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기에 무릎을 꿇었다.
우리 집에 에어컨이 들어온 역사적인 날이었다. 몇 대의 선풍기로 15년 여름 더위를 버텨왔다. 빨래가 안 마르고, 욕실에 곰팡이가 끼고, 옷장 속 옷들이 물기를 머금어도, 아직은 견딜 만하다고, 올해 더위도 결국은 잘 지나갈 거라고 버텨왔다.
그런데 1년간 한국 여름을 건너뛰고 돌아와 마주한 올여름은 확연히 달랐다. 기온보다 살인적인 습도가 문제였다. 살림하는 나로서는 더는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이제는 에어컨 들여야 하지 않을까? 예전에는 한 2주 정도만 버티면 큰 더위가 지나갔는데, 이제는 한국이 완전 열대기후 같아.”
라고 가족들에게 내가 먼저 제안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그동안 에어컨 없이 힘들게 버틴 게 억울해요. 나는 이대로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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