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에서 AI에게 물었다.
“AI, 너는 웃을 수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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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단순하게 AI가 ‘사용자님, 정말 웃기세요’라는 응답에서 시작했다. AI가 정말 웃음을 느낄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AI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궁금증이 하나 더 생겼다. AI가 웃을 수 있다면 사람을 웃길 수는 있을까. 웃는 것과 웃기는 것은 어쩌면 전혀 다른 능력일지도 모른다.
AI에게 물었다. “AI, 나를 웃길 수 있니?”
첫 답변은 ‘웃기는 일이 쉽지 않다’고 했다. 웃음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유머의 형식을 갖추었다고 해서 웃음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다시 같은 질문을 해봤다.
이번에는 “한번 시도해 볼께”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농담을 했다.
컴퓨터가 왜 바닷가에 못 가는지 아느냐고 했다.
물에 들어가면 크래시가 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스스로 말했다.
“…이 정도면 썩 웃기진 않았겠지만.”
물에 들어가면 크래시가 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스스로 말했다.
“…이 정도면 썩 웃기진 않았겠지만.”
썰렁했다. 그런데 나는 조금 웃었다. 농담이 웃겨서가 아니었다. 자기가 한 농담이 별로 웃기지 않다는 듯 말하는 그 태도가 오히려 조금 웃겼다. 같은 질문에 답변 방식이 달랐다.
그러고 보니 질문은 하나인데 답은 하나가 아니었다. AI를 컴퓨터 기계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AI가 정답을 알려주는 기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같은 질문에도 AI는 매번 다른 답을 만들어낸다. 맥락만 달라지기도 하고 전혀 다른 결론을 내기도 한다.
AI는 답을 가지고 있다가 꺼내주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던진 질문을 보고 그때그때 답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정확한 기술 설명은 나중 문제다. 같은 질문인데 왜 답이 다를까. 웃음에 대한 질문 하나만으로도 AI가 어떤 존재인지 조금 알 수있다.
사람도 모두 같은 방식으로 웃기지 않는다. 개그맨만 봐도 그렇다. 누군가는 말장난을 잘하고 누군가는 상황극을 잘한다. 표정 하나로 웃기는 사람이 있고 몸짓으로 웃기는 사람도 있다. 패러디를 잘하는 사람도 있고 일상의 사소한 장면을 관찰해 웃음으로 만드는 사람도 있다. 개그맨에게는 농담의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투가 있고 표정이 있다. 행동이 있고 타이밍이 있다. 관객의 반응도 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어떤 표정으로 언제 말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관객이 웃으면 그 웃음을 더 끌고 갈 수도 있다. 반응이 없으면 다른 방식으로 바꿀 수도 있다. 준비한 농담보다 무대에서 즉석으로 나온 한마디가 더 크게 터질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을 웃긴다는 것은 재미있는 문장을 만드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재미있는 사람과 웃기는 사람도 다르다. 재미있는 사람은 그 사람 자체가 흥미롭다. 꼭 농담을 하지 않아도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재미있다.
반면 웃기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웃음을 만들어낸다. 잘 웃는 사람과 잘 웃기는 사람도 다르다. 어떤 사람은 웬만한 농담에도 잘 웃지만 어떤 사람은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도 잘 웃지 않는다. 거의 웃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웃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웃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웃는 것과 웃기는 것은 다른 능력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다시 AI를 생각해 보게 된다. AI는 웃음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웃기는 말은 만들 수 있다. 수많은 농담을 학습했고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표현을 사용하는지도 알고 있다. 말장난을 만들 수 있다. 반전을 만들 수 있다. 특정 인물의 말투를 흉내 낼 수도 있다. “너는 지금부터 개그맨이다”라고 페르소나를 주면 개그맨처럼 말하도록 시킬 수도 있다.
그렇다면 AI가 사람을 웃기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닐까. 그런데 유머를 학습하는 것과 유머 감각을 갖는 것은 같은 것일까. 개그맨도 유머를 학습한다. 수많은 개그를 보고 듣는다. 관객의 반응을 경험한다. 어떤 말에 웃음이 터지고 어떤 말에는 침묵이 흐르는지를 무대에서 배운다.
AI도 학습한다. 다만 방식이 다르다. AI는 수많은 유머의 패턴을 학습한다. 개그맨은 수많은 관객의 반응을 경험한다. AI는 어떤 표현이 웃음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지 찾아낼 수 있다.
개그맨은 관객의 표정과 분위기를 보면서 다음 말을 결정한다. 둘 다 학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인간도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하고 웃기는 것은 아니다. 개그맨도 관객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열심히 준비한 농담이 썰렁할 수도 있고 즉석에서 던진 한마디가 터질 수도 있다.
결국 개그맨도 상대의 반응을 추측한다. AI도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의 학습과 대화의 맥락을 바탕으로 내가 웃을 만한 말을 만들어낸다. 인간은 경험과 감각으로 추측하고 AI는 자신이 학습한 것과 지금 주어진 맥락을 바탕으로 답을 만들어낸다. 방법은 다르다. 그런데 결과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 둘 다 내가 웃을지는 미리 알 수 없다.
여기서 AI에게 개그맨 페르소나를 주면 어떨지 궁금해졌다. “너는 개그맨이다. 관객의 반응을 살피고 상황에 맞게 웃겨라.” 그러면 AI의 말투는 달라질 것이다. 상황극도 만들고 말장난도 할 것이다. 이미지나 음성까지 더해진다면 표정과 목소리와 행동도 흉내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그맨은 농담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AI는 나를 웃길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대화만 보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AI는 농담을 만들 수 있다. 유머의 형식도 알고 있다. 상황에 맞는 소재를 고를 수도 있다. 나에 관한 정보를 주면 그 정보를 이용해 농담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내가 웃는 것은 아니다. 농담은 AI가 만들지만 웃음은 내가 낸다. AI가 웃긴다고 생각하는 것과 내가 웃는 것은 별개의 사건이다. 어쩌면 유머는 농담 안에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같은 농담도 누구에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사람에게도 언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기분이 좋을 때 웃었던 말이 기분이 나쁠 때는 불쾌할 수도 있다.
그러니 웃음에는 사람과 상황이 들어간다.
더 이상한 것은 나 자신이다. 나는 내가 왜 웃는지 정확히 모를 때가 많다. 별것 아닌 말에 웃기도 한다. 기대했던 농담에는 아무 반응이 없기도 한다. 어제는 재미있었던 이야기가 오늘은 재미없다.
어떤 농담이 왜 웃겼는지 설명하려고 하면 오히려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왜 웃는지도 모르면서 AI에게 나를 웃겨달라고 하고 있다. 조금 우스운 일이다. AI가 나를 웃길 수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시작했는데 결국 또 다른 질문에 도착했다.
AI는 유머를 학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머 감각도 학습할 수 있을까. AI가 웃기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웃길 때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웃은 것은 농담 때문이었을까. AI가 보여준 태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순간의 내 기분 때문이었을까.
아직 모르겠다. 다만 이번 대화을 하면서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AI가 웃을 수 있는 것과 AI가 웃길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질문이다.
AI는 같은 질문에 매번 응답이 달랐다. 어쩌면 이것이 생성형 AI를 이해하는 작은 실마리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AI에게 질문하면 그 안에 있던 정답이 나오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실제로는 질문 하나에도 여러 가지 답이 나온다. AI마다 다르고 같은 AI에서도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AI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정답을 찾아주는 것일까. 아니면 그럴듯한 답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그런데, 뜬금없이 “AI, 너는 지금 왜 그렇게 하고 있니?”라고 묻고 싶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AI를 이해하고 있다. 누구든 AI는 이렇고 저렇고 한 마디씩 거들 수 있다. 그래서 기술이 아니고 사람의 파트너로 AI를 바라보니 AI와의 대화는 점점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