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쯤이었나.
고3이던 큰딸이 용돈을 꼬박꼬박 모아 엄마를 위해 호텔을 예약했다고 했다.
주변에서는 입시를 코앞에 둔 시기에 다들 말렸지만,
‘하루 공부 안 한다고 큰일 나겠어? 잘 쉬고 나면 오히려 더 힘을 내겠지’ 하는 마음으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호텔을 향했다.
한창 핫하다는 하이디라오에서 세 시간을 기다려 마라훠궈를 먹고,
그야말로 딸들과 행복한 시간을 만끽했다.
강남의 밤기운을 맞으며
딸들과 손을 잡고
산바카라을 하고,
다시 호텔 방으로 올라오려던 찰나.
큰아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방 키가 없어."
맨 마지막에 나오는 아이에게 키를 잘 챙기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번잡한 거리를 걷고
코인노래방까지 들르는 동안 어디선가 흘린 모양이었다.
가방을 몇 번이고 뒤지고,
주머니를 탈탈 털어봐도 키는 보이지 않았다.
분실 수수료를 내면 그만인 일이지만,
생기지 않아도 될 일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에
모처럼의 기분이 왈칵 상해버렸다.
"아휴! 키야 어떻게든 해결하면 되지만, 이게 뭐야. 기분 다 망치게……."
나도 모르게 투덜거리자,
큰아이가 툭 던지듯 말했다.
"엄마, 이게 엄마가 평소에 말하던 ‘우아한’ 거야? ‘세련된’ 거야?"
"그럼 이 상황에서 화도 안 내고 어떻게 해야 하는데?"
"그냥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그깟 열쇠보다 우리의 지금 이 행복이 더 중요한 거잖아. 좀만 지나면 기억도 못할 거면서"
아이의 그 한마디에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묘한 여운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작 의연해야 할 어른인 나는 작은 변수 하나에 흔들렸고,
오히려 열여덟 살 딸아이가 삶의 진짜 중요한 가치를 짚어내고 있었다.
아이의 그 한마디에 왈칵 솟구치던 짜증이 씻겨 내려가듯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네 말이 맞네."
정작 의연해야 할 어른인 나는 작은 변수 하나에 마음이 흔들렸고,
오히려 열여덟 살 딸아이가 삶에서 진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척척 짚어내고 있었다.
분실 수수료를 물고,
카드를 재발급받는 그 야단법석조차 지나고 나면 하나의 유쾌한 웃음거리가 될 터였다.
오히려 추억이 될 수도 있지.
그날 밤, 호텔 방 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지만 내 마음의 문은 아이의 지혜 덕분에 활짝 열렸다.
조금 덜렁대면 좀 어때.
함께 걷던 강남의 밤거리와,
아이가 툭 던져준 그 다정한 훈수는 훗날 꺼내어 보아도 미소 짓게 될 가장 반짝이는 추억이 되었다.
그날 우리는, 그 어떤 열쇠보다 소중한 '서로의 마음'을 단단히 품은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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