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속근육은 언제 생기나요?

속근육과 겉근육 사이, 몸은 어떻게 필요한 힘을 골라 쓰는가

byKarin an
속근육1.jpg

수업 중 한 회원이 누운 채 다리를 들어 올리다가 갑자기 물었다.


“선생님, 저 속근육은 언제 생기는 거예요?”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허벅지 앞쪽만 힘들고, 배에서는 별다른 느낌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랫배 안쪽에서 힘이 잡힌다는데 자신은 아무리 해도 목과 다리만 힘들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는 겉근육만 쓰는 것 같아요. 속근육이 아예 없는 것 아닐까요?”


나는 회원의 다리를 내려놓게 하고 잠시 숨을 고르게 했다.


“속근육은 앞으로 새로 생기는 근육이 아니에요. 이미 있어요.”

회원은 조금 의아한 얼굴로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운동을 배우다 보면 속근육은 아주 특별한 근육처럼 들린다. 겉근육보다 먼저 써야 하고, 잠들어 있으면 깨워야 하며, 잘 사용하면 허리와 골반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근육이라고 배운다. 반면 운동할 때 허벅지나 목처럼 겉에서 쉽게 느껴지는 곳이 먼저 힘들면 잘못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설명은 몸의 여러 층과 역할을 이해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대로 받아들이면 몸 안쪽에는 좋은 근육이, 바깥쪽에는 되도록 덜 써야 하는 나쁜 근육이 있는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몸은 그렇게 속과 겉의 서열로 움직이지 않는다.


속에 있다고 더 중요한 근육일까

몸통의 근육은 위치와 주된 역할을 설명하기 위해 흔히 속근육과 겉근육으로 나뉜다.

배를 가장 깊은 층에서 감싸는 배가로근과 척추 가까이에 붙어 있는 뭇 갈래근은 흔히 속근육 또는 로컬 근육으로 불린다. 여기에 골반의 바닥을 이루는 골반저근과 호흡의 중심인 횡격막을 함께 설명하기도 한다. 이 근육들은 척추의 작은 움직임을 조절하고, 배 안의 압력을 조절하며, 팔다리가 움직일 때 몸통이 중심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복직근과 배바깥빗근, 척추 세움 근처럼 비교적 겉에 있고 넓은 범위에서 힘을 만드는 근육은 겉근육 또는 글로벌 근육으로 분류되곤 한다. 몸통을 굽히고 펴고 돌리며, 골반과 흉곽 사이에서 힘을 전달하는 데 참여한다.

이 구분은 몸을 공부하기 위한 지도와 같다.

하지만 지도에 경계선이 있다고 실제 몸에서도 한 근육이 한 가지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배가로근도 호흡과 자세, 팔과 다리의 움직임에 따라 활동이 달라진다. 복직근과 배빗근도 몸을 크게 움직일 때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힘을 버티고 몸통을 안정시키는 데 참여한다. 같은 근육도 조용히 숨을 쉴 때와 무거운 물건을 들 때, 누워 있을 때와 한 발로 서 있을 때 필요한 힘이 다르다.

척추를 안정시키는 일 역시 깊은 근육 하나가 혼자 담당하지 않는다.

뼈와 관절, 인대가 움직임의 바탕을 만들고, 크고 작은 여러 근육이 힘을 낸다. 뇌와 신경계는 몸에서 올라오는 감각을 받아 지금 어떤 근육이 얼마나 일해야 할지 계속 조절한다. 몸통의 안정성은 이 셋이 상황에 맞게 협력할 때 만들어진다. 특정 근육 하나를 모든 안정성의 주인공으로 정하기 어렵다는 연구도 이 점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배가로근만 잘 찾으면 허리가 안전해지고, 겉근육을 덜 쓰면 움직임이 좋아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속근육을 느껴보는 연습은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몸이 해야 할 일은 그 근육만 계속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움직임 안에서 다른 근육들과 적절히 일을 나누는 것이다.


“코어를 깨운다”는 말은 이해하기 쉽다.

움직임을 거의 하지 않았거나 수술과 통증 이후 특정 부위를 잘 사용하지 못했던 사람에게는 실제로 어떤 근육이 뒤늦게 참여하거나 힘을 내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강사도 회원도 “이제 근육이 깨어났다”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근육이 정말 잠을 자다가 어느 날 눈을 뜨는 것은 아니다.

근육은 뇌와 척수에서 운동신경을 따라 전달된 신호에 반응해 힘을 만든다.

동시에 근육과 힘줄, 관절, 피부와 발바닥에서 올라오는 감각은 몸이 어느 위치에 있고 얼마나 힘을 쓰고 있는지 신경계에 알려준다. 시각과 평형감각도 이 과정에 참여한다.

뇌가 근육에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뇌는 움직임을 준비하고, 몸은 그 결과를 다시 알려준다. 뇌는 돌아온 정보를 바탕으로 다음 힘의 크기와 방향을 수정한다.

움직임은 뇌에서 근육으로 내려가는 한 줄짜리 명령이 아니라, 몸과 뇌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대화에 가깝다.

팔을 빠르게 들기 전 몸통의 일부 근육이 미리 활동하는 현상도 관찰된다.

팔이 움직이면 몸의 무게중심도 달라지기 때문에 신경계가 그 변화를 예상하고 자세를 준비하는 것이다. 다만 이것을 언제나 속근육 하나가 먼저 켜지고 그다음 겉근육이 켜지는 고정된 순서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무엇을 하려는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들고 있는 물건이 얼마나 무거운지에 따라 여러 근육의 참여 시점과 강도는 달라진다.

그래서 회원에게 속근육이 언제 생기느냐는 질문은 사실 이렇게 바꾸어볼 수 있다.


‘내 몸은 언제 이 근육을 필요로 하고, 나는 그 힘을 다른 근육들과 어떻게 나누어 쓰고 있을까.’

느껴지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힘든 곳을 잘 느낀다.

복부 운동을 하다가 목이 뻐근하면 목을 썼다고 느끼고, 허벅지가 떨리면 허벅지만 일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아랫배 안쪽에서 뚜렷한 느낌이 없으면 속근육은 전혀 쓰이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근육을 크게 느끼는 것과 그 근육이 실제로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는 같은 문제가 아니다.

어떤 부위가 타는 듯 힘든 것은 그곳이 익숙하지 않은 일을 맡았거나, 다른 부위보다 먼저 피로해졌거나, 우리가 그 감각에 더 예민하기 때문일 수 있다. 깊은 근육은 겉에서 만지기 어렵고 큰 움직임을 만들지 않으므로 작동해도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배가로근을 손끝으로 찾지 못한다고 그 근육이 존재하지 않거나 완전히 꺼져 있는 것은 아니다. 숨을 쉬고 자세를 바꾸며 걷는 동안 이미 다른 근육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반대로 아랫배를 납작하게 집어넣는 감각을 능숙하게 만든다고 해서 모든 움직임에서 몸통을 잘 조절한다는 뜻도 아니다. 누워서 찾은 힘이 일어섰을 때 사라질 수 있고, 천천히 움직일 때 가능했던 조절이 빠른 걸음이나 예상하지 못한 흔들림에서는 달라질 수 있다.

통증이 있을 때도 사람들의 몸은 한 가지 방식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아픈 부위를 보호하려고 주변 전체를 단단히 굳힌다. 어떤 사람은 그 부위의 움직임을 줄이고 엉덩이나 다리에 더 많은 일을 맡긴다. 또 다른 사람은 움직임의 속도를 늦춘다. 통증은 근육 하나를 일률적으로 끄거나 켜기보다 사람마다 다른 방식으로 근육의 일을 재분배할 수 있다.

따라서 ‘잠든 속근육’ 하나를 통증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그것만 깨우려는 설명은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만든다.


특정 근육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과 그 근육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한 근육의 전원을 켜는 일이 아니다.

지금 하려는 움직임에 맞게 필요한 근육들이 적절한 힘과 순서로 참여할 수 있도록 경험을 쌓는 일이다.

뇌는 필요한 힘을 미리 예상한다

겉모습이 똑같은 상자 두 개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하나는 비어 있고 다른 하나에는 바카라이 가득 들어 있다.

무거운 상자라고 생각하고 들었는데 실제로는 비어 있다면 팔이 예상보다 빠르게 위로 올라간다. 반대로 빈 상자라고 생각했는데 아주 무겁다면 몸이 순간 아래로 끌려가고 팔과 어깨, 몸통에 급히 힘이 들어간다.

몇 초 사이에 근육의 크기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뇌가 과거의 경험과 눈으로 본 정보를 바탕으로 필요한 힘을 미리 예상했는데, 실제 무게가 그 예상과 달랐기 때문에 움직임에 오차가 생긴 것이다. 손과 팔에서 들어온 감각이 실제 무게를 알려주면 신경계는 곧바로 힘을 다시 조절한다.

우리가 익숙한 컵을 들고, 계단을 오르고, 의자에서 일어날 때도 이런 예측과 수정은 계속 일어난다.

처음 배우는 동작에서 온몸에 지나치게 힘을 주는 것도 비슷하다. 뇌가 아직 어느 정도의 힘이 필요한지 정확히 알지 못하니 일단 여러 근육을 한꺼번에 동원해 몸을 단단하게 만든다.

동작이 익숙해지면 불필요한 힘은 조금씩 줄고, 필요한 근육이 필요한 만큼 참여하게 된다.


운동을 배운다는 것은 정답 근육 하나를 찾아 계속 수축하는 일이 아니다.

여러 방향과 무게, 속도를 경험하면서 뇌와 몸이 필요한 힘을 더 정확히 예상하고, 예상이 빗나갔을 때도 유연하게 수정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속근육의 감각을 움직임으로 옮기는 두 가지 연습

속근육을 따로 느껴보는 연습이 쓸모없다는 뜻은 아니다.

움직일 때마다 목이나 허리부터 긴장하는 사람에게는 작고 단순한 동작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아랫배의 감각을 찾는 데서 끝내지 않고, 그 감각을 팔다리의 움직임과 연결해야 한다.



내 몸 안의 속근육을 느껴보기 좋은 운동

속근육 운동2.jpg

1. 숨을 내쉬며 한쪽 발 미끄러뜨리기

등을 대고 누워 무릎을 세우고, 두 발을 골반 너비로 둔다.

한 손은 아랫배에, 다른 손은 갈비뼈 옆에 가볍게 올린다. 코로 숨을 들이마실 때 배만 앞으로 내밀기보다 갈비뼈와 배 둘레가 함께 넓어지는지 느껴본다.

숨을 천천히 내쉬면서 한쪽 발뒤꿈치를 바닥에서 멀리 미끄러뜨렸다가 돌아온다. 허리를 바닥에 세게 누르거나 배를 끝까지 집어넣지 않는다. 다리를 움직이는 동안 숨이 갑자기 멈추거나 골반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 범위에서 좌우 5회씩 반복한다.

이 동작의 목적은 배가로근 하나를 완벽하게 분리해 수축하는 것이 아니다. 호흡을 이어가면서 몸통과 다리가 힘을 나누는 경험을 만드는 데 있다.

2. 벽을 밀며 한 발 뒤로 보내기

벽을 바라보고 서서 두 손을 어깨높이보다 조금 아래에 댄다.

팔꿈치를 잠그지 않은 채 벽을 가볍게 밀고 한 발을 뒤로 보낸다. 앞발과 뒷발이 바닥을 지지하는 동안 머리부터 골반까지 길어지는 느낌을 찾는다.

숨을 내쉬며 벽을 조금 더 밀어보되 어깨를 귀 쪽으로 끌어올리거나 배 전체를 돌처럼 굳히지 않는다. 손이 벽을 미는 힘이 몸통을 지나 발바닥까지 어떻게 전달되는지 느껴본다.

뒤에 있던 발을 다시 가져오고 반대쪽도 반복한다. 좌우 5회 정도 천천히 움직인다.

누워서 찾은 몸통의 조절이 서 있는 자세와 팔다리의 움직임 안에서도 이어지는지 살펴보는 동작이다.

두 동작 모두 통증을 치료하기 위한 운동은 아니다. 운동 중 통증이나 저림이 새로 생기거나 기존 증상이 뚜렷하게 심해진다면 범위를 줄이거나 중단해야 한다. 증상이 지속되거나 힘 빠짐, 감각 변화 같은 신경학적 증상이 동반되면 운동보다 의료적인 평가가 먼저다.


그 회원의 속근육은 언제 생겼을까

잠시 쉰 뒤 나는 회원에게 같은 동작을 다시 시켰다.

이번에는 다리를 멀리 보내는 데 집중하지 말고, 숨을 내쉬는 동안 발뒤꿈치를 조금만 움직이게 했다.

허벅지가 힘들지 않을 만큼 범위를 줄이고, 내 손으로 발의 무게를 조금 받쳐주었다.


“배에 힘이 느껴지세요?”

회원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조금요. 아까처럼 세게는 아닌데, 몸이 덜 흔들려요.”

그때 속근육이 새로 생긴 것은 아니었다.

다리의 무게와 움직임의 범위가 달라졌고, 숨을 참지 않게 되었으며, 목과 허벅지가 혼자 떠맡던 일을 몸통과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회원은 강한 수축보다 몸이 덜 흔들리는 변화로 자신의 힘을 처음 알아차렸다.

우리는 흔히 강하게 느껴지는 힘만 힘이라고 생각한다.

버티느라 턱을 굳히고, 주먹을 쥐고, 온몸을 떨 정도로 애써야 제대로 하고 있다고 믿는다. 조용히 중심을 조절하는 힘은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스스로도 분명하게 느끼기 어렵다.

그렇다고 보이지 않는 힘만이 더 진짜인 것은 아니다.

깊은 근육이 척추 가까이에서 작은 움직임을 조절해도, 겉의 큰 근육이 힘을 만들어 팔다리로 전달하지 못하면 몸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반대로 큰 근육이 아무리 강해도 감각과 조절 없이 힘만 밀어붙이면 움직임은 거칠어진다.

안에서 조절하는 힘과 밖으로 표현하는 힘은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하나는 중심을 지키고, 다른 하나는 그 중심을 실제 움직임으로 옮긴다.

사람의 힘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말 없이 견디는 힘만이 내면의 힘은 아니다.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하고,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고, 마음먹은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힘도 삶을 움직인다.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과 바깥으로 표현하는 순간이 함께 있어야 우리는 한 곳에 굳어 있지 않고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속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더 중요하거나 진짜인 것은 아니다. 겉으로 드러났다는 이유로 얕거나 불필요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더 우월한가 가 아니라, 지금 필요한 힘이 제때 나오고 다른 힘과 함께 일할 수 있는가이다.


그러니 속근육이 언제 생기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그 근육은 이미 당신 안에 있다고.

우리가 연습해야 하는 것은 없던 힘을 새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이미 가진 여러 힘이 서로의 존재를 알아보고 필요한 순간에 함께 움직이게 하는 일이라고.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brunch membership
Karin an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몸을 통해 마음을 돌보는 여자. 센터를 운영하며, 나를 돌보는 일의 힘을 말하고 싶습니다.’ 온라인카지노의 모든 글은 개인적인 서사이며, 센터 이용과는 별개의 문의 부탁드립니다.

48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4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9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작가의 이전글당신의 마음 코어는 오늘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