쌉T 라는 남자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

쌉T야 결혼식은 안 해도 피로연은 꼭 해야 한다. 니가 참석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우린 호피만 있으면 되니까.

“너 T지?”

“쌉T”


어쩐지. 상담하는 자세가 공감은 없더라니.


나는 F

서로 이해하자고 들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T와 F.

기본값이 다름에서 시작하면 분명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3년 전.


쌉T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친구들 모인 단톡방에 가끔 등장해서 한마디 뚝 던지고 사라진다.

그러다 또 나타나 툭 던지고 사라진다.

굉장히 짧고 명확하다. 군더더기 없다.

웃기다.


이 방에 모인 친구들은 만나면 술을 마신다. 그러니까 술을 마시려고 만난다고 봐야 한다. 거의 장소는 서울.

나는 서울 모임에 참여하려면 고스란히 하루를 써야 한다.

자주 가지도 못하는데 술만 먹고 오긴 아쉽다. 같은 날 약속을 두 개 이상 잡거나, 미술관을 가거나, 다른 활동을 넣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모임 날엔 다른 일정이 없다. 그래도 그 남자를 보러 가봐야 할 것 같다. 친구들 말로는 술도 안 마시면서 끝까지 남아 있다고 한다. 그게 신기하단다. 나는 할 말만 하고 사라지는 저 남자가 궁금하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그날도 어김없이 친구들은 단톡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갑자기 평소에 잘 나타나지 않는 여자애가 대화에 끼어든다.

같이 있지만, 인사도 몇 번 안 해 본 친구다. 의외다. 어쩐 일이래. 다들 인사를 나누고 하던 이야기를 이어간다.

갑자기 그 친구가 자기 남자친구 이야기를 꺼낸다.

새로 사귄 남자친구 자랑을 하고 싶은가 보다. 몇 마디 들어준다. 그래 여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잠깐. 이 연애의 남주가 누군데?


쌉T


눈을 의심했다. 누구라고? 머? 갑자기?

여자애가 수줍어한다. 거짓말이겠지. 남자는 뭐하고 여자가 말을 하는 건데. 친구들은 쌉T를 소환했다. 운전 중이라 톡을 못한단다. 머래. 나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기사 우린 그 둘에 대해 정보가 없었다. 도무지 연결이 안 됐다.


며칠 뒤

단톡에 사진 한 장이 올라온다.

아침, 어느 커피숍 야외 테라스, 빨간 미니스커트, 헝클어진 긴 곱슬머리, 여자의 뒷모습.


올린 사람 쌉T


댄장.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인가.

그럼 그 커밍아웃이 사실이라고?


사진이 그게 뭐냐? 남친이 안티네.

여자친구 이쁘게 찍어줘야지.

아침부터 거긴 왜 간 거야?

어제 간 거야? 거기 송도 나도 그 공연장 가봤는데.

거기 호텔이랑 카지노도 있더라.


사진 한 장 올렸을 뿐인데 친구들은 구석구석 살피며 한마디씩 거든다.


아니 저 여자애는 머리가 왜 저래? 빗질도 안 했어? 그럼 묶든지. 정리도 안 했나?

괜시리 트집을 잡아본다. 그냥 속으로만.


또 사진이 올라온다.

뭐야 저건. 테이블 가득 음식이 꽉 차 있다. 빈틈이 없다. 퓨전인가. 음식 이름도 모르겠다. 친구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또 한마디씩 남긴다.


음식이 왜 이리 많아? 둘이 저걸 다 먹는다고? 사육하냐? 보기만 해도 느끼해.

뭐라고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댄장댄장.


둘이 단톡을 들락날락하더니 어느 날 등장한 쌉T는 내년쯤 결혼할 거라고 한다.

우리는 또 달려든다.


그래? 그럼 피로연은?

그냥 조용히 가족끼리 하려고

안대~~우리 결혼식 가본 지도 오래됐어. 꼭 결혼식 해야 해.


우리는 피로연 드레스코드를 정했다.

호피.

결혼식이 중하냐? 우리가 호피 입을 날이 되는 게 중하지.


다들 검색한다. 옷부터 시작해서 조금이라도 호피 무늬가 들어 있는 사진들이 올라온다. 신나게 떠든다.

쌉T야 결혼식은 안 해도 피로연은 꼭 해야 한다. 니가 참석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우린 호피만 있으면 되니까.


쌉T는 사라졌다. 친구들은 변함없이 단톡에 남아 떠든다.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게, 전혀 인상 깊지 않게, 쌉T가 다시 들어왔다. 친구들은 계속 떠든다.


여자애 하나가 쌉T랑 게임 이야기를 한다. 야구 이야기를 한다. 둘이 이야기를 하다가 쌉T는 또 사라졌다.

단톡은 깨졌다. 그리고 나는 누가 부른지 모른 채 새로운 단톡에 끼어 있다. 누군가 쌉T를 데려왔다.


우린 다시 같은 단톡에서 만났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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