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도
저는 비건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처음의 다짐을 지키지는 못했죠. 비건에서 페스코 채식으로 돌아왔고, 지금도 매일 식탁 앞에서 마음먹은 대로 실천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영양사로서 균형 잡힌 식사의 중요성을 알고 있고, 건강한 식생활을 고민해 왔지만 지식만으로 식습관을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음식에는 영양소뿐만 아니라 취향과 습관, 가족과의 관계, 오랜 기억이 함께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 바카라은 비건을 실천하는 방법이나 채식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바카라이 아닙니다. 비건을 꿈꾸다가 흔들릴 때도 있고, 영양사라는 사람조차 이상적인 식생활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용을 솔직하게 담고 싶었습니다. 완벽하게 실천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하지 않아도 나에게 맞는 식생활과 지속 가능한 실천의 의미를 찾아 가는 일일겁니다. 독자들과 채식의 가치를 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가끔씩 즐기는 남편과의 외식에선 무언의 기싸움이 일어나곤한다. 고기를 먹고 싶어하는 남편, 그리고 경제적 선택권이 없는 나는 무언의 압박 또는 미안함으로 먹고 싶은 걸 말하지 못하고 그의 의견을 따르곤 한다.
집밥 차리기가 힘에 부칠 때, 외식이 필요할 때면 내가 좋아하는 메뉴보다는 남편이 좋아하는 메뉴를 애둘러 말하며 외식을 하자고 졸라대기도 한다. 그럴 땐 여지없이 남편이 좋아하는 양고기나 햄버거, 피자 등으로 그를 유혹하는데 어쩔 땐 '이 메뉴들이 내가 진짜 먹고 싶어서 말을 꺼낸 건 아닌가?' 헷갈려 올 때도 있다.
결국, 입맛따라 즐기는 '샤브샤브 무한리필집으로 이제는 정착한건가?' 싶지만 우리의 기싸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쪽은 소고기를 가득 넣어 남편이 먹고, 매운 육수는 해물을 가득 넣어 내가 먹는다. 거의 매운탕 같은 느낌이 나지만 내가 좋아하는 알탕 느낌이 나기도 하고, 장어를 넣어 먹을 땐 몸보신 하는 느낌이 난다.
조개를 가득 넣어 시원한 국물을 즐길 수도 있고, 채소를 듬뿍 넣어 마음껏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여전히 소고기와 싸우고 있는 기분이 든다.
남편이 "소고기는 자신만 먹는 것 같다."며 양심의 가바카라이 드는 것 같게 만든다는 느낌으로 입이 삐죽 나와 있을 땐 얼른 그의 육수에 코를 박고 냄새를 킁킁거리며 "맛있겠다!"를 연발해준다. 국물을 한모금 먹을 때도 있고, 고기 한점을 얼른 집어 먹으며 "나도 많이 먹고 있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소고기를 오랜만에 먹으니 소화가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도 그렇고, 이렇게 얘기해야만 남편의 행복한 젓가락질이 다시 시작된다. 무거운 소고기를 한점 먹자마자 속이 꽉 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트름이 나올 땐 음메음메하는 소리와 함께 내가 싫어하는 소고기 특유의 향, 묵직하고 비릿한 향이 올라온다.
난 소고기와 싸우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남편과 싸우고 있는 걸까?
오랜만에 친정어머니를 만났을 때도 소고기를 사주시겠다는 어머니의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낙지가 들어간 연포탕을 선택했으며, 소고기를 먹어야 힘이 난다는 어른들의 말씀엔 힘은 제가 기른 제 몸의 근육에서 나온다는 말과 함께 운동이 보약이라는 말을 한다.
소고기를 먹어야 힘이 난다는 편견.
난 음식에 대한 고정관념과 싸우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도대체 뭐 때문에 무엇과 싸우고 있는 걸까? 혹시 그건 내 안의 틀어 박혀있는 편견이 아닐까? 아니면 내가 가진 욕심이나 식탐은 아닐까?
어쩔 땐 남편이 맛있게 먹는 소고기를 힐끔 거릴 때도 있고, 샤브샤브가 아닌 고기 요리 앞에서 얼쩡대며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온다. 그러다 알맞게 튀겨 나온 꿔바로우 앞에서 '이건 소고기가 아니니까 괜찮겠지?' '오늘 하루만, 한입만 먹지 뭐.' 그동안 많이 바꿔온 식생활에 티끌 같은 작은 한 점이라 생각하며 집어온다.
그리곤 자리 앉자 마자 깨닫는다. 내가 싸우고 있는 건 나의 식탐이었다는 걸.
채식지향으로 돌아서고 나서 나에 대해 참 많은 걸 알고, 깨닫게 된다. 채식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나를 알아가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난 의외로 욕심쟁이처럼 이것저것 다 맛봐야하는 식탐을 가졌으며, 내가 가진 소신을 끝까지 고수하지 못하는 쫄보에다가 원래부터 고기보다 해산물을 좋아했던 입맛을 이제서야 찾은 것뿐인데 그걸 가지고 페스코 채식을 한다며 나대고 있다는 사람이었다니.
그렇다. 채식은 마치 인생에서 만난 수행같다.
별거 없는 하루가, 별일 없는 인생이 고난한 하루를 살아내는 힘겨운 고행인 것처럼. 한 끼의 식사를 수행으로 만들어버리는 새로운 도전과 같았다. 내가 싸우고 있는 건 내 안의 욕심들, 식탐, 편견, 고정관념. 솔직하지 못했던 나였던 것 같다.
반성하는 것. 그리고 식탐을 비워내는 것. 그게 채식의 이유였던 것 같다.
난 아직도 여전히 소고기와 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