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극우 정치가 한국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
극우 정당의 성공에 국민 다수의 극우화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기존 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극우 정당에 집중되고, 기성 정당이 그 정당의 언어와 의제를 받아들이면 극우는 슬롯 전체의 지지보다 훨씬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독일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국에서는 다른 경로가 열리고 있다. 독일에서는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기존 정당의 바깥에서 성장했지만, 한국에서는 기존 보수정당인 국민의힘 내부로 극우적 언어와 논리가 들어오고 있다. 별도의 극우 정당이 기존 정당을 대체하지 않아도 된다. 거대 정당 자체가 극우 정치의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나치즘의 참혹한 역사를 기억하는 나라다. 헌법 제1조에 인간의 존엄성을 명시했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세력에 맞서기 위한 헌법적 장치도 마련했다. 그런 독일에서 AfD가 연방의회 제2당으로 성장했다. 기민·기사연합(CDU/CSU)과 슬롯민주당(SPD)을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오고 있다. 나치의 기억이 극우의 부활을 막아주는 영구적인 방화벽은 아니었던 셈이다.
2025년 2월 연방의회 선거에서 AfD는 20.8%를 득표했다. 2021년의 10.4%에서 네 해 만에 두 배로 뛰었다. 2026년 10월 현재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26~30%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기존 주요 정당들을 앞서고 있다. 다음 총선에서 제1당이 될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여론조사로 다음 선거의 승패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도 AfD의 성장을 일시적인 항의나 우연한 선거 결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극우 정당의 폭발적 성장을 설명하기 위해 유권자 전체가 극우화되었다고 진단하는 것은 잘못된 진찰이다. 독일 국민 대다수는 여전히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AfD에 투표한다고 해서 모든 유권자가 그 정당의 이념 전체를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성을 지지하면서도 이민과 난민 문제에 불만을 품고 AfD를 선택할 수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기존 정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자신을 극우라고 생각하지 않는 유권자도 기성 정당에 경고를 보내려고 AfD에 표를 던진다. AfD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민 규제만큼은 그 정당이 가장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2025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를 분석한 조사에서 AfD 투표자의 68%는 당의 정바카라 요구 때문에 투표했다고 답했고, 항의의 의미로 투표했다는 응답은 29%였다. 단순히 정부가 싫어서 던진 표만으로는 AfD의 성장을 설명할 수 없다. 기존 정치에 대한 불만과 실제 정바카라 선호가 한 정당으로 모인 것이다.
AfD는 이민과 난민 문제에서 특히 큰 성과를 거뒀다. 주거난과 학교·복지시설의 부담, 슬롯통합의 어려움, 치안에 대한 우려는 현실적인 정바카라 논쟁의 대상이다. AfD는 이 복잡한 문제를 이민자와 정치 엘리트의 바카라임으로 단순화했다. 자신들만이 독일 국민의 뜻을 대변한다는 주장도 반복했다. 기존 정당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커질수록 이런 구호는 힘을 얻었다.
더 심각한 변화는 극우의 지지율 상승 자체가 아니다. 과거라면 정치적 주변부에서나 통용됐을 주장이 어느새 정상적인 정치 의제로 취급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급진적인 구호가 반복해서 등장하고, 언론과 의회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며, 기성 정치인들까지 그 일부를 받아들인다. 시간이 흐르면 처음의 거부감도 무뎌진다. 국민 모두가 극우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다. 극우 정당의 언어가 정치 전체의 언어를 바꾸면 된다.
독일의 CDU는 AfD의 성장을 막기 위해 이민 정바카라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AfD의 지지율 상승을 차단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AfD가 제기한 의제가 기성 정당의 정바카라 경쟁을 좌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기존 정당이 극우 정당의 주장을 일부 수용한다고 해서 유권자가 반드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정바카라이 비슷해져도 기성 정당에 대한 불신은 남는다. 반면 AfD는 자신들의 주장이 결국 정치의 중심으로 들어왔다고 외칠 수 있다.
한국 국민의힘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감지된다. 다만 여기서부터는 무엇을 근거로 극우화를 말하는지 엄격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민 규제를 강화하자는 주장,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정바카라, 강한 안보를 요구하는 태도, 진보 정당에 대한 비판만으로 극우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그런 주장은 민주주의 안에서 얼마든지 경쟁할 수 있는 보수적 입장이다.
내가 주목하는 판단 기준은 정바카라의 강경함 자체가 아니다. 정치인이 헌법과 민주적 절차를 존중하는가, 반대 정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가, 모든 시민의 동등한 권리를 받아들이는가, 확인된 법적 판단과 역사적 사실을 정치적 이해에 따라 부정하는가를 살펴야 한다. 여기에 같은 행태가 반복되는지, 당 지도부가 이를 제어하는지 아니면 정치적 보상과 영향력 확대의 통로로 삼는지까지 따져야 한다.
이 기준으로 보면 강경 보수와 극우 정치를 구분할 수 있다. 정부의 이민 정바카라을 비판하는 것은 정상적인 정치다. 이민자 전체를 국민의 적으로 취급하거나, 특정 집단의 동등한 시민권을 부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사법부의 판결에 이견을 제기하는 것도 허용된다. 법적 근거를 제시해 판결을 비판하는 것과, 자신의 진영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사법적 판단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정부를 비판하는 행위와 선거·의회·헌법기관의 정당성을 근거 없이 부정하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반복성과 제도화다. 정치인 한 사람의 논란성 발언만으로 정당 전체를 극우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 발언이 반복되는가, 당의 주요 인사들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가, 지도부가 이를 제지하는가, 아니면 해당 인사가 오히려 당내에서 더 큰 영향력을 얻는가를 살펴야 한다. 개별 발언보다 정당의 대응이 더 많은 것을 말해 줄 때가 있다. 극단적인 언어가 한때의 실수로 끝나는지, 정치적 생존과 승진에 유리한 방식으로 굳어지는지가 핵심이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국민의힘의 최근 행태 가운데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선명해진다. 나경원·장동혁·한동훈을 둘러싼 강경 노선 논란을 모두 똑같은 극우 선동으로 분류할 필요는 없다. 그들의 발언과 행동을 각각 살펴보고, 헌정질서와 정치적 다원주의를 어떻게 대하는지 판단해야 한다. 다만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강경한 언어가 당내에서 더 큰 정치적 보상을 얻고, 그 과정에서 중도 보수층의 목소리가 밀려난다면 그것은 정당의 노선 변화를 보여주는 신호다.
이진숙이 주최한 5·18 관련 포럼을 둘러싼 논란과 김태규의 전두환 내란 범죄 부정 발언은 더 구체적인 판단의 대상이다. 이진숙 의원과 함께 포럼을 열었던 단체의 대표는 5·18 민주화운동을 ‘열흘간의 소요 사태’라고 표현한 바 있다. 김태규 의원은 전두환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행위를 두고 내란이 아니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전두환 신군부의 내란·반란 범죄에 대해서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존재하고,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가 2025년 4월 4일 재판관 전원일치로 파면 결정을 내렸다.
여기서 쟁점은 단순히 발언이 불쾌한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법적 판단과 역사적 사실을 어떤 근거로 다루느냐가 문제다. 판결에 비판적인 견해를 내놓으려면 법적 근거와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확정된 사법적 판단을 아무런 실질적 근거 없이 부정하면서 역사적 평가의 문제로 돌린다면, 법치주의를 존중한다는 정치적 주장과 충돌한다. 5·18을 폄훼하는 주장이 주요 정치 무대에서 반복되는 상황 역시 민주화의 역사를 둘러싼 논쟁이라는 말만으로 덮을 수 없다.
이런 발언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국민의힘 전체를 극우정당이라고 판정할 수는 없다. 더 중요한 질문은 당이 어떻게 대응했느냐는 것이다. 논란이 된 발언을 명확히 비판하고 사실관계를 바로잡았는가. 해당 인사에게 바카라임을 물었는가. 아니면 강성 지지층의 반응을 의식해 문제를 축소하거나 발언자를 보호했는가. 정당의 성격은 몇몇 정치인의 발언뿐 아니라 그 발언을 대하는 조직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김성태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조차 최근 당내 강경파가 강성 지지층에 갇혀 외연 확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경고했다. 당 안에서도 강경 노선이 전국 단위 선거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강성 지지층의 결집이 정치적 힘을 제공하는 동시에 당의 확장성을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다.
정치인의 속내를 추측할 필요는 없다. 어떤 유인이 작동하는지만 봐도 충분하다.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면 당내 권력을 유지할 수 있고, 과격한 발언은 언론과 소셜미디어의 주목을 끈다. 경쟁자보다 더 강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정치적 생존에 유리해지면 중도층을 잃을 위험보다 핵심 지지층의 환호를 얻는 이익이 더 크게 느껴진다. 정당은 그렇게 조금씩 극단으로 움직인다.
독일과 한국의 차이는 극우 정치가 성장하는 경로에 있다. 독일에서는 AfD가 기존 정당의 바깥에서 성장했다. 한국에서는 기존 보수정당 내부에서 극우적 언어와 논리가 힘을 얻을 수 있다. 이 차이가 오히려 더 우려스럽다.
독일은 다당제와 비례대표제를 바탕으로 한 의원내각제 국가다. AfD가 높은 득표율을 얻어 연방의회 제2당으로 성장했더라도 정부를 구성하려면 의회 내 의석과 연립 가능성이 중요하다. 다른 정당들이 AfD와의 연정을 거부하는 한, 높은 지지율이 곧바로 집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국은 강력한 대통령제와 견고한 양당 경쟁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AfD와 같은 별도 정당이 등장해 기존 보수정당을 대체할 필요조차 없다. 국민의힘 자체가 강성 지지층의 압력에 따라 극우적 언어와 논리를 흡수하면 된다. 이미 조직과 의회 기반을 갖춘 거대 정당이 그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극우 세력은 별도의 정당을 키우지 않고도 국회와 정부의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국민의힘 지지자 전체를 극우라고 부를 이유는 없다. 보수주의는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있다. 안보와 시장경제,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시민이 모두 극우주의자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런 보수 유권자들이 강성 지지층의 언어에 자신의 정치적 대표성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온건한 보수주의자들이 당내 강경 노선을 비판하지 못하거나 민주당에 대한 반감 때문에 이를 묵인하는 상황이다. 자신이 싫어하는 정당을 막을 수만 있다면 헌정질서와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하는 발언도 눈감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선택이 반복되면 정당의 중심축이 이동한다. 처음에는 선거를 위해 동원한 극우적 언어가 나중에는 정당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극우 정당의 성공은 국민 대다수가 극우주의자가 되어야 가능한 것이 아니다. 기존 정당이 해결하지 못한 불만을 극우 세력이 흡수하고, 강경한 의제가 정상적인 정치의 언어로 자리 잡으며, 그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서로 다른 정당으로 흩어져 있을 때 극우 정당은 슬롯 전체의 이념 분포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국민의힘이 강성 지지층을 결집해 단기적인 정치적 이익을 얻을 수는 있다.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종속되면서 합리적 보수주의자와 중도층을 잃고,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할 정당이 오히려 그 원칙을 훼손하는 언어를 반복한다면 당의 외형은 유지돼도 정치적 기반은 달라진다.
극우의 위험은 국민 대다수가 극우로 변한 뒤에야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분열하고, 정치에 대한 불만이 극우적 구호에 모이며, 기존 정당이 그 구호를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이미 변화는 시작된다.
독일 국민 대다수가 극우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AfD의 성장을 막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시민이 다수라는 이유만으로 안심할 수는 없다. 국민의힘이 극우적 언어를 당의 중심 언어로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제동마저 사라진다면, 극우는 소수의 이념으로 다수의 정치적 삶을 좌우할 수 있다. 그때 가서 국민 다수는 극우가 아니었다고 항변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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