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는 이야기 Kill the God:
제단 위에 무기와 의뢰서가 놓여 있다. 보수는 왕국 하나가 아니라 다음 해의 봄이다. 의뢰인은 그 봄을 불러오는 신이다. 자신의 존재가 세계를 망가뜨리고 있으니 자기를 죽여 달라고 한다. 신관은 문서가 위조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신이 알려 준 방식으로 무기를 들자 제단의 불이 꺼진다.
이 제목과 장면은 Kill the God에서 확장한 창작 전제다. 원래 트롭스는 신을 실제로 죽이는 행위와 가능성을 다룬다. 신이 스스로 의뢰한다는 조건은 여기에 더한 것이다. 강력한 적을 쓰러뜨리는 결전에 의뢰의 진위, 죽음의 범위, 이후 세계의 운영이라는 문제를 붙인다.
독자가 먼저 알고 싶어 할 것은 신의 체력 수치가 아닐 수 있다. 저 존재가 정말 신인가. 죽일 수 있다면 무엇이 끝나는가. 의뢰인이 자기 죽음 뒤의 결과까지 정직하게 말하고 있는가.
<갓 오브 워 III>에서 크레토스가 포세이돈을 죽인 뒤 바다가 세계를 덮치는 결과는 신의 죽음을 전리품 획득으로만 끝내지 않는다. 상대가 관장하던 힘이 세계의 풍경과 연결되어 있다. 플레이어가 얻은 승리의 크기와 세계가 입은 손상이 같은 장면에 들어온다. 개발사 측의 포세이돈 전투 회고
이런 신은 강한 인간에 불사 능력을 더한 존재와 다르게 다뤄야 한다. 죽음이 자연의 기능에 영향을 준다면 신은 권력자인 동시에 기반 시설이기도 하다. Cosmic Keystone처럼 세계가 특정 존재에 기대 서 있는 설정을 붙일 때는, 제거와 대체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잔혹한 신을 계속 섬기는 결말만 남겨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해방이 작동할 새로운 조건까지 이야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모노노케 히메>에서 에보시는 시시가미를 쏘고, 머리를 잃은 신의 변화는 숲과 인간의 생활을 함께 위협한다. 신을 죽이면 인간의 통제가 완성될 것이라는 기대가 어긋난다. 승패를 확정했다고 생각한 순간 훨씬 다루기 어려운 사태가 열린다.
이 영화의 결말을 적의 체력이 다했고 숲이 원상 복구되었다는 식으로 평평하게 읽기는 어렵다. 생명이 다시 자라는 것과 이전의 관계가 그대로 돌아오는 것은 다르다. 신을 죽이는 이야기는 없애는 능력의 과시보다, 없앤 뒤 달라진 세계를 인물들이 어떻게 살아갈지에서 오래 남는 질문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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