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와 아빠

비수기의 강력한 동기부여

by스민

‘이대로 망할 순 없다. 내가 더 잘돼야지!’

일이 없던 비수기에 이런 다짐을 하게 된 건 공교롭게도 약 10년 만의 이사 때문이었다.


최근까지 10년간 살았던 비교적 넓은 평수의 경기도 용인의 집을 떠나 어릴 적 살던 서울의 한 지역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이사는 올해 초 갑작스레 내려진 부모님의 결정이라 어리둥절했지만, 따로 독립할 여유도 자산도 없는 나는 그저 수긍하고 서울로 함께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이사해 살게 된 구식 아파트가 기존에 살던 집보다 평수가 많이 좁아져서 살림살이를 어떻게 줄이지,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급한 마음에 일단 이삿짐센터를 통해 짐을 전부 이고 지고 가져오긴 했는데. 막상 어떻게 물건들을 줄여나갈지, 무엇을 정리하고 버리고 비워야 할지 서글펐다.


하루하루 미루고 또 미루기만 하던 방청소에 박차를 가한 건, 다름 아닌 끊임없이 쉬지 않고 성실히 움직인 아빠의 모습이었다. 가장의 무게 때문이었을까. 아빠는 이사 온 후 발생하는 온갖 귀찮고 성가신 일들을 혼자 손수 해결하느라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구식 아파트였지만 다시 이사 오면서 인테리어를 싹 다 새로 했는데, 이사 후 입주해 보니 곳곳에 보수가 필요했다. 장마로 비가 퍼부은 다음날 베란다 물이 새서 아빠는 인테리어업자를 다시 불러 공사를 시켰고, 욕실 마감이 제대로 되지 않아 흰 본드칠 마감을 다시 해야 했을 때도 ‘욕조 접근 및 이용 금지’라는 손글씨가 적힌 종이를 욕조 앞에 붙여 가족들에게 본드가 마를 때까지 사용하지 못하게 주의시켰다.


아랫집에서 ‘강아지가 너무 짖어서 시끄럽다’는 인터폰을 받은 이후로는 밥 먹을 때마다 짖는 습관이 있던 강아지를, 입을 벌려 짖을 조짐만 보이면 선방을 날려 "짖으면 안 돼!" 하며 단단히 주의시키고 식탁 예절을 훈련시켰다. 다행히 이 동네에선 짖으면 집에서 쫓겨날 거란 메시지가 잘 전달되었던지 강아지도 어느 순간부터 신기하게 음식 앞에서 짖기를 멈췄다.


인터넷 선이 1층에서부터 벽을 타고 고층인 우리 집까지 올라오도록 설치됐는데, 저층에 사는 어느 할아버지가 인터넷 선이 창문에 스쳐 보이고 거슬린다며 민원을 넣는 바람에, 아빠는 그에 대응하느라 땡볕에 풀밭에서 인터넷 설치 기사에게 설명하고 지시하느라 팔다리에 모기를 왕창 물렸다며 푸념하기도 했다.


이케아에서 저렴하게 장만한 서랍장을 직접 조립하려다 설명서대로 잘 되지 않자 "이젠 이런 거 직접 못하겠다! 때려치우련다!" 하며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결국 설명서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나름 비슷하게 완성했다.


하필 역대급으로 더워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날, 갑자기 에어컨이 고장 나는 바람에 하이마트와 집을 하루에 몇 번씩 오가며 바로 설치 가능한 새 에어컨을 구해 가족들 더위에 힘들지 않게 해 주려 최선을 다한 우리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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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일상에 스민 이야기를 씁니다. 문화예술계 한영 번역가·에세이스트. 에세이 『오 마이 갓김치! K콘텐츠 번역가로 일하는 법』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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