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SNS는 달리라고 했다. 몸은 멈추라고 했다

러닝 기록 경쟁이 위험해지면 누구를 위해 달리는가

byDataSopher

결승선까지 500미터.

사람들은 보통 마지막 힘을 짜내는 구간이라고 부른다.

지난 10월 11일 서울의 한 하프마라톤에서 20대 참가자가 그곳에서 쓰러졌고, 끝내 숨졌다.

심폐소생술과 병원 이송도 생명을 되돌리지 못했다.


이 소식 앞에서 가장 먼저 경계할 것은 섣부른 해석이다.

고인이 SNS 때문에 무리했는지, 기록을 경신하려 했는지, 정확히 무엇이 사망에 이르게 했는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죽음을 자기 주장에 유리한 증거처럼 끌어오는 일부터 거부하고 싶다.


그렇다고 질문까지 접을 이유는 없다.

우리는 언제부터 달리기를 하면서도 관중석을 의식하게 됐을까.


예전의 달리기에는 나와 길이 있었다.

지금은 손목의 시계, 운동 앱, 공개된 순위표, 내일 아침 타인의 게시물까지 함께 뛴다.


5킬로미터를 달리던 사람은 누군가의 10킬로미터를 보고, 10킬로미터를 달리던 사람은 처음 나간 하프마라톤에서 1시간 30분을 끊었다는 게시물을 본다. 몸은 서로 다른데 숫자는 한 줄에 나란히 세워진다.


스트라바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이용자들은 한 해 140억 건의 ‘쿠도스’, 일종의 응원을 주고받았다. 놀라운 일이다.

운동이 고독에서 벗어나 공동체가 된 것이다. 부정하고 싶지 않다. 어떤 사람은 응원 한 번 때문에 우울한 방에서 나와 운동화를 신을 테니까.


문제는 응원이 평가가 되는 순간이다.

2023년 학술지 『Social Networks』에 실린 연구는 러너 329명을 추적해 온라인 응원을 더 받은 사람이 더 자주, 더 많이 달리는 경향을 확인했다.


이것만으로 위험한 무리수를 증명할 수는 없다. 화면 속 반응이 실제 두 다리를 움직이는 힘이 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어제보다 10초 느리면 실패한 것 같고, 비가 와서 하루 쉬면 성실함을 잃은 것 같다. ‘회복’은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인데 게시물에서는 가장 볼품없는 장면이 된다. 완주 사진에는 박수가 쏟아져도 ‘오늘은 가슴이 답답해서 멈췄다’는 기록에는 좀처럼 메달이 달리지 않는다.


2024년 미국 마이애미대 석사 연구는 일반 러너 213명을 조사했다. 스트라바의 단순한 이용 자체보다 자신의 능력을 남과 비교하는 성향이 운동의 즐거움과 심리적 안녕감 저하에 더 밀접하게 연관됐다.


반대로 말하면 SNS를 없애는 것만으로 문제가 풀리지도 않는다. 플랫폼을 떠나서도 서로를 경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는 측정할 수 있지만 그날의 수면 부족,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 몸속에서 조용히 시작된 이상을 한 숫자로 설명할 수는 없다. 측정 가능한 것만 중요하다고 믿는 순간, 측정되지 않는 몸의 경고는 배경 소음이 된다. 해석의 패배다.


의학적 사실도 냉정하게 봐야 한다.

2025년 『JAMA』 연구는 미국의 마라톤·하프마라톤 약 2,931만 회의 참가 기록에서 심정지 176건과 그중 사망 59건을 집계했다.


드문 일이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위험이다. 연구는 빠른 응급 대응과 제세동기 접근이 생존율 개선에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니 사건을 두고 ‘달리기는 위험하다’고 외치는 것도, ‘건강한 사람은 괜찮다’고 장담하는 것도 모두 부정확하다.


러닝크루와 대회, 플랫폼이 새 기준을 만들었으면 한다.

개인 최고기록만 축하할 것이 아니라 몸의 경고 앞에서 멈춘 결정에도 박수를 보내자. 대회는 참가 인원과 완주율을 자랑하기 전에 응급대응 체계를 설명하자. 앱은 더 빠른 기록만 권할 것이 아니라 쉬어야 하는 날을 존중하는 언어를 고민하자.


세상은 포기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스포츠에서 가장 성숙한 판단은 때로 포기하는 것이다.

어지럽고, 가슴이 아프고, 몸이 이상하다면 즉시 멈추고 필요한 응급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맞다. 누구에게도 완주하지 못한 이유를 변명할 의무는 없다.


SNS가 한 사람을 죽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멈추는 일을 수치스럽게 만들고, 몸의 한계를 타인의 기록으로 재단하는 문화라면 간접적 위험에 바카라임을 물어야 한다.


오늘 몇 분을 줄였는가가 아니다. 내일도 살아서 다시 달릴 수 있는가.
소셜 미디어의 무게.png
결승선은 매번 새로 그을 수 있다. 사람의 생은 그렇지 않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brunch membership
DataSopher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Data + Philosopher = 데이터로 사유하는 존재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놓치고 있는 것, 놓친 것, 놓칠 수 있는 것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30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42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359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한국 기업은 왜 상장하자마자 늙기 시작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