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상장도, 운동회도 사라진 교실...

어른들의 '유난'이 빼앗은 것들

by지안의 방

"올해는 가을 운동회 안 한대요. 민원이 너무 많아서요."


"상장 수여식도 없어졌어요. 못 받는 아이들 기죽는다고 학부모님들 항의가 빗발치거든요."


요즘 학교 현장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씁쓸함을 넘어 아득해집니다. 달리기에서 꼴찌를 한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아예 등수를 매기지 않고 손을 잡고 결승선에 들어오게 합니다.


누군가는 상을 받고 누군가는 박수를 쳐야 하는 상황이 불편하다며 졸업식에서조차 상장을 없애거나 모두에게 똑같은 참가상을 쥐여줍니다.


현장체험학습은 '안전사고 시 교사와 학교가 바카라임지라'는 과도한 압박과 민원에 떠밀려 줄줄이 취소되고 있습니다.


'내 아이가 조금도 다치지 않고, 기죽지 않고,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간절한 걱정. 하지만 이 거대한 어른들의 유난이 우리 아이들의 교실에서 무엇을 앗아가고 있는지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좌절할 기회도, 환희를 누릴 기회도 박탈당한 아이들

우리는 아이들을 무균실에 가둬두고 있습니다. 달리기에서 꼴찌를 하며 엉엉 울어보고, 다음번엔 꼭 이기겠다며 이를 꽉 깨물어 보는 건강한 좌절과 극복의 경험을 부모가 앞장서서 지워버립니다.


나보다 뛰어난 친구를 보며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는 축하의 기쁨도, 내가 땀 흘려 노력한 결과로 상장을 받아들었을 때의 그 짜릿한 환희도 사라졌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상을 받는 교실에서, 아이들은 노력에 따른 정당한 성취라는 삶의 중요한 인과관계를 배울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떠난 체험학습에서 길을 잃어 헤매보거나, 용돈을 계산해 과자를 사 먹으며 겪는 소소한 실패와 모험의 시간들.


이 모든 오만가지 생생한 감정과 경험의 재료들이 어른들의 걱정과 참견이라는 이름표를 단 채 속절없이 폐기 처분되고 있습니다.



안전을 가장한 어른들의 오만

아이들은 넘어지면서 걷는 법을 배우고, 갈등을 겪으며 타인과 살아가는 법을 사유합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온몸으로 부딪쳐보아야 비로소 '나는 이럴 때 화가 나는구나', '나는 이걸 이겨낼 힘이 있구나'를 깨달으며 스스로 생각하는 단단한 자아를 형성해 나갑니다.


모든 갈등과 실패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 주는 것은 결코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이가 겪어야 할 아픔을 곁에서 지켜볼 자신이 없는 '부모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이기심일지 모릅니다.


아이가 스스로 부딪치며 생각하고 성장할 권리를, 어른들이 안전을 핑계로 오만하게 빼앗고 있는 것입니다.


비바람을 맞지 않고 온실에서만 자란 화초는 들판에 나가는 순간 작은 바람에도 꺾여버립니다.


좌절과 실패, 질투와 환희라는 다채로운 감정의 파도를 타보지 못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 마주할 진짜 세상의 거친 파도를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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