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 마법의 말은 어떤 문장이라도 뒤에 붙여버리면 즉시 희망의 말로 변해버린다.
요즘 내 삶은 엉망이야, 변할 수 없어. "그래도"
요즘 내 몸은 건강하지 않고, 여기저기 아프기만 해. "그래도"
왜 이렇게 나는 못나 보일까? 삐죽삐죽 초라해. "그래도"
부사 중에 "하지만"도 있지만, "하지만"은 살짝 그늘져있다. 마음만 먹으면 더 아래로 추락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뭐 별수 없지", "하지만 뭐 어쩌겠어?" 이런 식으로, "네가 어떤 노력을 해도 그 자리에서 머물 뿐이다"라는 차가움까지 느껴진다.
그래도 내가 괜찮으면 괜찮은 것이다.
뼛속부터 부정적인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게 바로 나였다. '내가 뭘 하겠어?', '그게 되겠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내가 그렇지 뭐' 이런 생각을 달고사니 하루하루가 더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결국 '도대체 이 삶을 왜 살아가야 하지?'라는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했다. 어떤 바카라에서 읽었는데, 인간의 뇌는 생존본능이라는 것이 있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할 때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니 나 스스로 "안돼! 그런 생각 하덜덜말어! 긍정적으로 생각해!"라는 주문을 외우지 않는다면, 부정적인 감각을 쉽게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이 원리를 알고 나서는, 이제는 나를 철저히 '관리'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가장 편안한 상태를 좋아해서, 이왕이면 힘든 일은 안 하고 싶고,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평생 편하게 먹고살고 싶은 욕망이 있다. 현실은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노동을 하고, 돈을 벌고, 원치 않는 인간관계를 겪고, 그렇게 불편한 시간들을 참고 견디니 기운이 안 날 수밖에 없다. 기운이 없는 것은 죄가 아니다. 기운이 안 나는 것을 어떡해? 오히려 힘이 없다는 것은 애쓰면서 살고 있다는, 내 몸이 보내는 절박한 신호다. 이럴 때는 스스로에게 '그래도'를 붙여보자.
요즘 내 삶은 엉망이야, 변할 수 없어. 그래도 변할 수 있었다고 믿어.
요즘 내 몸은 건강하지 않고, 여기저기 아프기만 해. 그래도 건강해질 수 있을 거야.
왜 이렇게 나는 못나 보일까? 삐죽삐죽 초라해. 그래도 힘을 내서 나를 위한 요리를 할 거야.
'그래도'는 앞으로의 내 행동을 지시하면서 관리해 주는 마법의 단어다. 얼마나 강력하냐면, 그 어떤 근거와 해결바카라이 없이도, 내가 그냥 그렇게 먼저 믿어버리고 시작하는 것이다. 수학 시험을 100점 맞고 싶다고 가정한다면, 나는 오늘 100점을 반드시 맞는다,라고 결론을 내버리는 것과 똑같다. 이렇게 결정을 먼저 내버리면 좋은 점은, 우선 아무런 희망이 없던 상태에서, 희망이라는 것이 생기고, 희망이 생기면 돌멩이처럼 딱딱했던 심장이 조금씩 쿵쿵 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심장이 먼저 움직이면 손과 발에 혈색이 돌고, 비로소 '멈춰 있는 인간'이 아닌, 행동하는 인간이 된다.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될 수도 있다고, 어렵지만 해볼 수 있다고 믿어버린다면, 오늘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조금씩 보인다.
그리고 더불어 인생에 정답이란 남이 아닌, 내가 정하는 것이다. 모든지 내가 괜찮으면 다 괜찮은 일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내가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면 별일이 아니다.
글 여미
커버사진 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