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피

by유림

딱딱한 껍질로 둘러싸여 있을 때는 공격에 안전하지만,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갑각류 이야기다.


가장 발전할 때는 그 껍질을 스스로 벗어던지는 순간이다.

게나 가재 같은 갑각류는 자라기 위해 탈피를 한다. 낡은 껍질을 깨고 나오는 그 순간, 몸은 무방비 상태가 된다. 말랑말랑한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고, 천적의 눈에는 가장 손쉬운 먹잇감으로 보인다. 실제로 갑각류가 가장 많이 잡아먹히는 시기가 바로 이 탈피 직후라고 한다. 새 껍질이 다시 단단해지기까지, 그들은 숨거나 웅크린 채 시간을 견딘다. 그 며칠, 혹은 몇 시간의 무방비함을 통과해야만 한 치수 더 큰 몸으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안전은 성장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안전은 성장을 멈춘 상태의 다른 이름일 때가 많다. 딱딱한 껍질 안에서 나는 다치지 않지만, 그 안의 나는 그대로다. 안전을 벗어던지고, 공격받기 쉬운 상태로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가는 선택은 어렵다. 하지만 지금보다 커지려면, 두려움을 이기고 껍질을 벗어야 할 때가 온다.


이 껍질은 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번 성공을 거둔 방식도, 시간이 지나면 또 하나의 딱딱한 껍질이 된다. 우리는 한번 일등을 하면 그 자리를 지키고 싶어서 기존의 방식, 성공했던 방법에 집착하게 되는데, 과거의 정답이 현재에도 또는 늘 통하리란 법은 없다.


모순적이게도, 한 번 일등을 했다는 이유로 그 방식을 굳건히 고수하면 오히려 금세 그 자리를 내줘야 한다. 자칫 옹졸해지거나 근시안적으로 세상을 보게 되기도 한다. 성공 방정식이 분명 존재하고, 그 방정식을 매번 쓰고도 매번 잘 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도, 예상컨대 방정식에 투입되는 요소 x(input)만큼은 탄력적으로 바꿔가며 적용할 것이다. 방정식 자체가 아니라, 방정식을 계속 새로 채워 넣는 유연함이 진짜 비결이라는 뜻이다.


세상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차고 넘쳐서,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게임의 룰이 진행되기도, 변경되기도 한다. 그러니 유연하게 틀을 깨는 시도, 두렵지만 과감히 껍질을 벗어던지고 약한 상태에서 더 크고 단단한 껍질을 만드는 시도가 종종 세상을 바꾼다.


가재는 탈피를 앞두고 며칠 동안 먹는 것을 멈춘다고 한다. 껍질을 벗기 전, 몸 안에서부터 이미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다. 어쩌면 껍질을 벗는다는 건 어느 날 갑자기 결심하는 사건이 아니라, 안에서 조용히 몽글몽글 차오르다가 더는 그 안에 머물 수 없어지는 순간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어떤 껍질 안에 있을까. 안전하지만 더 이상 자라지 않는, 딱딱하고 익숙한 그 껍질을. 언젠가는 벗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무방비해질 그 며칠이 무서워 자꾸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껍질을 벗은 가재가 곧바로 더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한동안은 그저 말랑한 채로, 숨죽이고 버티는 시간을 지나야 한다. 그 무름을 견뎌낸 자만이 결국 한 치수 더 큰 몸으로 살아간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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