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생활을 갓 시작한 친구 중 한 명이 오늘 나에게 외로움을 살포시 털어놓았다. 그래서 시시콜콜한 내 외로운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라며 안도했다. 나의 외로움이 이럴 때에는 쓸모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자기합리화를 해보자면, 잘 외로운 것도 하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내가 유난히 외로운 것은 내 외로움으로
타인의 외로움을 위로하기 위해서 일지도.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외로움과 치열하게도 싸워왔다. 부모님은 나를 정말 키우기 참 까다로운 아기였다고 회상한다. 나는 어릴 때 정말 많이 울어서 엄마는 나를 키우고 나서는 남의 우는 아이만 봐도 질색했다고 한다. (죄송해요 엄마...) 일례로 아빠가 나를 업고 부산의 다리 하나를 오가며 재우고 집에 와서 바닥에 조심스레 눕히면 바닥에 머리가 닿자마자 또 울어재꼈으니 말 다했다. 나는 왜 그렇게도 울었을까. 아마 한 순간도 아빠, 엄마의 품에서 떨어지기 싫었던 것 같다. 외로움에 사무칠 내 운명을 미리 알았던 것이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셔서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부모님을 집에서 볼 수 있는 시간은 밤늦게 들어와서 잠을 주무시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나가는 시간뿐이었다. 동생이 둘이나 있었지만, 나에게 동생은 놀이 친구보다는 돌봐야 할 대상이었다. 내가 아무리 어렸어도 내가 아빠,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해야 한다는 압박이 나를 눌렀던 것 같다. 사랑의 다양한 형태를 잘 몰랐던 나이.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는 가족들과도 거리를 두며 고독을 즐기기 시작했다. 스무살이 되어서는 서울 유학을 위해 공식적으로 집을 떠났다. 사실 서울이 아니라도 어디든 상관 없었다. 혼자가 편해지면서 생긴 버릇이 하나 있다.
다른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주지 않으면 외롭다고 느끼지만,
외로울 누군가를 위해 내가 먼저 연락하지는 않는다.
외롭다.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다. 이렇게 느꼈다면, 먼저 다가가면 될 일인데 그걸 참 못한다. 해야겠다는 생각도 잘 들지 않고, 해서 무슨 이야길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모임 같은데 나가면 꽤 사교적이고 활발하게 이야기 나누면서도 거기서 맺은 인연들을 깊이 있게 롱런으로 이어나가는 것은 잘 하지 못한다.
가장 아이러니한 부분은, 깊은 관계를 맺고 싶고 소통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는 굉장히 나만의 영역을 지키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친구든 애인이든 동 시기에 2명 이상이 나와 가까워지려고 다가오는 게 보이면 뒷걸음질 친다. 그래서 한 번에 2명 이상의 남자가 다가오면 둘 다 관계를 끊어버리는 게 늘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둘 다 알아가보고 나와 더 맞는 사람을 선택하면 되는데 그 때는 그저 그런 상황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친구의 경우도 비슷하다. 친한 친구 A와 B가 있으면 A랑 꾸준히 연락하는 시기가 있고, 또 B랑 꾸준히 연락하는 시기가 있고 이 시기는 잘 겹치지 않았다.
잠시 삼천포로 빠졌는데 다시 핵심으로 돌아가면,
이성적으로는 혼자 있는 환경을 선호하면서도,
동시에 감성적으로는 그걸 못 견디고 외로워한다.
음, 안다. 한마디로 노답이다. 며칠 째 고민 중이지만 정말 모르겠다.
그래서 예를 들면, 지금 내가 가깝다고 여기는 인연에게 '우리가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어.'라고 말하고 싶은데 막상 이야기해서 그들이 너무 가까워지면 내가 또 뒷걸음질 칠까 봐 걱정돼서 말을 못 한다.
일단은 그저 조용히 물러서서 두 개의 욕구가 어떻게 서로 조화를 이루어가는지 지켜보고 있다.
그렇게 살다보니 마흔이 코 앞이고,
싱글이고,
아이도 없다.
딱히 비혼은 아니지만,
또 무조건 결혼을 해야겠다는 주의도 아니다.
너무 많은 세상을 이해하는 인간의 단점이다.
비혼주의자도 이해가 되고,
결혼해서 사는 사람들도 이해가 된다.
누군가와 함께 인생의 고난을 헤쳐나가는 것도 멋진 경험이라고 생각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와 환경을 얻은 세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혼자 살아가는 인생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도 구석에 꿈틀거린다.
하지만 그래도 고르자면,
혼자 있을 때의 외로움이 차라리 더 나은 것 같다.
언제나 나를 무너뜨린 건
함께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이었고,
나는 그 외로움에 너무나 취약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