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우리 아이는 요즘 꽤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학교 급식이 맛있고, 같은 동네에 사는 학급 친구들과 하교 후 놀이터에서 매일 어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모국어나 영어, 수학 같은 인지적 능력은 또래보다 빠른 편이었지만, 슬롯성은 그렇지 못했기에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부터 부단히 노력을 해왔다. 연말생이고 외동이고 남아이기 때문에 좀 늦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늘 불안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기관 통폐합으로 아이는 좁은 공간에서 더 많은 아이들과 지내게 되었고, 나는 2년간의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상태였다. 아이는 잘 적응한 듯 보였지만, 어느 날부터 친구를 깨무는 일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원에서 연락을 받을 때마다 사과를 하고, 연고와 치료제를 챙기고, 선물과 편지를 전하기도 했다.
세 번째 일이 있었을 때, 더는 미룰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종합지원센터에 상담을 요청했고, 상담 선생님이 기관에 직접 방문해 아이를 관찰해 주셨다. 검사를 거쳐, 일주일에 한 번 치료 놀이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대기 기간 동안에는 먼 거리에 있는 사설 센터를 다니기도 했다.
주 1회 상담 시간 동안 나는 아이와의 애착을 다시 점검해 나갔고, 아이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한 달에 한 번 부모 상담을 받을 때면, 선생님 앞에서 늘 눈물을 쏟곤 했다. 남편도 시간을 내어 함께 상담에 참여했고, 그렇게 1년을 꼬박 보냈다.
우리 아이도 그랬어요.
힘든 거 알아요.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면
분명 좋아질 거예요.
그때까지만 해도 잘 알지 못했던 동네 엄마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를 겪었다는 이야기,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졌다는 말들이 조금씩 위로가 되었다.
아이는 친구들을 보면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껴안았고, 자주 떼를 부리거나 울고 바닥에 드러눕기도 했다.
나는 인사하는 법부터 함께 노는 방법, 하면 안 되는 행동까지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알려주고 또 알려줘도 제자리인 것 같을 때면 답답한 마음에 눈물도 나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도 이렇게 힘들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래도 우리는 매일 놀이터에 나갔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듯, 눈에 띄지 않던 변화가 어느 순간 훅 자라나듯 드러나기 시작했다. 동네 엄마들도 아이를 볼 때마다 많이 좋아졌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 않았냐고 말을 건넸다.
친구가 싫어하는 건 하면 안 되는 거야
서로 기분 좋게,
그리고 안전하게 노는 게 중요해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아이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어른에게도 여전히 어려운 일이 아닐까.
가르치는 일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금도, 매일 놀이터에 갈 때마다 여전히 마음 한편에 긴장이 남아 있다.
초1 놀이터 생활이 시작된 지 한 달 남짓.
아이도, 나도, 서로 노력한 시간 덕분인지 이제는 선을 지키며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리고 있다. 아이는 지금, 어느 학원에서도 배울 수 없는 소중한 걸 배우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도 부딪치고, 때로는 아프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따뜻함과 즐거움을 찾아나갈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