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함은 머리에서 나온다

by여미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매번 목이 따갑고 칼칼해진다. 그러다가 비염으로 번져서 끝에는 감기몸살로 시름시름 앓는다. 거의 몇 년 동안,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하는 시점에 늘 이런 패턴을 겪었다. 그래서 유독 기관지가 약한 탓이라 생각했는데, 원인은 따로 있었다.


씩씩함은 머리에서 나온다


이비인후과에서 치료를 받던 중, 의사 선생님께서 "혹시 잘 때 입으로 호흡하세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에는 내가 어떻게 호흡을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는데, 집에 와서 기억을 되짚어보니 가끔씩 자면서 침도 줄줄 흘리기도 했던 것이 떠올랐다. 아, 나 입을 벌리고 자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바로 '입 테이프'라는 것을 구매해서, 입술에 테이프를 붙이고 잤다. 이미 습관적으로 입 호흡을 하고 살아와서 테이프를 붙이고 자지 않으면 금방 고쳐지지 않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도구를 사용하니 더 이상 인후염의 고통에 시달리지 않았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아서 마음 놓고 한 6개월 정도 입술 테이프를 사용했는데, 아뿔싸!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아무리 검증이 된 안전한 테이프여도 긴 시간 동안 매일매일 사용하다 보니, 이번에는 입술이 건조해졌다. 립밤을 바르고 테이프를 붙이면 금세 떨어졌다. 어느 날은 테이프를 아예 안 붙이고 한번 자봤는데, 다음날 아침 바로 목이 따갑고 아팠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로 결국에는 목을 보호하고자 테이프 붙이기를 계속 감행했는데, '위험 신호'를 무시한 탓인지, 입술의 색이 점점 하얗게 변했고, 심지어 물만 닿아도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생겨버렸다.


나 어떡해?


입 벌리기 방지용 테이프를 붙이고 자면 입술이 아프고, 입술이 아파서 테이프를 안 붙이고 자면 목이 아프다. 접착력이 거의 없는 다른 제품으로 대체해서 이것저것 시도해 봤는데, 자면서 뒤척이다 보면 이미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다. 그래서 남편한테 진지하게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 상담을 했는데, 이 양반이 하는 말이.


"말차라테 마셔. 당신 몸 어디 안 좋으면, 말차라테 마시잖아."


라는 아주 도움 되는 답변을 내놓았다. 나는 입술과 목,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말차라테를 마시라고?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니야! 너랑 말 안 해!"라고 툴툴 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속으로는 '이 사람, 나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잖아?'라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그날 아이스 말차라테 하나 사 마시면서 다시 머리를 굴렸고, 진짜 기적처럼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내가 나에게 씩씩함을 선물하는 것

2016년, 리우 올림픽 해서 펜싱 종목의 박상영 선수는, 큰 점수차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 관객의 울림을 들었다. "할 수 있다!" 그 소리는 너무나 우렁차고 커서 중계방송에도 잡혔는데, 박상영 선수는 그 말을 따라서 조용히 읊조리기 시작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카메라는 박상영 선수의 굳은 다짐을 화면에 담았고, 그 이후에 그는 기적처럼 역전승에 성공했다. 무엇이, 그를 다시 씩씩하게 만들었을까?


나는 남편의 제안(?)으로 말차라테를 마시며, 이 문제는 내가 나에게 씩씩함을 선물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날 밤, 잠들기 직전에, 나는 박상영 선수가 스스로에게 되뇌었던 응원처럼, 읊조렸다. '나는 오늘 입 벌리고 자지 않을 거야.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잘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씩씩함은 머리에서 나온다. 용기란,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용암이 들끓듯 갑자기 끓어오는 것이 아니고,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머릿속에서 '용감해져라', '씩씩해져라', '할 수 있다' 이런 다짐들을 지속적으로 주입해야 몸에서 내 건의를 항의로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수용해준다. 그날 이후로, 한 3개월이 지났고, 나는 단 한 번도 입을 벌리고 자지 않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말차라테 덕분이려나.




글 여미

커버사진 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