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온라인 게임인이 될 순 없잖아?
퇴사 의사를 밝히고, 회사로 출근하는 날마다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었다.
내가 다닌 회사의 점심 문화는 대체로 각자 도시락을 싸와 사무실에서 먹는 분위기로, 함께 나가서 먹고 들어오는 날이 손에 꼽힐 정도였다. 일이 많으니 대충 빨리 먹자, 혹은 먹으면서 일하자, 그게 아니라면 매번 밖에서 쓰는 외식비가 아까우니 집에서 싸 오자는 취지 같았는데, 개인적으로 한 시간의 점심시간마저 사무실 안에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출근 전에 도시락을 쌀 여유도, 정성도 부족했음은 물론이요, 가뜩이나 바카라상 앞에 늘상 앉아서 지내느라 활동량이 부족한데 점심시간이 아니면 몸을 움직일 일도 거의 없을 것 같았으니. 그래서 점심시간이 되면 혼자서라도 외식을 하고 들어왔다.
그렇게 나는 내가 속한(비교적 짧은 기간이어서 ‘속했다’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조직의 문화에 어우러지려 노력하기는커녕 프리랜서로 일할 때처럼 ‘마이웨이’를 고집하며 회사로 출근한 6개월 동안 단 한 번도 도시락을 싸가지 않았다. 그 대신 매번 회사 근처에서 먹고 싶은 메뉴를 선택해 혼자만의 점심시간을 오롯이 즐겼다.
퇴사일이 가까워질수록 혹시라도 다 같이 점심 먹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어쩌지, 누군가 갑자기 같이 먹자고 하면 어쩌지,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점심시간 무렵 “(도시락)싸왔습니다”라는 한 직원의 선언(?)이 들려옴과 동시에 나는 “식사 맛있게 하세요” 또는 “식사하고 오겠습니다”를 내뱉고 도망치듯 사무실을 나왔다. 그리고 매번 식사다운 식사보다는 주로 샌드위치에 커피를 곁들여 먹었다.
메뉴로 샌드위치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점심시간 한 시간을 꽉 채워 보내기 위해서였다. 보통 식당에 가면 식사만 하고 바로 나와 사무실로 직행할 수밖에 없고, 식후 다른 카페로 이동하는 데 추가로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한 시간이 매우 빠듯했다. 반면 샌드위치가 있는 베이커리 카페를 가면 비교적 여유롭게 식사와 커피를 동시에 즐길 수 있었다. 나름 나만의 전략이었다고나 할까. 8시간 근무를 버티기 위한, 내향인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으니, 혼밥 시간을 사수하기 위해 매번 마음 졸였다.
입사 초반에는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근처 베이커리 카페로 갔고, 때로는 팀이 종종 간다고 알려준 베이글 카페를 갔다. 김가네 같은 분식집이나 외국인이 운영하는 베트남 쌀국수집, 수육과 막국수를 함께 즐길 수 있눈 한식집 등의 식당을 간 적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아 그냥 샌드위치 먹으러 갈 걸‘하는 후회가 남았다. 결국 잠시 방황하다가 ’역시 샌드위치가 최고‘라며 다시 샌드위치가 나오는 카페로 돌아와 정착했다. 나중에는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는 인플루언서가 공유한 인근 샌드위치 맛집을 찾아가며 여유를 즐기기에 이르렀다..
잘게 썬 사과를 빵 사이에 차곡차곡 끼워 넣어 한 입 베어물 때마다 아삭아삭한 애플 브리 샌드위치, 특유의 허브 소스가 모짜렐라 치즈와 닭고기와 조화를 이뤄 담백한 치킨 브레스트 샌드위치, 그리고 커피를 함께 주문하면 몇 천 원이 할인되는 세트 프로모션이 적용 안되어 아쉽지만 모양도, 맛도 모두 최고였던 그 가게의 시그니처 오픈 토마토 샌드위치까지. 접시 한켠에 함께 나온 당근라페 한 톨 남기지 않고 마지막가지 포크로 슥슥 긁어 깨끗이 먹어치웠다. ‘그래, 이런 게 온라인 게임인의 행복이지‘라고 속으로 되뇌며.
그렇게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맛집에서 점심으로 2만 원이 훌쩍 넘는 샌드위치와 커피세트를 먹으며 사치라면 사치라고 할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이 정도쯤은 내 정신건강을 위해 소비해도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맛있는 걸 먹는 것은 마음에 큰 투자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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