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토의 눈물

시네마 천국

by무하

영화에서 마지막 장면은 감독이 가장 나타내고 싶은 장면이다. 그래서 그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될 수 있고, 감독이 관객에게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시네마천국’의 마지막 장면에서 유명 감독이 된 중년의 토토가 흘리는 감격의 눈물이 의미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30년 동안 고향을 찾지 않았던 토토는 알프레도가 그에게 남긴 필름을 보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알프레도는 토토의 미래를 위해 고향을 떠나라고 냉정하고 강하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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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젊어. 세상을 거머쥘 수도 있지.
여기를 떠나서 로마로 가라.
여기 생각은 일절 하지 말고 돌아오지도 말아라.
어서 여길 떠나라.
멀리서 네 명성만 듣고 싶다."


그 필름엔 토토와 알프레도가 영화를 통해 소통하던 시간의 힘과 우정이 담겨 있고, 토토의 유년기 정서가 그대로 녹아 있다. 수없이 많은 키스 장면이 편집된 그 영상을 보며 토토가 눈물을 흘렸던 것은 알프레도를 향한 그리움이 터져 나온 이유일 것이다. 아버지가 없었던 토토에게 알프레도는 아버지였고, 친구였고, 멘토였다. 그런 알프레도를 토토는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 토토의 눈물은 아버지 같던 사람을 버려둔 아들의 깊은 반성과 회한, 그리움의 아련한 정서가 담겨있다.

토토가 흘린 눈물은 그의 유년기 전체를 향한 그리움의 정서로 읽을 수도 있다. ‘시네마천국’ 영화관은 공동체가 모이고 함께 어울리는 장소였다. 남녀노소 다양한 구성원이 이곳에서 같은 영화를 보고 감정을 공유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내 유년시절이 자꾸 떠올랐다.

여섯 살 때부터 아버지 손을 잡고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던 그 느낌은 너무도 생생하고 강렬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연기가 허구가 아닌 실제 현실처럼 리얼했다.
‘마부’에서 김승호의 연기,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떠날 때는 말없이’, ‘맨발의 청춘’ 등의 영화들은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여섯 살짜리 어린 계집애는 완전히 영화에 몰입해서 배우들의 표정에 따라 울고 웃으며 영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온전히 빠져들었다. 과거의 영화는 지금보다 더 강력한 매체였다. 영상 이미지에 관한 내성이 전혀 없던 시절이라 영화가 힘이 셀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TV도 없었고, 다른 오락 시설이 전혀 없던 시절, 영화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절대적 강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토토도 그런 시절의 영화를 그리워했던 게 아닐까. 그 생생하고 강렬했던,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아니었을까.

시네마 천국이 폭파되는 장면에는, 공동체 간에 정을 느끼고 공유했던 시간과 공간이 붕괴되는 데서 오는 아쉬움이 잘 나타나 있다.


나는 농방 집 딸이었다. 어릴 때 우리 집 담벼락엔 널찍한 나무판자들이 세워져 있었다. 아버지는 지방을 돌아다니며 큰 나무를 구해 제재소에 가서 원목을 잘랐다. 아버지가 도착하는 날이면, 인부들은 트럭에서 그 원목들을 내려 마당 담벼락에 세워 널었다. 우리 집에서 만든 장롱은 튼튼하고 오래간다는 소문을 타고 잘 팔렸다. 기술자들이 새벽까지 불을 밝혀 일해도 주문이 밀렸다.


그렇게 호황을 누리던 장롱이 호마이카 가구가 대량으로 쏟아져 나와 유행을 타면서부터 일거리가 줄어들어갔다. 일군들도 한두 명씩 떠나가기 시작했고, 도매업자들마저도 수금을 해주지 않고 행방을 감춰버렸거나 호마이카 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려서 일꾼들의 임금도 제대로 주지 못할 형편이 되었다.


일꾼들이 다 떠난 일방에서 아버지가 혼자 장롱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나마 아버지는 그 일을 오래 할 수가 없었다. 인도네시아 원목을 잘라 만든 보루네오 가구나 썬퍼니처, 삼익가구 같은 기업 가구들이 TV 선전에 나오기 시작했고, 시장을 점유해나갔기 때문이었다.

삼류 극장으로 전락한 '시네마천국'이라는 극장이 도시개발로 철거되는 장면에서 나는 명치끝이 찌르르 해졌다. 그 붕괴는 단순히 극장이 철거된다는 사실뿐만이 아니라, 한 시대가 통째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시절의 사연들이 깡그리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반면에 새로운 것에 대한 세태의 변화를 암시하기도 한다.

도시개발로 극장이 철거되고 주차장이 들어선다는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사라져버린 내가 살던 옛집이 떠올랐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그 집을 기억할만한 사람은 없다. 그 집은 내 기억 속 끝자락에 매달려 가물거리고 있는 내 유년의 노스탤지어이다. 그 집을 생각할 때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내 기억의 통증이 느껴진다. 토토의 눈물도 한 시절이 통째로 삭제되어 버린 것에 대한 동경이나 그리움이 아니었을까.

알프레도는 옛 영화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일하던 영화관이 불탔다는 건, 그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하는 사건일 수 있다. 그 자리는 토토가 물려 받는데, 이는 새로운 시대로의 교체로 볼 수 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영사기가 등장한다. 알프레도의 시대엔 필름이 타는 것을 걱정해야 했다면, 토토 시대의 필름은 불타지 않는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영화 ‘시네마천국’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관해 말하는 인생 영화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이별을 한다. 앞으로도 누군가 내가 알던 사람이 죽을 것이고 내가 알던 거리가 바뀔 것이고, 내가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이 떠나버릴 것이다. 우리는 변한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느끼며 가끔 행복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시네마천국’은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노스탤지어를 톡톡 건드려 그들을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영화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영화는 감동의 여운을 남기고 끝났지만, 우리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 진행형이다.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한 말처럼 인생은 영화와는 다르게 훨씬 힘들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면서 인생을 배운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 서 있는 배우들이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각자 맡은 배역을 충실히 해내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