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탓하지 않는 기수
풍요로운 날에도 반석을 기억하는 법
오늘은 아침 열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나를 들여다보았다.
바카라상 위에는 TCI 교육자료가 펼쳐져 있었다. 오전에는 검사의 역사와 이론적 배경을 듣고, 오후에는 기질과 성격의 일곱 가지 척도, 성격장애와의 관련성, 검사 해석과 사례를 배웠다.
심리상담연구소 ‘사람과 사람’의 김기환 소장님이 하루 동안 강의를 이어갔다.
화면에 일곱 개의 숫자가 떴다.
자극추구 51.
위험회피 63.
슬롯적 민감성 26.
인내력 34.
자율성 80.
연대감 61.
자기 초월 83.
숫자들이 나를 일렬로 세워놓고 설명하는 것 같았다.
나는 목적이 생기면 움직이는 사람이다. 내가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방향을 정하면 스스로를 끌고 간다. 삶에서 의미를 찾고, 오늘의 사건을 더 큰 이야기 안에서 해석하려는 경향도 강하다.
그러나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는 않는다. 가까운 사람에게 지지가 필요하면서도 먼저 손을 내밀어 달라고 말하는 데는 서툴다. 일의 의미를 발견하면 열심히 달리지만, 쉬지 않고 오래 버티는 힘은 그 열심과 반드시 같지 않다.
나는 성실한 사람인 동시에 쉽게 소진되는 사람일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두 가지를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열심히 시작했으니 끝까지 버텨야 한다.
목적이 분명하니 피곤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검사 결과는 목적의식과 인내력이 서로 다른 척도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안다고 해서 그것을 무한정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게는 의미를 찾는 시간만큼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
혼자 해내는 힘만큼 가까운 사람의 지지를 요청하는 연습도 필요했다.
TCI는 사람을 일곱 개의 숫자로 확정하는 검사가 아니다. 네 가지 기질과 세 가지 성격 차원을 통해 내가 어떤 자극에 반응하고, 무엇을 조심하며, 관계와 보상에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을 얼마나 지속하는지를 살펴보는 도구다.
기질에는 자극추구, 위험회피, 슬롯적 민감성, 인내력이 있다. 비교적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반응 경향이다.
성격에는 자율성, 연대감, 자기 초월이 있다. 목표와 가치에 따라 자신을 조절하고, 타인과 협력하며, 자신을 넘어선 의미를 받아들이는 방식과 관련된다.
백분위는 능력 점수나 성적표가 아니다. 같은 규준집단 안에서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나타낼 뿐이다. 높다고 무조건 좋지도 않고, 낮다고 나쁜 것도 아니다. 한 척도만으로 우울이나 불안, 성격장애를 진단할 수도 없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나를 기준표로 삼았다.
내가 정상이고, 다른 사람들은 나와 다르다고 여겼다.
아니, 정확히는 나와 다른 사람을 비정상으로 판단했다.
나는 미리 계획하고, 정해진 시간에 움직이고, 맡은 일은 목적에 맞게 끝내려 했다. 다른 사람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처럼 움직이지 않는 사람을 보면 게으르다고 판단했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 바카라임감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나의 높은 자율성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힘이었지만, 방향을 잘못 잡으면 다른 사람까지 내 기준으로 끌고 가는 고집이 될 수 있었다.
나의 높은 자기 초월은 삶의 의미와 신앙을 찾는 통로였지만, 현실의 피로와 한계를 건너뛰고 모든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과잉사고가 될 수도 있었다.
위험회피가 아주 높은 편은 아니어도 나는 평균보다 조금 더 조심스럽다. 그래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염려하고 대비한다. 슬롯적 민감성이 낮다는 것은 사랑이나 공감 능력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속마음을 표현하거나 관계의 보상에 즉각 반응하는 방식이 절제되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랑하면서도 무심해 보이고,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괜찮은 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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