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년 8월 30일, 동래 초량왜관 설바카라
닫혀 있던 창호지 문이 부르르 떨렸다. 사내들의 비명과 쇳소리가 뒤엉킨 아우성이 왜관 마당을 건너 대청 안으로 밀려들었다. 소나무 기둥 하나가 기어이 꺾여 바닥에 처박혔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동준의 시선이 문풍지에 박혔다. 관자놀이의 핏줄이 가늘게 꿈틀거렸다.
"들리시오, 안 훈도?"
대청 안쪽, 찻잔을 손끝으로 굴리던 모리야마 시게루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잘 벼린 면도날처럼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칼 아래로 옅은 조소가 번져 있었다.
"이백오십 년 묵은 빗장이 허물어지는 소리요."
"……."
"저 굶주린 백성들을 보시오. 관에선 쌀을 주지 않고, 조선은 문을 걸어 잠그고 짐승처럼 굶기니 어찌 제 손으로 울타리를 부수지 않겠소? 정당한 생존의 외침이지."
"생존이라 하셨소."
동준이 뒤를 돌아보았다. 두루마기 소맷자락 아래로 드러난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굳어 있었다. 관모를 잃어 흐트러진 상투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렸다.
"양국의 맹약을 새긴 제찰비 앞에서 쇠도끼를 휘두르는 것이 왜관의 생존 법도요? 설바카라을 훼손하는 것은 곧 국경을 무너뜨리는 반역의 실행이오."
"반역?"
모리야마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탕, 찻잔 받침이 마른 소리를 냈다.
"그 돌비석은 에도 막부와 일개 섬 조각에 불과한 대마도가 멋대로 새겨놓은 낡은 종이쪽지에 불과하오. 메이지 대일본제국의 황국 신민에게 토쿠가와의 굴욕적인 사슬을 들이대지 마시오."
"대마도와 맺은 사사로운 사슬이라?"
동준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이백오십 년 전, 기유약조를 맺고 이 땅에 왜관을 연 것은 대마도 도주 개인이 아니오. 일본국의 최고 통치자였던 쇼군이 조인을 허하고, 양국 조정이 국경을 획정하여 피로써 합의한 국가 간의 맹약이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어찌 한쪽이 일방적으로 기존의 맹약을 백지장처럼 찢어발긴단 말이오!"
모리야마가 낮게 헛웃음을 삼켰다. 사내는 옷깃을 가다듬으며 비스듬히 턱을 치켜들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저 거대한 바다 너머 만국(萬國)이 실행하고 있는 공통된 법, 만국공법(萬國公法)이오, 안 훈도."
"……만국공법?"
"모든 자주독립의 나라는 제 나라의 정체(政體)를 스스로 결정하고, 외교의 형식을 스스로 바꿀 고유한 권리가 있소. 우리는 막부의 낡은 봉건을 무너뜨리고 만기친람하시는 천황 폐하의 나라로 거듭났소. 한 나라의 국체가 통째로 바뀌었는데, 어찌 저 옹졸한 에도 시대의 밀실 규례에 대일본제국의 발을 묶어둘 수 있겠소? 새로운 시대에는 본국과 대등하게 맺는 새로운 조약이 필요한 법이오. 스스로 제도를 개혁하고 문명으로 나아갈 권리. 그것을 거부하고 이 구석진 돌비석 뒤에 숨는 것은 오직 귀국, 조선뿐이란 말이오."
"스스로 바꿀 권리라."
동준이 한 걸음 다가섰다. 억누른 분노가 말마디마다 서슬 퍼렇게 벼려져 있었다.
"그것이 귀국이 말하는 문명이오? 자주(自主)라는 허울 좋은 깃발을 내걸고, 양국이 대대로 합의해 온 신의와 조약을 휴지조각처럼 내던지는 것. 힘이 생겼다 하여 어제의 맹세를 손바닥 뒤집듯 번복하고, 백성들을 굶주림으로 내몰아 국경의 목바카라을 도끼로 찍어 내리는 것. 그것이 그대들이 자랑하는 만국공법의 실체요?"
"말조심하시오, 안 훈도."
모리야마의 눈빛이 일순 얼어붙었다.
"천황이 친정하는 제국이 되었소. 천명이 바뀐 마당에, 일개 외교관인 내가 천황의 국서를 에도 시절의 낡은 격식으로 고쳐 쓰란 말이오? 나 역시 되돌릴 수 없고, 바꿀 수도 없소."
모리야마가 창문 너머 공터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바깥에서는 낭인들의 쇠도끼 소리와 함께 조선 군관들의 비명이 뒤섞여 올라오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저 아래 설바카라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시오? 저들은 발을 넘지 않고 있소. 경계를 넘지 않고 제 쪽 목바카라을 땔감 삼아 쪼갰을 뿐이지. 그런데 조선의 수문군들이 창칼을 들이대고 위협하다 사단이 났다면…… 그건 온전히 조선 측의 과격한 무력 도발이 되는 법이오."
사내가 비스듬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저 성난 낭인들 중 단 한 놈이라도 조선군의 창끝에 피를 흘리는 순간, 바깥의 일은 더 이상 외교의 문제가 아니게 되오. 제국 정부는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부산포 앞바다에 철갑 군함을 띄울 것이오. 함포 몇 방이면 이 초량왜관뿐 아니라 저 동래부 동헌까지 쑥대밭이 되는 건 한나절도 걸리지 않소."
동준의 소맷자락이 바르르 떨렸다.
어떤 조약의 문구도, 사역원의 해묵은 전례도 떠오르지 않았다. 모리야마의 찻잔 너머로 피어오르는 김조차 칼날처럼 보였다. 말문이 막힌 것이, 진정 논리가 없어서인지, 밖에서 목바카라이 쓰러졌기 때문인지 스스로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
말은 흩어졌고, 칼날은 제 목을 겨누고 있었다.
동준의 등 뒤로 식은땀이 서늘하게 흘러내렸다.
"물러서라, 이놈들!”
박무혁의 일갈과 함께 소나무 목바카라 창살 틈새로 장창 십여 자루가 일제히 짓쳐 나갔다.
서슬 퍼런 무쇠 창날들이 도끼를 든 낭인의 가슴팍 한 뼘 코앞에 멈추어 섰다. 반 걸음만 앞으로 상체를 기울여도 흉골이 꿰뚫릴 거리였다.
"설바카라을 훼손하고 난출(闌出)을 꾀하는 자는 양국 맹약에 따라 단벌, 즉시 참형이다."
도끼를 치켜들었던 낭인들의 팔이 멈칫 굳었다.
그러나 이들은 물러서지도, 앞으로 나아가지도 않았다. 두 발을 왜관 안쪽 흙바닥에 못 박듯 딛고 선 채, 비스듬히 몸을 꺾어 쇠도끼를 다시 내리찍었다.
허연 소나무 속살이 뜯겨 나가며 가시가 튀었다. 창날이 닿지 않는 각도를 기막히게 타고 넘는 도끼질이었다.
"난출? 일죄?"
사내의 누렇게 뜬 얼굴 위로 조소가 번졌다. 제 발밑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혀를 찼다.
"저기 제찰비에 뭐라 새겨져 있는지 몰라 묻소? '경계 밖으로 나간 자(出於界限外者)'를 벤다 했지, 제 땅에 두 발 붙이고 서서 제 쪽 나무를 패는 자를 죽이라는 조항이 대체 어디 있단 말이오."
선두에 선 군졸의 장창이 앞으로 밀려들었다.
낭인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도끼 머리로 창날을 쳐냈다. 쨍, 하는 둔탁한 쇳소리가 울렸다.
"우린 조선 땅을 단 한 치도 밟지 않았소. 왜관에 쌀이 끊겨 땔감이라도 해다 죽을 쑤려고 우리 울타리를 찍어내는 것뿐인데 어찌 칼부터 들이민단 말이오? 찔러보시오. 어디 찔러봐."
사내가 가슴팍을 헤치며 앙상한 갈비뼈를 창날 코앞으로 바짝 들이밀었다.
목바카라 안쪽의 낭인 수십 명이 몽둥이와 칼집을 두드리며 웃어댔다.
다른 쪽 기둥에 또 하나의 도끼날이 박혔다.
무혁은 쌍수도 손잡이를 틀어쥔 채 움직이지 못했다. 군관들과 함께 대열 한구석에 서 있던 아직 앳된 얼굴의 왜학별차(倭學別差) 현석운(玄昔運)이 목을 놓아 외쳤다.
"여기 단 한놈도 피를 흘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저들이 노리는 것은 목바카라이 아니라, 군함을 끌고 올 핑계입니다! 실수로 창끝에 스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목바카라 너머 낭인들의 발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왜관 땅에 붙박여 있었고, 쇠도끼질은 더욱 맹렬해졌다.
"대장, 기둥이 기웁니다!"
소나무 밑동이 쪼개지며 버팀목이 조선 땅 쪽으로 꺾여 들었다. 무혁은 칼을 쥐고도 내리치지 못했고, 그렇다고 칼을 거두고 기둥만을 붙들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황한 조선 군졸들은 갈피를 못 잡고 사방에서 고함만 질러대고 있었다.
거대한 기둥이 무혁의 오른쪽 어깨를 스치며 내려앉았다.
윽, 하는 비명과 함께 뒤에 서있던 군관 대여섯의 발을 깔아뭉갰다.
이백오십 년 동안 닫혀 있던 설바카라 한 면이 조선 땅을 향해 누워버렸다.
그때였다.
쓰러진 동료들을 잡아 일으키던 무혁의 귓전에서 아우성이 일순간 먼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부서진 목바카라의 파편과 낭인들의 고함 사이로, 있어서는 안 될 소리 하나가 고막을 때리기 시작했다.
칼도, 쇠도끼도 아니었다.
딱, 딱.
마른 돌바닥을 내리찍는 청명한 나막신 소리였다.
거짓말 같은 적막이 피 냄새 자욱한 흙먼지 위로 내려앉았다.
소리는 왜관 바깥쪽, 낭인들이 통나무를 들고 날뛰던 바로 그 목바카라 너머, 삭풍이 몰아치는 조선 땅의 어둠 속에서부터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살기를 뿜어내며 목바카라을 들이받던 낭인들의 고개가 하나둘 뒤로 돌아갔다.
쇠도끼와 통나무를 쥐고 있던 거친 손아귀에서 스르르 힘이 풀려나갔다.
군중들이 양옆으로 갈라졌다. 거대한 파도가 갈라지듯, 시퍼런 칼을 쥐고 날뛰던 사내들이 쥐 죽은 듯 입을 다문 채 길을 텄다.
그 갈라진 틈 사이로, 한 여인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흙 묻은 조선의 무명 치마저고리 따위는 없었다.
기름 한 방울 흐트러짐 없이 정갈하게 틀어 올린 칠흑 같은 머리채는 단검 모양의 은비녀로 단단히 결속되어 있었고, 새하얗게 분을 바른 이마 아래로 드러난 눈썹은 차가운 얼음처럼 곧게 뻗어 있었다.
그리고 여인의 온몸을 감싸고 있는 옷.
눈이 시리도록 선명하고 붉은, 진홍빛 비단 기모노였다.
잿빛 바닷바람과 군졸들의 때 절은 융복, 흙탕물 묻은 낭인들의 누더기가 지배하던 무채색의 국경선 위로, 갓 뿜어낸 선혈 같은 붉은 능라가 서늘하게 번져 들었다.
소맷자락과 옷자락 밑단에는 나카노 가문의 문양인 흰 겨울 동백꽃(寒椿)이 핏빛 비단 위에서 섬뜩하리만치 정교하게 피어나 있었고, 가슴팍을 동여맨 검은 오비(帯) 사이에는 상급 무가의 여인만이 찰 수 있는 흑단나무 손잡이의 호신용 단도가 단정히 꽂혀 있었다.
칼기름 냄새와 땀내에 찌든 아수라장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여인의 자태는, 마치 먹으로 그린 삭막한 산수화 한가운데에 시뻘건 인주를 내리찍은 듯한 섬뜩한 이질감이었다.
그 자체로 숨이 멎을 듯 서늘한 하나의 단면(斷面)이었다.
낭인들은 칼을 쥐고도 감히 손을 뻗지 못했다.
본토의 칼잡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옷이었다.
신정부의 총포 앞에서도 끝내 무릎 꿇지 않고 죽어간 도쿠가와 가문의 최후의 보루, 아이즈번 상급 무사의 서슬 시퍼런 기백이 그 붉은 비단 자락 위로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 거칠게 부대껴온 사내들은, 평생 기모노를 입은 여인을 왜관 안팎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초량왜관은 이백 년간 여인의 발길을 엄히 틀어막은 철저한 금녀(禁女)의 땅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여인은, 빗장을 부수고 뛰쳐나가려던 자들의 등 뒤, 저 캄캄한 조선의 강토에서부터 제 발로 걸어 설바카라문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여인은 낭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시선은 오직 정면, 부서져 가던 소나무 목바카라의 문을 향해 있었다.
나막신 소리가 멎었다.
여인은 마침내 쓰러진 목바카라 사이, 비틀린 설바카라문 앞에 섰다.
창살 너머로 조선 수문군의 장창들이 여인의 가슴팍을 겨누고 있었으나, 그녀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여인이 소맷자락을 천천히 걷어 올렸다.
백옥처럼 희고 단단한 손이 목바카라의 빗장을 잡았다.
덜컥,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여인은 제 손으로 이백오십 년 동안 닫혀 있던 국경의 문을 거침없이 열어젖혔다.
문이 열렸다.
바닷바람이 들이치며 여인의 진홍빛 옷자락을 팽팽하게 날렸다.
여인은 나막신을 끌어, 조선의 영토인 설바카라문 밖에서 왜관 안 마른 흙바닥 위로 첫발을 내디뎠다.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역범월(逆犯越)이었다.
"……!"
수문군 선두에서 장창 대열을 지휘하던 박무혁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손에 들린 칼날이 미세하게 떨렸다.
육 년 전, 서해의 차가운 갯바위에서 피를 흘리며 무릎을 꿇었던 그 도망자. 법대로 목을 치라 당당히 고개를 들었던 그 여인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 위해 제 발로 이 사지(死地)의 설바카라을 넘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여인은 굳어버린 낭인들의 틈새를 가르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시선은 공터 너머, 왜관의 중심인 배향대청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 배향대청 높은 툇마루 끝에는 안동준이 서 있었다.
대청 문풍지를 흔들던 굉음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동준은 툇마루 난간을 짚은 채 마당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무너진 설바카라문 틈새로, 굳어버린 낭인들의 대열이 양옆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흙먼지와 장창의 숲을 가르고 한 여인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붉은 기모노의 치맛자락이 마른 돌바닥 위를 스쳤다.
여인은 뒤를 돌아보지도, 낭인들의 서슬 퍼런 칼날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직 왜관의 중심, 배향대청 높은 툇마루에 얼어붙어 있는 동준을 향해 똑바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숨이 멎었다.
폐부가 얼음물에 잠긴 듯 턱 끝이 차갑게 굳어 들어갔다.
칠 년 전 동래의 차가운 가을밤, 횃불 아래서 마주했던 바로 그 서늘한 눈동자였다.
슬픔도, 두려움도 비치지 않는, 칼날처럼 메마른 눈빛.
여인은 배향대청 돌계단을 밟고 올라와, 마루 끝에 얼어붙은 동준의 코앞 세 보 거리에 멈추어 섰다.
흐트러짐 없는 동작으로 진홍빛 옷자락을 무릎 아래로 정갈하게 여며 깔며 차가운 툇마루 위에 단정히 무릎을 꿇었다. 양손을 모아 마른 나무 바닥을 짚은 채, 상체를 깊이 숙였다.
정적을 찢는 맑고 서늘한 조선어가 여인의 붉은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죄인(罪人), 나카노 치즈루. 조선의 설바카라을 넘었습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동준의 눈앞으로, 붉은 피보다 더 붉은 비단 자락이 아득하게 번져가고 있었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