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고기리 카페 테라스

글 쓰기 좋은 날, 글 쓰기 좋은 장소

by지안 이고운


초가을 공기가 너무 완벽하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오늘 글 쓰기 좋은 날이다'라고 누군가 어깨를 톡 쳐주는 온도. 야외 테라스에 앉자마자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았다. 나로선 도무지 글을 안 쓰고 갈 수가 없다. 이 공기를 그냥 두고 가기엔 너무 아깝기 때문에.


앞에는 낮은 언덕이 있고, 나뭇잎들이 아직 결정을 못 내린 표정으로 초록과 노랑 사이를 오가고 있다. 바람이 한 번 스칠 때마다 “지금 적어두면 좋겠다”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화면을 바라본다. 빈 문서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오늘도 시작해 볼까!’

스스로에게 중얼거린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잠깐 머뭇거리다가, 결국 첫 문장을 친다. 그 순간 바람이 다시 한번 불어와 목덜미를 스친다. 이상하게도 그 감촉이 문장과 잘 어울린다.


글이라는 게 참 이상하다.

평소에는 이유가 없어도 쓰기 싫고, 오늘은 이유가 없어도 쓰고 싶어진다. 이 시원한 바람이 내 손가락을 간질이는 바람에, 결국 타이핑을 계속하게 된다. 특별할 것 없는 문장들이 하나씩 올라온다. 누가 지나가면 발소리가 모래 위에 ‘톡, 톡’ 찍히고, 멀리서 누가 웃으면 그 웃음이 바람에 실려 와 내 문장 사이에 슬쩍 끼어든다. 강아지 한 마리가 너무 당당한 걸음으로 지나간다. 목줄이 살짝 흔들릴 때마다 “나는 오늘 산바카라이 직업이야”라고 선언하는 것 같다. 그 모습이 웃겨서 문장 하나를 더 적는다. 강아지가 사라진 뒤에도 그 당당한 뒷모습이 한동안 머릿속에 남는다.


‘여기서 그냥 일어나면 진짜 아쉽지 않을까.’

그 생각이 계속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조금 더 적어 본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각도, 따스한 아메리카노 김이 날아가는 방향, 내 앞 테이블에서 누가 바카라을 넘기는 멋들어진 모습까지. 별것 아닌 것들이 오늘은 전부 중요해 보인다. 초가을은 짧으니까. 이 적당한 시원함도 곧 지나갈 테니까. 지금 이 온도를 놓치면, 다음에 다시 이런 공기를 만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그래서 더 욕심이 난다. 문장을 하나 더 쓰고, 또 하나 더 쓴다. 화면이 조금씩 채워질수록 마음이 이상하게 편안해진다.


테라스 한쪽에서 누군가 사진을 찍고 있다. 카메라를 든 손이 잠깐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나도 덩달아 하늘을 본다. 구름이 느릿느릿 흘러가고 있다. '저 구름도 오늘따라 글쓰기를 종용하는 모양새네.' 하는 유쾌한 느낌이 든다. 구름 사이로 햇빛이 가늘게 비친다. 그 빛이 노트북 화면 위에 잠깐 머물렀다가 사라진다. 나는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린다. 문장이 조금 더 쌓였다. 거창하지 않다. 다만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흔적 정도다. 그런데 그 흔적이 오늘은 이상하게 소중하다. 나중에 이 글을 다시 읽으면, 오늘 이 바람과 이 온도가 다시 떠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줄여 말하면, 나는 지금 고기리 테라스에 앉아, 날씨가 너무 좋아서 글이 쓰고 싶어지는 중이다.

분명 주말이라 놀러온 건데 이상하게도 싫지가 않다. 오히려 '그래, 오늘은 여기 앉아서 쓰는 게 맞다' 하고 인정하게 된다. 노트북 화면이 햇빛에 반짝일 때마다, 오늘은 이 자리에서 글을 남기고 가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바람이 한 번 더 불어와 목덜미를 스친다. 그 순간 '조금만 더 쓰자'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리고 그 마음이, 생각보다 꽤 괜찮다.


커피가 조금씩 식어간다. 시간은 오후 4시 15분쯤. 배가 고프지도 않아 자리를 뜨지 못할 것 같다. 사람들이 오고 가고, 강아지가 또 한 마리 지나간다. 나뭇잎이 바람결에 살짝 뒤집힌다. 그 모든 사소한 움직임들이 오늘은 전부 글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떠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한 문장을 더 적는다.

‘초가을 테라스는, 글을 안 쓰고는 못 배기는 장소였다.’

저 고기리 언덕 너머로 바람이 한 번 더 지나간다. 나뭇잎들이 살짝 흔들린다. “잘 쓰고 가거라” 한마디를 흩날리며 배웅하는 것도 같다. 그 흔들림을 마지막으로 바라보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한다. 윗도리를 차마 챙기질 못해서. 일교차는 제법 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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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 낮은 자존감의 소유자에서 방송인과 스피치 컨설턴트, 문학계 등단 작가로 성장했습니다. 소통법 연구와 기업교육, 그리고 글쓰기로써 열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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