경제 뉴스를 보면 금리, 환율, 물가라는 용어가 허다하게 들려온다. 물론 각각의 뜻을 개별적으로 아는 사람은 많다. 금리는 돈을 빌리는 값이고, 환율은 다른 나라 돈과 바꾸는 비율이고, 물가는 물건값의 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개념들이 서로 어떻게 얽히고 움직이는지에 관한 작동원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별로 많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예를 들면, 한 나라가 금리를 올리면 그 나라에 돈을 맡기려는 사람이 늘게 되어 수요가 늘어나서 나라 돈의 가치가 오르는 경향이 있고, 그러면 수입품 값이 내려서 물가가 누그러지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이론상으로는 이렇지만, 실제 결과는 여러 변수(다른 나라의 금리, 시장의 사전 예상, 성장 전망, 위험 회피 심리 등)에 따라 달라지고,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났다고 해서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이라고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 물론 현실 경제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지만,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에 대한 연결 고리를 파악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안타깝게도 금리상승 뉴스는 그저 하나의 이벤트로만 읽힌다. 경제 공부를 포함한 어느 영역에서든, 공부는 관계를 발견하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그 관계가 언제 성립하고 언제 깨지는지까지 따지는 작업이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2005년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에서 들려준 이야기는 지식의 점이 훗날 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대학교를 중퇴한 뒤에도 흥미를 느낀 서체나 캘리그래피 강의에 꽃혀서 청강생으로 참여했다. 글자의 아름다움을 배울 당시에는 그러한 지식이 직업에 어떻게 쓰일지 몰랐지만, 약 10년 뒤 매킨토시를 설계하며 그 배움이 다양한 글꼴과 정교한 타이포그래피에 영향을 미쳤다고 회고했다. 이 같은 잡스의 이야기는 ‘점을 잇는 일(connecting the dots)’은 미래에 쓸모 있거나 접목시킬 지식을 미리 전부 예측하거나 계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동시에 주의할 점이 있다. 잡스의 사례는 모든 취미가 언젠가 경제적 성공으로 보상받는다는 증거가 아니다. 주된 핵심은 분야를 넘나드는 배움이 새로운 연결의 가능성이나 지평을 차츰 넓혀간다는 데 있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 역시 컴퓨터 그래픽을 위하여 개발한 병렬처리 기술을 과학자들이 영상처리와 물리 시뮬레이션 등 다른 연구에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엔비디아는 ‘그래픽용 반도체’라는 기존 분류만 고집하지 않았다. 그보다 서로 다른 문제에서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연산 구조가 무엇인지 주목했고, 장차 더 넓은 분야에 쓰일 수 있는 컴퓨팅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하나의 기능에 붙여 놓았던 이름표를 떼고 그 밑의 공통 구조를 보려 했다는 점에서 역시 ‘같음’을 발견하고 새로운 관계를 잇는 사고에 가깝다.
나아가, 공자는 《논어(論語)》 에서 “學而不思則罔,思而不學則殆(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바가 없고, 생각만 하면서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추측된다. 자료를 읽고 파악하는 일과 그 자료를 자신의 머리로 재구성하는 일은 모두 서로를 필요로 한다.
지식(Knowledge)의 구조를 얽히고 설킨 하나의 거대한 그물에 비유하고 싶다. 개별적인 지식은 그물의 매듭이고, 개념 사이의 관계는 매듭을 이어 주는 실이다. 매듭이 많다고 반드시 튼튼한 그물이 되는 것은 아님은 분명하다. 배우는 입장에서는 각각의 매듭이 어떻게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와 같은 연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비로소 쓸모 있는 지식의 그물로 사용된다. 공부란 결국 머릿속에 지식을 하나씩 그대로 쌓아 두는 일이 아니라, 흩어진 지식 사이에서 의미 있는 연결 지점을 만들어 자신만의 그물을 촘촘하게 짜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잘못된 연결을 찾아 끊고, 더욱 정확한 연결로 바꿀 줄 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엔비지아의 CEO 젠슨 황이 한 가지 결론만 전달하기보다 그 결론을 떠받치는 기둥인 추론 과정을 동료들에게 보여주려 한다는 얘기도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 동료들에게 뚜렷한 정답 하나를 전달하면 그 확실한 정답 하나만을 얻지만, 그 정답에 이르는 질문과 판단의 경로를 보여주면 다음에 나타나는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함께 건넬 수 있다.
시험을 목전에 둔 학생이 원리는 이해하지 않고 급한 마음에 기출문제만 반복해서 푼다고 치자. 비슷한 유형이 다시 나오면 빠르게 답을 찾겠지만, 조건이 바뀐 문제 앞에서는 바로 막힐 수 있다. 그 이유는 출제된 문제의 외형을 기억했을 뿐, 어떠한 원리가 사용됐는지 스스로 이해하고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출문제가 쓸모없다는 말을 전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해하지 말자, 기출은 핵심 개념을 확인하는 자료인 동시에, 기억에서 답을 스스로 끌어내는 인출 연습이 된다. 오히려 학습 과정에서는 스스로 문제를 풀고 기억을 꺼내는 훈련을 강력한 강렬한 학습 방법으로 평가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답을 맞혔느냐만이 아니라 왜 맞고 왜 틀렸는지 확인하고, 같은 원리를 다른 문항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물을 그리는 일만큼이나, 바카라을 덮고 그물을 스스로 다시 그려 보는 일이 중요하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어떤 대상을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단지 ‘그렇다’는 사실을 아는 데 머물지 않고, 왜 그런지를 설명하는 근본 원인을 아는 것이라고 보았다.
당신이 창업이나 사업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사업체를 설립한 후 사업이 부진한 위기의 순간에 택해야 할 방법은 기본으로 돌아가, 기존에 알던 기술과 새로 요구되는 기술을 다시 비교하고 연결하는 일이다. 앞서 말한 공부의 정의, 즉 다름을 구분하고 같음을 발견하며 관계를 잇는 과정이 사업이나 비지니스의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되고 반복되어야 한다. 다만, 기본이나 원리를 충분히 이해했다고 해서 응용이 저절로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상황으로 지식을 옮기는 능력은 수 많은 연습(practice)과 피드백(feedback)이 별도로 필요하다.
인공지능이 대중화되면서 한 줄짜리 만능 프롬프트(prompt)나 모델별 사용 요령이 끊임없이 유행했다. 그러나 모델과 인터페이스(interface)는 급속한 기술 변화만큼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래서 어제의 요령이 내일도 최적이라고 단정하거나 보장할 수 없다. 대규모 언어 모델(LLM)은 대규모 데이터 자료에서 언어 패턴을 익히는 사전학습을 거치며, 그 과정의 중요한 기초에는 다음 단계의 예측이 있다. 다만 오늘날의 인공지능(AI) 시스템은 추가적인 학습과 추론 과정, 외부 도구, 검색과 자료 확인 등이 결합되기 때문에 다음 단어만 기계적으로 붙이는 도구로 환원해서 이해하는 것도 부정확하다. 그럼에도 그럴듯한 답변이 사실을 보증하지 않는다는 점은 여전히 중요하다.
오래가는 AI 공부는 특정 프롬프트(prompt)를 무작정 냅다 외우기보다 문제를 명확히 정의하고, 참고자료(레퍼런스)를 먼저 제시하고, 출력의 근거와 출처를 일일히 확인하고, 잘못된 가정이나 오류(AI hallucination 등)를 수정하는 능력을 키워나가는 데 달려있다. 앞으로 계속 나타날 새로운 유형의 AI를 만날 때도 이러한 원칙은 유효할 것이다. AI는 인간의 학습을 위한 조수가 될 수 있어도, 최종적인 검증과 판단을 맡길 바카라임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 때문이다. 가령 AI가 특정한 법률조항을 인용했다면 어느 법률 몇 조인가라는 질문만 따지면 부족하다. 그에 덧붙여, 법률이 언제 시행됐는지, 적용되는 사건의 관할과 시점이 무엇인지, 해당 조항이 왜 특정 사안에 적용되는지를 다시금 따져 물어야 한다. AI가 대신 찾아준 정답도 결국 전제의 타당성을 심사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AI 시대의 제1원리식 사고란 기계를 불신하라는 정신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기계가 제시한 결론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고급 인력이 되라는 요청에 가깝다. 사진 기술의 등장도 생각해 볼 만하다. 1839년 사진 기술의 공개는 이미지를 제작하고 기록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그렇다고 회화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후 예술가들은 현대 생활과 빛, 색채, 표현 방식에 대하여 새롭게 탐구했다. 이와 같은 예술 접근 방식의 변화에는 사진 외에도 여러 슬롯적이고 미학적 배경이 작용했으므로, 카메라가 나왔기 때문에 인상주의가 탄생했다고 직선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다. 기술은 질문 자체를 바꿀 수 있지만, 그 질문에 답하고 해결바카라을 마련하는 데는 여전히 사람의 관찰과 판단능력이 요청된다.
유명한 고대 학자인 아르키메데스(Archimedes)가 제시한 유체 속 물체가 받는 부력은 그 물체가 밀어낸 유체의 무게와 같다는 원리는 오늘날에도 선박과 잠수체를 이해하는 기초로 자리잡았다. 그가 목욕 중 엄청한 깨달음을 얻어 “유레카(Eureka, 고대어로는 εὕρηκα)!”라고 외쳤다는 이야기는 널리 전해져오고 있지만, 사실 이 극적이고 유명한 장면은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기 어렵다. 현존하는 기록은 그로부터 약 2백년 후에 로마 저술가 비트루비우스가 전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더라도 그가 말한 배의 재료가 나무에서 강철로, 추진력이 바람에서 엔진으로 바뀌어도 부력의 기초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물론 기초 원리 하나만으로 배 전체를 설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실제 설계에는 재료역학, 안정성, 유체역학, 안전기준 등 종합적인 요구된다. 기본이란 응용을 대체하는 만능적인 열쇠가 아니라, 응용을 가능하게 하는 튼튼한 기초 공사를 위한 출발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공부는 자산관리(asset management)에서 배우는 복리(複利)의 개념과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일단 개념 하나를 정확하게 익히고 배워 놓으면 다음에 나오는 개념을 배우는 시간이 줄고, 그러면 새로운 지식을 이해할 발판이 확장된다. 대출 이자도 복리로 불어나듯, 개념을 대충 넘기면 모르는 것이 모르는 것을 낳아서 뒤로 갈수록 따라잡기 힘들어진다.
잘 알려져 있듯이, 젠슨 황의 첫 일터는 데니스(Denny's)라는 식당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곳에서 가장 뛰어난 설거지 담당자였을 것이라고 농담 섞어 애기한 바 있다. 그는 설거지 알바를 하면서도, 무엇을 먼저 할지 계획하고, 주변을 정리하고, 한 번에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동선을 구성한 뒤 집중해서 접시를 닦았다. 심지어는 세계적인 기업의 최고 경영자(CEO)가 된 뒤에도 그가 들려준 학습과 일의 습관은 지극히 기본적인 것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은 좋은 귀감을 던져준다. 작고 사소해보이는 일이나 작업을 이해하고 반복하며 고치는 과정에서 특별한 비법이 자라난다.
새해 첫날에 굳은 결심을 가지고 산 다이어리를 생각해 보자. 1월달은 빽빽하게 스케줄을 적어두지만 3월부터는 흰 페이지가 이어진다. 공부도 비슷하다. 참고서를 열 번 새로 시작했는데 앞부분만 손때가 새까맣고 마지막 장은 깨끗한 사람이 적지 않다. 처음 시작하는 의욕만큼 끝까지 이어가는 패턴과 구조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는 ‘파키케팔로사우루스(Pachycephalosaurus)’, ‘스테고사우루스(Stegosaurus)’, ‘안킬로사우루스(Ankylosaurus)’라는 어려운 이름을 쉽게 떠올린다. 그런데 구구단은 좀처럼 외우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진다. 이러한 사례는 흥미가 주의와 반복을 유도한다는 점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형이상학》 에서 인간이 본성적으로 알고자 하는 지식 욕구를 지닌다는 취지로 말했다. 공자는 《논어》 「옹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知之者不如好之者,好之者不如樂之者(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 즉 아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보다 즐기는 사람이 낫다는 말을 전했다. 공부를 오래 하려면 단지 참고 견디는 힘뿐 아니라, 알고 싶다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 그러한 마음은 선천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다. 시작부터 모든 과목을 좋아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작은 궁금증이 반복되는 성공 경험과 의미 있는 활동을 통해 학습동기가 지속적인 관심으로 자랄 수 있다는 뜻이다.
공부를 포기하는 모든 이유를 재미나 흥미 부족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오히려 기초 학력의 공백이나 적절한 설명과 피드백의 부족, 지나친 과제 난도, 시간·경제적 여건, 피로와 불안도 공부를 어렵게 만드는 주요 요소 중에 하나이다. 그러므로 호기심이 생길 질문 거리(리스트)를 만들고,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난이도의 과제를 고르고, 학습적인 진전을 확인하고 평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제안이 현실적이라고 생각된다.
호기심(curiosity)은 종종 답을 듣기 전에 질문을 만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질문이 생기면 설명을 읽는 일이 수동적인 정보 수집이 아니라 스스로 세운 가설을 시험하는 적극적인 활동이 된다. 모르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알아내기 위한 질문을 자발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공부에 있어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처음 배우는 분야에서 용어와 구조에 대한 최소한의 안내는 필요하므로, 모든 초보자에게 교과서를 덮고 무작정 탐색하라고 권할 수는 없다.
앞서 말한 고대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Eureka)’ 전설은 깊은 깨달음의 환희와 기쁨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해한 것 같은 느낌과 실제로 기억하고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은 확연히 달리 구분된다. 쉽게 읽히는 설명이나 반복해서 본 강의는 때론 강한 익숙함을 주지만, 며칠 뒤에 바카라을 덮으면 핵심을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간극을 줄이는 유용한 방법이 바로 끊임없는 연습과 피드백이다. 한국의 EBS는 2020년 다큐프라임 《다시, 학교》 제3부 「시험을 시험하다」에서 단순한 평가를 넘어 학습 방법으로서의 시험에 주목했다.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반복 쪽지시험 프로젝트와 대학생 대상으로 비교 실험을 소개하며 기억에서 끄집어내는 행위의 학습 효과를 다뤘다. KBS 《시사기획 창》 역시 2014년 「전교 1등은 알고 있는 공부에 대한 공부 2」에서 학습 실험 사례를 소개했다. 이를 통해, 시험은 사람을 줄 세우는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스스로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고대 중국의 사상가 순자(荀子)는 《권학(勸學)》에서 작은 걸음을 쌓지 않으면 천 리에 이를 수 없고, 작은 물줄기를 모으지 않으면 강과 바다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은 거창한 결심보다도 작은 배움을 쌓아가는 일상적인 습관인지 모른다.
지금까지 언급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계획과 점검, 평가의 공부 전략을 일상에 맞게 실천으로 옮기고 적용하는 방안을 소개한다.
첫째, 공부를 시작할 때 질문을 하나 적는다. 바카라의 목차를 읽고 오늘 반드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을 정한다. 질문을 만들 때는 다른 사람들이 원래 그렇게 한다는 설명과 반드시 그래야 하는 이유를 구별한다.
둘째, 먼저 설명을 접하고 용어와 핵심 원리를 이해한다. 모르는 분야에서는 좋은 입문서와 교사의 설명, 잘 풀린 예제가 필요하다. 처음부터 혼자 모든 원리를 발견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셋째, 자료를 덮고 빈 종이에 설명한다. 기억나는 개념을 쓰고, 개념들 사이에 화살표를 그린다. 기억나지 않는 곳은 빈칸으로 남긴다. 이것이 인출 연습이다. 읽을 때 쉬워 보인 것과 실제로 알고 있는 것은 다를 수 있다.
넷째, 유사한 문제와 상반된 문제를 함께 푼다. 예를 들어, ‘무효와 취소’를 공부했다면 ‘해제’와도 비교해 본다. 경제를 공부했다면 금리 인상이 통화 강세로 이어지는 경우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경우를 살핀다. 비슷한 문제를 섞어 구별하도록 하는 교차 학습은 원리 선택 능력을 길러 줄 수 있다.
다섯째, 시간의 간격을 두고 다시금 꺼내 본다. 예를 들어 다음 날, 3일 뒤, 일주일 뒤에 핵심 질문에 답해 보자. 이러한 간격은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이지 누구에게나 최적의 고정적인 공식은 아님을 유념하자. 장 기간 기억해야 할수록 복습의 간격도 더 촘촘하게 설계해야 한다.
여섯째, 틀린 이유를 기록하고 기본으로 돌아간다. 오답 노트에 정답만 기계적으로 베끼지 않는다. 어떤 전제를 잘못 이해했는가, 어느 개념과 혼동했는가, 문제의 조건이 무엇을 바꿨는가를 최소한 한 줄이라도 적는다. 모르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야말로 다음 공부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일곱째, 배운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거나 새로운 분야에 적용한다. 말로 설명하면서 논리가 막히면 그 지점이 아직 연결되지 않은 매듭이라고 이해한다. AI에게 먼저 답을 만들어 달라고 하기보다, 내가 작성한 설명에 반론이나 빠진 전제가 없는지 한번 질문해 보는 것도 권장할 만한 방법이다. 단, AI가 제공하는 논문, 자료, 인명과 수치는 반드시 원문에서 확인해야 한다. 교육 현장에 생성형 AI를 도입할 때 인간 중심의 활용, 자료 검증과 개인정보 보호를 강조한 지침도 참고할 만하다.
앞서 말한 일련의 방법들이 하루 아침에 공부 습관으로 자리잡기는 누구든지(글쓴이 포함) 힘들다. 예컨대, 하루 20분을 공부한다면 10분은 읽고 이해하고, 5분은 바카라을 덮고 떠올리고, 5분은 틀린 곳을 확인하는 식으로 시작해도 충분히 훌륭하다. 시간 배분은 편의를 위한 예시에 불과할 뿐이다. 중요한 건, 읽기와 인출, 피드백과 재학습의 전반적인 공부 과정을 한 묶음으로 만들고 잇는 작업을 실행하는 일이다.
기술도 바뀌고 시험 방식도 바뀌며, 우리가 배우는 지식의 상당 부분은 언젠가 고쳐질 것이다. 원리를 안다는 것은 오래된 정답을 절대화한다는 뜻이 아니다. 무엇을 사실로 받아들였는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다른 상황에서도 그 설명이 유효한지를 따질 줄 안다는 뜻이다.
젠슨 황은 2024년 3월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경영대학원의 대담에서 회사 가치가 크게 떨어졌을 때의 경험을 설명하면서, 주가가 변했다는 사실과 회사가 믿고 있던 기술적인 전제 자체가 변했다는 사실을 구분했다고 말하였다. 주가는 80%까지도 떨어질 수 있지만, 그러한 상황에서 그가 되묻고 싶었던 것은 물리 법칙과 자신들의 판단 근거도 함께 바뀌었느냐는 것이었다. 전제가 바뀌었다면 판단을 바꿔야 하고, 바뀌지 않았다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경험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어린 아이의 머릿속에서 멍멍이와 야옹이가 구분되고, 큰 야옹이와 작은 야옹이 사이의 관계가 생기고, 그 뒤로 새로운 동물을 만날 때마다 아이는 그물을 조금 더 촘촘하게 짜듯이, 우리는 때로 잘못 묶은 매듭을 풀기도 할 것이다. 평생 하는 공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남이 대신 외워 줄 수 있고, AI가 정보를 대신 찾아 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점이 유사하거나 같고 왜 어떻게 다른지를 판단하고, 그 사이에 관계가 성립하는지를 의심하고, 틀리고 잘못된 연결을 스스로 고쳐나가는 일은 끝내 자신이 해야 한다. 좋은 배움은 대개 비슷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공부란 남이 찾아낸 정답을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정답이 태어난 원리까지 거슬러 올라가 다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충실하게 기르는 일이다. 진짜 강하고 오래가는 공부는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