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 녹음된 문장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1층에서 택배를 찾았다.
상자가 둘이다. 아래 것은 복사용지라 손가락이 하얗게 눌린다. 사무실 문 앞에서 출입증을 찍으려고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때 같은 팀 동료가 뒤에서 오면서 말한다.
"하나 들어드릴까요?"
내 입에서 나온 대답은 이랬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동료는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들어간다. 나는 상자를 다시 포개 들고, 문이 닫히기 전에 발로 막고, 엉거주춤 안으로 들어간다. 위에 얹은 상자가 미끄러져서 턱으로 누른다.
자리에 와서 상자를 내려놓고 나서 생각한다.
들어달라고 하면 됐는데.
이상한 것은 내가 그 대답을 고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움이 필요한지 판단하고, 부담을 줄지 저울질하고, 그래서 사양하기로 정한 것이 아니다. 그 사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장이 이미 나가고 있었다.
입은 생각보다 빠르다.
전화를 걸면 사람이 받기 전에 안내 음성이 먼저 나오는 경우가 있다. 지금은 통화할 수 없으니 메시지를 남겨달라는 그 음성이다. 녹음해 둔 지 오래돼서 목소리가 낯설게 들리기도 한다.
우리 입에도 그런 녹음이 깔려 있다.
누가 무언가를 물으면 사람이 받기 전에 녹음이 먼저 재생된다.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나는 그것을 듣고 나서야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안다.
사람마다 녹음 목록이 조금씩 다르다. 그런데 자주 겹치는 문장이 몇 개 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도움을 사양하는 문장이다. 무거운 것을 들고 있을 때, 자리를 양보받을 때, 누가 도와주겠다고 할 때 나온다. 일찍 녹음되고 자주 재생되는 문장이다.
"죄송해요."
잘못하지 않은 일에도 나온다. 상대가 약속을 미뤘는데 내가 먼저 죄송하다고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남이 내릴 때 비켜서면서도 죄송하다고 한다. 이 문장은 일단 나가면 상황을 정리해 주기 때문에 편하다.
"별거 아니에요."
내가 한 일을 설명할 때 앞에 붙는다. 몇 달 걸린 일을 말하면서도 별거 아니라고 한다. 겸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자기 일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다.
"바빠서요."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대는 이유다. 실제로 바쁘지 않은 날에도 나온다. 바쁘다는 말은 아무도 더 묻지 않기 때문에 편하다.
"어쩔 수 없죠."
상황을 받아들일 때 나온다. 받아들이는 것과 포기하는 것 사이에 있는 문장인데, 자주 쓰면 뒤쪽으로 기운다.
이 문장들은 하나같이 짧고 부드럽다. 그래서 오래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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