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돋보이게 하는 말이 대화의 목적을 가릴 때
예전에 한대협 세미나에 취업 컨설턴트를 초대한 적이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에게 구체적인 전략을 알려주기 위한 자리였다. 학생들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지금의 준비 방식에서 어떤 점을 바꾸면 좋을지 배울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강의가 시작되자 컨설턴트는 자신의 이력과 경험을 봇물 터지듯 풀어놓았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취업 전략을 배우러 온 자리에서 어느 위인의 일대기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강의가 끝난 뒤 내 머릿속에 남은 것은 한 가지였다.
"참 대단한 사람이네."
정작 취업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선명하게 남지 않았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중에서 학생들이 무엇을 가져가면 좋을지 짚기가 어려웠다.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것은 강의에 도움이 된다. 어떤 일을 해온 사람인지 알면 그가 전하는 말을 더 신뢰할 수 있고, 직접 겪은 시행착오는 막연한 조언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해 준다. 다만 자신의 대단함을 설명하는 말이 길어지면, 듣는 사람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밀려날 수 있다. 강사의 이력은 강의를 믿고 들을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력 자체가 청중이 배우러 온 내용은 아니다.
강사의 경우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긴다.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어느새 그 고민을 듣던 사람의 성공담이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로 시작한 이야기가 자신이 얼마나 잘 대처했고, 주변에서 어떤 인정을 받았는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흘러간다. 고민을 꺼낸 사람은 자신의 문제를 풀 실마리보다 상대가 얼마나 능력 있는 사람인지 더 많이 알게 된다.
후배에게 조언할 때도 그렇다. "나는 신입 때부터 그런 일을 알아서 했어", "내가 맡았을 때는 다들 어렵다고 했는데 결국 해냈지"라는 이야기가 길어지면, 후배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선배가 대단하다는 것은 알겠지만, 지금 자신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는 여전히 막막할 수 있다. "저 사람은 원래 나와 다른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에 오히려 질문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물론 성과를 소개해야 하는 자리도 있고, 기쁜 일을 함께 나누고 싶은 순간도 있다. 잘한 일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자연스럽다. 다만 상대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거나 도움을 주기 위해 시작한 대화라면, 내 이야기가 그 목적에 맞게 쓰이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같은 경험도 어디에 힘을 주어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전달된다. "다들 못 할 거라고 했는데 내가 결국 해냈어"에서 끝나면, 듣는 사람은 내가 해냈다는 사실만 알게 된다. 하지만 "처음에는 나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어. 그래서 일을 작게 나누고, 혼자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은 먼저 물어봤어"라고 설명하면 상대가 시도해 볼 방법이 보인다. 어디서 막혔는지, 어떤 판단이 도움이 되었는지, 무엇을 바꾸었을 때 일이 풀렸는지를 들려주면 그 경험을 자신의 상황에 비추어볼 수 있다.
내가 해냈다는 이야기가 상대도 해볼 수 있는 이야기로 이어질 때, 경험은 조언이 된다. 그런데 자기 이야기에 몰입하면 이 차이를 놓치기 쉽다. 내게는 뜻깊은 경험이고 자랑스러운 성과이니 그 과정까지 자세히 들려주고 싶어진다. 설명하다 보면 떠오르는 이야기도 자꾸 늘어난다. 하지만 나에게 소중한 이야기라고 해서 지금 상대에게도 그만큼 필요한 것은 아닐 수 있다. 말하는 사람에게는 뿌듯한 시간이 듣는 사람에게는 요점을 기다리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말을 준비할 때는 무엇을 더 들려줄지에 앞서, 상대가 무엇을 얻어가면 좋을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취업 전략을 배우러 온 사람에게는 준비할 방향이, 업무 때문에 막막한 후배에게는 다음에 시도할 행동이 필요하다. 고민을 털어놓은 사람에게는 조언에 앞서 자신의 사정을 충분히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대화의 목적을 떠올리면 내 경험 중 어디까지 꺼내야 할지도 조금 더 분명해진다.
나 역시 오랫동안 사람들을 가르치고 조언하는 일을 해왔기에 이 점을 조심하려 한다. 경험이 쌓일수록 꺼낼 수 있는 이야기도 많아진다.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생각에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기도 전에 내 경험부터 떠오를 수 있다. 그럴수록 지금 이 사람이 무엇을 어려워하고,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먼저 확인하려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상대에게도 필요한 이야기인지는 따로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내 말을 들은 사람이 "참 대단한 사람이네"라고 생각해 주면 기분은 좋을 것이다. 하지만 도움을 주려고 시작한 대화라면 그 감탄만으로는 아쉽다. 나를 향한 감탄보다, 상대가 한 걸음 나아갈 실마리를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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