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 <김부장>이 연달아 터진 진짜 이유

착한 호구의 시대는 끝났다: 보호자형 영웅의 등장

by마르코 루시

<참교육>과 <김부장>의 연속 흥행은 단순히 사이다 서사의 유행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관객이 영웅에게 요구하는 도덕적 조건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과거의 대중서사에서 영웅은 선해야 했다. 누군가 위험에 처하면 구하고, 약자가 고통받으면 보호하며, 손해를 보더라도 정의를 선택하는 인물이었다. 그의 선의는 별도의 설명 없이도 영웅성의 증거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관객은 더 이상 선의 자체에 자동으로 감동하지 않는다. 관객은 묻는다. 왜 저 인물을 구해야 하는가. 그 희생은 정당한가. 주인공의 선함이 정말 의미 있는 선택인가, 아니면 반복적으로 착취당하는 구조인가. 이 질문이 중요하다. 지금 대중서사의 변화는 관객이 차가워졌기 때문이 아니라, 선의가 서사 안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감각이 훨씬 예민해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관객이 거부하는 것은 약자가 아니다. 관객이 피로감을 느끼는 대상은 바카라임 없는 피해자 포지션이다. 도움은 받지만 바카라임은 지지 않고, 보호는 요구하지만 변화하지 않으며, 사고의 대가는 늘 타인이 치르게 만드는 인물이다. 이런 캐릭터를 주인공이 계속 구하려 할 때, 과거에는 그것이 희생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관객은 그것을 숭고함이 아니라 경계 없는 선함, 즉 호구성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현대의 구원 서사는 더 정교한 명분을 요구한다. 누군가를 구하려면 관계가 축적되어야 하고, 그 인물 안에 최소한의 선의나 변화 가능성이 제시되어야 하며, 주인공의 희생이 공동체 혹은 핵심 가치와 연결되어야 한다. 단지 "불쌍하다"는 이유만으로는 부족하다. 서사가 그 선의의 사용처를 증명해야 한다.


<참교육>이 제공하는 쾌감도 단순한 폭력의 쾌감이 아니다. 핵심은 도덕 질서의 복구다. 관객이 분노하는 지점은 "왜 나쁜 사람이 벌 받지 않는가"에만 있지 않다. 더 정확히는 "왜 작동해야 할 룰이 작동하지 않는가"에 있다. 이 작품은 무너진 규칙과 바카라임의 체계를 가상의 공적 제재를 통해 다시 작동시킨다. 그래서 관객이 느끼는 쾌감은 무정부적 복수가 아니라, 망가진 시스템이 뒤늦게라도 기능하는 판타지에 가깝다.


<김부장> 역시 같은 시대정서를 공유한다. 이 서사의 중심에는 무력해 보이는 중년 가장이 있다. 그는 회사에서는 소모품이고, 집에서는 바카라임자이며, 슬롯에서는 낡은 세대로 취급된다. 그러나 이야기는 그를 단순한 피해자로 머물게 하지 않는다. 그는 다시 힘을 회복하고, 자기 가족과 자기 세계를 지키는 존재로 재구성된다. 이 점에서 <김부장>은 정장을 입은 중년 남성판 슈퍼히어로 서사에 가깝다. 망토 대신 바카라임을 걸치고, 초능력 대신 오래 참아온 생존력을 무기로 삼는 영웅이다.

이 정서 변화의 뿌리는 스크린 밖에 있다. 한국 슬롯는 오랫동안 "이해해라, 배려해라, 참아라, 네가 어른스럽게 넘어가라"를 반복해 왔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의 현실은 어떤가. 이용당하고, 착취당하고, 바카라임은 지되 보호받지 못했다. "착한 건 좋은데 왜 나만 손해 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지금 한국 대중서사의 바닥에 깔려 있다. 두 작품의 흥행은 이 축적된 경험이 서사에 대한 요구로 전환된 결과다.


사실 이 문법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웹소설과 웹툰에서는 이미 10년 가까이 '착하지만 호구는 아닌 주인공'이 지배적 공식이었다. 두 작품의 흥행은 웹에서 먼저 검증된 이 감각이 이제 안방극장의 주류까지 올라왔다는 신호다. 전환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 완성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결국 지금의 영웅상은 희생자형 영웅에서 보호자형 영웅으로 이동하고 있다. 예전의 영웅이 모두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인물이었다면, 지금의 영웅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판단할 줄 아는 인물이다. 그는 착하지만 이용당하지 않는다. 선하지만 무능하지 않다. 배려하지만 착취를 허용하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끝까지 지키지만, 바카라임 없는 무임승차자까지 무조건 끌어안지는 않는다.


이 전환이 '조건부 선의의 시대'의 서사 원리다. 물론 조건 없는 선의의 서사가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달라진 것은 선의가 아무 증명 없이 공짜로 통용되던 시절이 끝났다는 점이다. 선의는 더 이상 무제한으로 발행되는 감정 화폐가 아니다. 이를 대중의 냉혹화로 읽는다면 표면만 본 것이다. 진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너무 오래 착취당해 온 선의가 마침내 자기 보호 본능을 되찾은 것이다. 창작자에게 주는 함의도 분명하다. 착한 주인공을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 선함이 착취당하지 않도록 서사의 구조와 경계를 세우라는 뜻이다. 선의의 인플레이션이 끝난 시대, 선의는 희소해졌기에 오히려 더 값지다. 대중서사는 지금 그 값진 선의를 지킬 줄 아는 새로운 영웅, 유능한 보호자를 향해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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