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햇볕을 받고 운동을 하기 위해 매일 오후 1시에 담장 너머 석류가 탐스럽게 열린 집을 지나간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곳을 지날 때면 사진에 석류를 담고 있다.
함께 걷던 언니가 "고향인 진주에서는 석류를 많이 봤는데 이곳 중부지방에서는 처음 본다."라고 했다. 나도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석류를 처음 본 것은 스무 살 때, 정물화를 그리기 위해 마른 석류 다섯 개를 구입했을 때였다. 그리고 스물네 살 때, 목포 유달산 올라가는 초입 오른쪽 담장 낮은 집에 석류가 많이 열려 있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마른 석류만 보다가 나무에 열린 아직 덜 익은 석류를 보았던 기억은 지금도 또렷이 남아 있다.
그때 목포에 간 것은 홍도 여행을 하기 위해서였다. 은행 입사 동기 세 명과 함께 근무하던 여직원 한 명, 그렇게 네 명이 홍도 여행을 가기로 하고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목포에 갔다. 그런데 홍도행 배표를 사러 갔더니 배가 막 떠났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부두는 한산했고, 건장한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와 숙소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목포에서 묵을 계획이 없었기에 그 사람을 따라갔다. 부둣가 옆 어느 여인숙이었다. 처음 들어가 보는 여인숙이라는 숙소의 방은 문을 잠가 보았는데도 잠기지 않았다. 우리는 이곳에서 묵을 수 없다고 하고 밖으로 나왔다. 솔직히 무서웠다. 낯선 지역에서 방을 소개해 준다는 남자부터가 무서웠다.
우리는 가방을 메고 어느 가게로 들어가 호텔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때 목포에는 호텔이 없었다. 그러면 가장 큰 숙소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가게 주인은 여관 이름을 알려 주며 "저기 저 서울여관이 목포에서는 가장 커요." 했다.
여관 프런트에는 오십대로 보이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방값을 얘기했는데 생각보다 비쌌다. 조금만 깎아 달라고 했더니, 그녀는 자기가 이 여관 주인이라고 하며 "우리 딸도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데 어디 놀러 가서 이러겠지." 하면서 가격을 반으로 깎아 주었다. 그리고 직원으로 보이는 빼빼 마른 여인에게 방 열쇠를 주며 방을 안내해 주라고 했다. 맨 꼭대기 3층, 천장이 낮은 방은 꽤 넓었고 한쪽에는 이불이 여러 채 쌓여 있었다. 우리는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며 가방을 내려놓고, 계획에도 없던 유달산에 올라가게 되었다.
80년대 그때는 여행 잡지나 신문을 보고 차, 배, 비행기 등을 예약하거나 현장에서 표를 사서 여행을 다녔다. 숙소도 예약하기가 어려웠다. 전화번호를 알지 못하면 현지에 가서 발품을 팔아 구해야 했다. 그렇게 올라갔던 유달산의 기억은, 초입의 낮은 담장 너머로 보였던 항아리 몇 개와 석류나무가 내 기억에 남은 전부다.
9월부터 거의 매일 석류나무를 보았는데, 푸릇하던 열매가 이제는 빨갛게 익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석류의 단단한 껍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속에 감춰진 루비처럼 빛나는 속살이 보일 듯 말 듯, 그 자리에서 나를 멈추게 한다. 사진 속에는 석류의 변해 가는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도 함께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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