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 때부터 원고지 쓰기법을 지켜 글 쓰기를 좋아했는데, 문구점에서 파는 얇은 묶음 200원, 굵은 묶음 500원이었던 원고지 값을 월 용돈 3,000원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편 소설을 쓰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원고지 눈금자를 이면지에 잔뜩 복사해다가 그 자체 제작 원고지에 글을 썼습니다. 처음 장편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다 그렇듯 쓰다가 그만두게 되었지만, 아직도 집에는 그 원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이것저것 생각하고 썼던 것이 있겠지만, 글을 쓴 지 몇 년째라고 센다면 그래서 그 원고를 쓴 때부터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한국 판타지 소설을 많이 읽었고, 그 이전에는 역사 소설과 대하 소설을 많이 읽었어요. 아마 그래서 장편 대하 판타지가 쓰고 싶었던 거겠지요. 그때부터 저는 무척 세속적인 쾌락을 좋아하는 작가였기 때문에, 글을 써서 상을 받으면 부상으로 따라오는 문화상품권을 몽땅 긁어서 온라인 게임에 쓰고, 백일장은 주로 수업을 째고 한낮의 환한 햇볕을 받으면서 돗자리 위에서 뒹굴뒹굴하는 낙으로 나갔습니다. 글쓰기는 좋아했으니 동아리는 문예창작부에 들었는데, 제 재능을 알아본 담당 선생님은 제게 매주 글을 써 오면 피드백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장편 판타지 소설 읽기에 빠져 있던 저는 백일장용 단편을 너무 쓰기 싫은 나머지, 기껏 지도를 받을 기회가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마감을 독촉하는 그 선생님이 있는 교실 앞을 지나가지 않으려고, 학교 1층 왼쪽에서 1층 오른쪽으로 그냥 걸어가지 못하고 2층 계단을 통해 꼬불꼬불 돌아가기도 하고 어쩌다 선생님과 마주치면 즉시 도망가는 등 싹수 노란 작가의 삶을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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