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는 정의를 추구하는 직업인가?

나는 그러고 있는가..

by김마이너
로펌을 만들며 생각한 것들






변호사는 정의를 추구하는 직업인가


변호사법 제1조 제1항은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슬롯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선언한다.


허나 대중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 것 같다. 변호사는 정의 보다는 돈을 추구하는 이미지인 듯 하다. 특히 미국에서는 사건 수임을 위해 변호사가 앰뷸런스를 따라가거나 장례식에 찾아간다고 하던데 그쪽 변호사도 돈을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처지인 것 같다.


대중매체에서 변호사 관련 가장 호소력이 있는 스토리는 돈만 아는 변호사가 급변하여 정의를 생각하게 되고 착한 일을 하게 되는 그런 반전 서사인데(초기값이 너무 낮기 때문에 그런지 더 감동이 있다능), 그런 캐릭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해외 영화 중에서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국내 영화로는 <변호인>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현실에 비하면 저 영화들은 판타지이다. 변호사 4만명 시대 생계형 변호사들만 많아지고 있고 정의는 어딘가에 내던진지 오래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변호사에게 정의를 요구한다면 그건 사치다! 라며 반기를 들고 싶다.




실무에서 느끼는 현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라는 단어를 들으면 찔끔하고 변호사 일을 하다 보면 가끔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내가 하는 일이 과연 정의를 지키는 일인가? 슬롯에 도움이 되고 있는 건가?


변호사로서 법에 따른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사람이 만든 법이 감히 정의를 완전히 대변한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고(애초에 나라마다 법 자체가 다르기도 하고 도덕적인 관점과 법의 관점이 서로 다르기도 하기 때문), 특히 양 상대방들을 바라볼 때 도덕적인 잣대에서는 이 사람이 백번 잘못하긴 했지만 법적인 잣대로따지면 저 사람이 처벌되는 이런 기묘한 상황을 마주하면 여러 생각이 들고, 정말 괘씸한 의뢰인을 방어하게 될 경우에는 괜히 가해자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또한 변호사 일이 내 밥벌이긴 하지만 만사 법대로 하는 게 능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법보다는 화해와 용서가 당연히 우선이라고 생각하지만(이렇게 말하면서도 내 밥벌이가 걱정되는 양가적 감정이 든다), 가끔 성직자분들도 의뢰인으로 오시는 걸 보면 화해와 용서는 성직자들에게도 어려운 것 같고, 가끔은 그런 와중에 사람들 사이에 괜히 법적 다툼을 부추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실무에서 현타를 느끼고 그러던 중에 우연히 (종교는 없지만) 친구의 초대를 받아 모 교회에서 진행하는, <법과 정의, 그 너머의 삶>이라는 주제의 변호사 집회에 다녀온 적이 있다. 위 주제로 여러 변호사님들이 패널로 나와 얘기를 해주셨는데, 그 중에서 어떤 변호사님의 얘기가 기억에 남았다. 필리핀 인권 단체에서 변호사로 일하시며 인신매매를 당한 미성년자들을 구출하는 활동을 하신 극적인 얘기였는데 이런 분들이야말로 변호사로서 정의에 성큼 더 다가간 것이 아닌가 하는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에 비하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작아보였다.




내가 생각하는 변호사의 정의(正義)


허나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하는 송무 변호사 일도 그만큼 드라마틱하지는 않지만,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피해자를 대리하는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억울함을 풀 수 있도록, 또 가해자가 경각심과 교훈을 배울 수 있도록, 가해자를 변호하는 사건에서는 억울하게 처벌되지 않도록, 처벌되더라도 저지른 행위 만큼 처벌될 수 있도록.


수사기관은 범인을 잡고 범죄를 밝혀내기 위해 열심히 수사를 하고, 변호사는 나름대로 그 수사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잘못 이뤄지지 않도록 열심히 방어를 하고, 이렇게 균형을 맞춘 상태에서 판사는 또 양측의 주장과 증거를 통해 공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재판을 하고 등등. 다 각자 법이라는 제도 하에서 묵묵히 자기의 일을 하며 전체적인 관점에서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일조하는 역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차피 신이 아닌 이상 다 알 수는 없지 않은가? 이보다 나은 시스템이 있을까.


그리하여 내 일 자체가 정의에 직접 기여하는 일은 아닐 수 있으나, 전체적인 시스템 내에서 정의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어렷품이라도 정의에 다가갈 수 있으니.


이것이 거창한 개념의 정의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인간이란 항상 의미를 찾는 존재이므로) 밥벌이 이상의 내 변호사 일에 대한 자기합리화이자 변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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