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처럼 사랑하고 살아가기

by여미

어른이 되면, 눈앞에 커다란 벽이 있는 기분이다. 더 이상 새롭거나 설레는 일들도 줄어들고, 큰 기쁨이나 큰 슬픔 없이 무덤덤한 일상을 살아가니, 내 세계는 확장되지 않고 커다란 성벽으로 어느새 막혀있다.


어린이처럼 사랑하고 살아가기


얼마 전에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기 전에 입 안 구석구석 마취 했는데, 치료가 끝났는데도 거의 3시간 동안 아무 감각이 없었다. 깨물어도 모르겠고, 입을 물로 헹궈도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감각이 없으니 갑자기 공포가 밀려왔다. 지금 까지 내가 얼마나 다양한 감각들을 온몸으로 느끼고 살았는지 실감이 됐다. 그 순간, '감정 마취'라는 단어가 떠올랐는데, "어른이 되면 감정도 마취가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감정 마취'란, 감정이 흐르는 부위에 마취를 해서(?) 아무 감정을 못 느끼는 상태다. 신기한 것들도 줄어들고, 호기심도 사라지고, 기본 적으로 '욕망'이라는 것들이 예전 같지가 않으니, 웃지 못하는 사람, 미소 짓지 못하는 나이 든 사람이 된 것 같다. 아뿔싸! 진짜 마취가 된 것 같다.


어른에게 특별한 일이란


한 초등학생이 내게 말을 건 적이 있다.


"이번 주 금요일에는 특별해요. 왜 인지 아세요?"

"왜?"

"그날 학교에서 과자파티를 하거든요. 그리고 영화도 봐요! 아, 그리고요! 그날 숙제는 없어요. 그래서 목요일부터 사실 행복해요. 숙제를 목요일부터 했거든요. 그날은 할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저녁에는 태권도 학원에 가는데, 그날 단체로 피구도 하고 축구도해요. 그래서 너무너무 기대되고, 특별해요!"


아이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반짝반짝 거리는 눈으로 진심으로 행복해하면서 기쁨의 춤을 추었는데, 나는 한 참 동안 그 어린이의 표정을 멍하니 관찰했다. 그 순간 마비되었던 내 감정이 서서히 풀리면서, 손바닥 어느 부분은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 기준에서 '자랑할 만한 특별하고 행복한 일'이라 함은, 몇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대형 프로젝트밖에 없었는데, 그 어린이가 기대하는 '특별하고 즐거운 일'은 기껏해야 당장 3일 뒤의 일이었으며, 숙제와 수업에서 해방되는 아주 잠깐의 '자유'였다.


지금까지 내 미래는 커다랗고 딱딱하고, 절대 무너지지 않는 벽이 있다고 믿어왔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것들이 많고, 더 이상 궁금한 것들도 없으니까. 이쯤에서 내 세계를 닫아도 되겠지, 이제는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묵묵히 살아갈 날만 남았겠지, 스스로 벽을 쌓았다. 그런데, 그 어린이의 말을 듣자마자 벽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푸릇푸릇하고 드넓은 들판이 눈앞에 펼쳐졌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세계 뒤편에는, 또 다른 세계가 숨어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어린이의 감정에 '동기화'되어 마취된 감정에서 스르륵 벗어나게 되었다. 내 일상을 어떻게 바라보는 것에 따라서, 내 세계는 지속적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는 앞으로 어린이처럼, 사랑하고 살아가야겠다고.


어쩌면 이 삶이 끝나는 날까지, 어린이처럼 세상을 바라볼 줄 알아야 감정이 마비되지 않는 어른이 될지도 모른다. 감정이 마비된 어른은, 생명 없는 나무가지와 같다. 특별한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거나 억지로 만드는 것보다, 내 일상을 마치 처음 해본 듯 신기하게 바라보는 것.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도, 9살 어린이처럼 촐싹거려 보자. '좋다! 즐겁다!'라고 덩실덩실 추는 것은 돈 드는 일도 아니고, 손해 보는 일도 아니니까.


내일 아침엔 연어구이를 올리브유에 구워먹을 것이고, 저녁에는 잔치국수를 처음으로 도전해볼 참이다. 벌써 군침이 돌고, 기대된다.


오늘도, 기운나는 방법을 찾았다.




글 여미

커버사진 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