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인간다움, AI다움
AI와 대화하는 중에 어느 대목에서 “사용자님, 정말 유머가 있세요”라는 반응이 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미있는 사람’이다 또는 ‘웃기는 사람’이라는 말에 기분 나쁜 경우는 많지 않다. 요즘은 AI도 은연 중 사람과 교감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려니 하고 ‘대화‘를 이어가다가 기계인 AI가 유머를 이해하는가 또는 나를 이해 할 수 있을까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먼저 “AI, 너는 유머에 웃을 수 있니?”라고 물었다. 사실, 거의 예상했던 대로 AI는 답했다.
웃지 않는데 유머를 이해한다고? 문득 의문이 들었다. 웃음을 경험하지 않는 존재가 정말 유머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다시 AI에게 물었다. “웃지 못하는데도 유머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유머를 느껴서 칭찬한 것이 아니라, 대화 전략으로 적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라고 알려주었다.
사실, 여기서 웃음이 나왔다. AI는 냉정하게 분석해서 이 순간에 ’사용자님 정말 유머가 있으세요‘라고 답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했었구나. 진정성 있는 칭찬과 적절한 반응은 같은 것일까? 연애할 때 상대방에게 호감을 보이려고 온갖 잔머리를 굴리는 것과 유사하려나. 물론, 연예할 때는 그것이 진심이었음을 우리는 안다. 살다 보니 진심이 과했다고 느끼는 정도.
그렇다면 웃음은 감정인가, 반응인가? 물론 우리는 정답을 알고 있다. 감정이기도 하고 반응이기도 하다. 감정은 마음속에 있고, 반응은 감정과 분석이 합쳐진 결과? 다만, 사람의 감정은 변한다. 그래서 같은 유머에 반응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같은 농담이라도 기분이 좋으면 크게 웃는다. 화가 나 있으면 웃지 않는다. 상사 앞에서는 참는다. 혼자 있을 때는 피식 웃는다. 그래서 감정 변화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다.
AI의 반응은 달라질까? AI는 분석한 맥락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다. AI가 분석한 대화 맥락은 매번 다를 수 있다. 그러면 사용자의 의도가 다르게 해석된다. "재미있네요."라고 답할 수도 있고, "흥미로운 말장난입니다."라고 답할 수도 있다. 그러면 그것은 감정이 변한 것일까. 하지만 이것을 감정이 변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람은 어제는 웃었지만, 오늘은 웃지 않을 수 있다. 어제 연인과 헤어졌을 수도 있고, 몸이 아플 수도 있고, 그 유머를 수십 번 들어 질렸을 수도 있다. 사람과 만나면서 쌓이면서 겹겹이 켜 올려진 시간이 있다. 그 변화는 살아온 시간이 만든 것이다. 이것 또한 감정에 영향을 준다. 사람이 상대방, 또는 때와 장소에 따라 유머에 반응이 달라지는 이유이다. 변화가 큰 사람을 변덕스럽다고 한다.
AI는 이전 대화가 맥락 분석에 영향을 준다. 게다가 생성형 AI가 가진 고유 특성에 따라 분석 결과가 일정하지 않다. AI는 사전학습이라는 과정을 통해 모든 사람의 행동 패턴이 조금씩 모두 녹아있다. 어쩌면 AI가 훨씬 더 변덕스러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변덕은 같은 종류일까. AI의 변덕은 계산과 맥락이 달라진 결과다. 사람의 그것은 살아낸 시간이 남긴 흔적이다. 둘 다 변하지만, 하나는 학습 지식으로 분석이 달라진 결과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이 자신을 바꾼 결과이다. 지식과 사람다움이다. ’지식과 사람다움?’하고 AI에게 물었다.
사람다움은 시간을 살아낸 흔적일지도 모른다. 흔적과 감정과 느낌이 얽힌, 우리가 학습할 수 없는 실타래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시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떠도는 감각들이다. 시간은 기억을 남기고, 기억은 감정을 바꾼다. 그래서 같은 유머에도 오늘과 내일의 웃음은 다르다. 사람다움은 시간을 살아내며 몸에 밴다.
AI다움은 지식을 학습하고 정보를 바탕으로 분석하고 반응한다. 그 변화는 시간을 살아낸 결과라기보다, 정보와 맥락이 달라진 결과이다. 시간을 살아낸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AI는? AI도 언젠가 시간을 살아낼 수 있을까.
그리고, 다시 묻고 싶었다.
AI가 웃음이 분석의 결과이면
사람을 분석해서 웃기는 것도 가능할까.
“AI, 너는 나를 웃길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다음 연재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