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센터로 간 꽃순이 학생

by무하

오늘은 우리 교실 꽃순이 학생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그 학생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자랐는데도, 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딸은 시집가면 출가외인이라고 아들만 공부시켰다고 합니다. 오빠나 남동생들은 아들이어서 대학까지 나와 대기업에 다니다 정년퇴직했고, 교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학생은 학교에 다니지 못해 늦은 나이에 우리 학교에 오셨습니다. 그 학생은 항상 꽃이 달린 모자를 쓰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제가 꽃순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습니다. 비록 학교에는 못 다녔으나 아버지에게 사랑은 듬뿍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꽃순이 학생은 성격이 밝았고 웃음이 많았습니다. 교실 분위기도 꽃순이 학생의 농담 한마디로 항상 재미있고 밝았습니다.


꽃순이 학생은 선생님이 너무 감사하다며 나에게 뭐든 잘 갖다 주셨습니다. 집에서 기른 상추를 뜯어다가 주시기도 하고, 된장, 고추장, 김치를 가져오곤 하셨습니다. 공부도 잘하시던 학생이 어느 날부터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글쓰기 시간에도 문장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결석이 잦았고 수업시간에 집중도도 떨어졌습니다. 연세가 드시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은 배운 걸 안 배웠다고 했습니다. 반 학생들이 다 배웠다고 해도 꽃순이 학생은 이걸 언제 배웠냐고 의아해했습니다. 그러더니 한 번은 학교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을 잊어버려 집에 찾아가지 못하고 동네를 몇 번이나 헤맸답니다. 자녀들이 신고했고 경찰이 집에 모시고 오셨다 합니다.


그 후부터 며느님이 학교 끝날 때쯤 되면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며느님은 단정하고 예쁜 미소로 꽃순이 학생의 팔짱을 끼고 저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날마다 며느님이 학교에 찾아와 같이 식사하고 집으로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꽃순이 학생은 병원에서 주는 약을 드시고 호전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꽃순이 학생이 없으니 교실엔 웃음기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꽃순이 학생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보고 싶어요."

꽃순이 학생의 한마디에 울컥해졌습니다.

꽃순이 학생은 아침에 치매센터 차가 오면 그 차를 타고 갔다가 오후 늦게 집에 오신다고 했습니다. 언제 만나서 식사 한번 하자는 말을 끝으로 통화는 끝났지만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우리 교실 학생들도 꽃순이 학생의 유쾌하고 밝게 웃던 모습, 따뜻한 마음을 그리워하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도 치매입니다.

"우리가 공부허는 것도 치매 올까 봐 무서버서구만요. 치매 걸려서 자식들 몰라보게 될까 봐 그거이 젤 걱정이요. 치매 걸리믄 기억이 다 없어져뿐다는디 아무도 몰라보고 살믄 그거이 지옥이지라."

"맞다 아닙니꺼. 참말로 치매 안 걸리고 가고 싶은데예, 그기 젤 무서버예."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치매를 무서워합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예전에는 당당히 해내던 일들이 버거워지기 시작할 때, 죽을 때가 다가온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합니다.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이제 내 차례는 아닌가' 하는 불안감. 모두들 떠나간 텅 빈 집안에서의 고립감과 쓸쓸함. 그래도 그건 견딜 수 있지만 치매만은 제발 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들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랑께 허리아프고 무릎아파서 절뚝거리믄서도 기엉코 학교에 나오지요. 집에만 있었다믄 진작 치매 걸렸을 것이요."

학생들의 말을 듣고 있으니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학생들에게 이 교실은 그저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스멀스멀 다가오는 기억의 사라짐과 고립의 쓸쓸함을 이겨내기 위해, 매일 아침 출근하듯 찾아오는 삶의 소중한 안식처였던 것입니다. 꽃순이 학생이 남겨두고 간 온기는 여전히 교실에 남아 있습니다. 비록 아침에 배우고 저녁에 잊어버리더라도, 함께 웃고 글을 익히며 나누었던 그 따뜻한 온기가 좋아서 학교에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도 굽은 허리로 지팡이를 짚고 학교에 나와 삐뚤빼뚤 글씨를 써 내려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 교실이 학생분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세상인지 다시 한번 가슴에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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