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통통배를 타면서 드넓은 바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신비로운 파도, 그리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답답함을 날릴 때가 가끔 있다. 좋은 것을 보면 좋은 생각이 나듯, 광활한 바다를 보면 마음이 좀 넓어지는 것 같다. 특히, 햇빛에 파도가 반짝이는 모습을 바라보면 아름다움을 넘어 황홀할 때가 있다. 반짝이는 파도를 윤슬이라고 하는데, 예전에 친구가 "윤슬은 바다가 추는 눈부신 갈치춤"이라고 했던 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윤슬을 볼 때마다 그 친구가 생각이 난다.
생각해보면 윤슬이 그토록 눈부신 건, 그것이 누구의 것도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바다가 만든 것도, 햇빛이 만든 것도 아니고, 둘이 우연히 만나 일어나는 사건. 내가 붙잡으려는 순간 흩어지고, 다음 파도에서 또 다른 얼굴로 반짝인다. 어쩌면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은 대개 이렇게, 누구의 완전한 소유도 아닌 채 그저 만남 속에서 잠깐 태어나는 것들이 아닐까.
파리에 살아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미술관과 갤러리가 넘쳐나고, 일상적인 것들도 아름답게 바꾸려는 시도를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파리 전체가 들썩이는 전시도 좋지만, 작은 갤러리에서 소수의 작품만 걸어놓고 조용한 가운데서 옷자락이 사르륵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감상하는 것도 참 좋다.
파리 6구의 한 갤러리에서 이우환(Ufan LEE)의 《Response》 전시가 열려 다녀왔다. 작지만 알찬 전시였다. 60년간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화두를 지켜온 이 대단한 작가는, 89세에 완성한 작품을 파리 한복판에 걸며 이렇게 말한다.
"붓은 몸과 캔버스 사이에서 탄생한다. 붓은 손의 연장선이 아니다. 그것은 손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붓과 손 사이에는, 그리고 캔버스와 붓 사이에도, 별과 별 사이의 거리와 같은 간극이 존재한다."
예술은 내가 완전히 장악하는 순간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통제가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고.
붓이 나의 의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붓은 세상과 만나는 접점인 것.
인간, 붓, 캔버스 사이에는 항상 메워지지 않는 틈과 긴장이 있으며, 그 사이에서 서로 만나는 사건이 예술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다시 바다를 떠올렸다.
윤슬도 결국 빛과 물 사이의, 메워지지 않는 틈에서 태어난 반짝임이었다. 내가 그것을 완전히 소유하거나 설명할 수 없었던 것처럼, 이우환에게 붓 역시 손의 연장이 아니라 손이 끝나는 자리에서 시작되는 무엇이었다.
자기 홍보 홍수의 시대에 창작자는 만남의 매개자일 뿐이라는 그의 메시지는, 시류를 타지 않고 자기만의 색을 굳게 지킨 자의 뼈대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바다 위의 반짝임이든, 캔버스 위의 붓질이든, 우리가 정말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은 언제나 우리가 다 채우지 못한 그 틈에서, 우리의 통제가 끝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태어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