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프롬프트. [굶주린 자의 습성]

by민경민

영화평론가의 AI 영화감독 데뷔기

여덟 번째 프롬프트. [굶주린 자의 습성]


어릴 적 가난했던 나는, 나이가 들어도 바뀌지 않는 습관을 하나 가지고 있다. 시장이나 마트를 가면 물건 가격을 빠르게 비교해 보고 가장 가성비가 좋은 상품을 찾으려 애를 쓰는 것이다. 값이 싸다고 무조건 가성비 제품도 아니고, 반대로 비싸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상품도 아니다. 또한 그런 노력이 언제나 통하는 것도 아닌데, 최근에는 종합 견과류 제품을 싼 가격만 보고 덜컥 샀다가 아몬드나 호두 같은 견과류 대신 저렴한 해바라기씨만 잔뜩 들어있는 걸 보고 대단히 실망한 적이 있다(해바라기씨도 좋은 성분이 많다고 한다). 한 방 먹은 기분으로 며칠 햄스터로 지내다 보면, 속된 말로 눈탱이 치는 기업들의 속임수를 증오하다가도 그런 방법이 의외로 시장에서 잘 먹힌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그럼 나도 한번 써먹어 볼까.


프로토타입을 몇 개 만들다 보니 나도 어느 정도 AI 영상 제작에 대해 장점과 한계점을 알게 되어서 궁극적으로는 이걸 실용적으로 잘 쓸 수 없을까, 그런 궁리를 하게 되었다. 물론 진지한 영화를 제작하기에는 불확실한 프로젝트에 수백만 원을 쏟아부을 여력도 없었거니와, 그렇다고 투자를 받기에 내게 무슨 확실한 이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당장은 매주 글을 쓰고 있었으니 시간을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하던 일을 하면서 겸사겸사 활용해 볼 방안을 곰곰히 생각해 보니, 쓰던 글을 AI를 이용해서 유튜브로 옮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사 초기에도 우리가 본격적으로 ‘영화’라고 지칭하는 컨티뉴이티 편집에 기반한 내러티브 영화가 먼저 탄생한 게 아니었다. 기록 영화와 더불어 뉴스릴이라고 하는 일종의 시사 뉴스 필름과 풍경을 담은 풍경 영화가 먼저 등장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내가 AI 영화를 만들고 있는 과정은 거의 초기 영화의 발전사와 흡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달리 말하면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사람 생각하는 게 다 똑같다는 거 아닐까?


그 무렵에 내가 접한 새로운 AI 기술은 Notebook LM이라는 구글의 문서 작성, 보관 도구였는데, 원래는 그렇게 유용한 툴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AI 문서 요약 기능이 생겼고, 문서를 요약해 가상의 AI 진행자 두 명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라디오처럼 들려주기 시작했는데, 그게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AI 요약 자체의 품질이나 라디오 기능이 생긴 게 신기했다기보다 한국어 화자가 들려주는 억양이나 구어체 품질이 당시 그 어떤 AI 모델보다도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아니’, ‘뭐 이런’, ‘사실 ~하잖아요’ 같은 구어체 말투, ‘와~’하는 감탄사, ‘음~’, ‘오’ 하는 작은 추임새들이 정말로 일반인이 대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라디오 진행자가 시작할 때 다소 힘차게 내뱉는 인사말, 의문스러운 이야기에는 톤을 낮추며 속삭이듯 하는 음의 높낮이, 그런 말투 하나하나가 사람이 녹음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상에서 소리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글을 쓰는 내내 했기 때문에 더 적기가 민망하지만, 특히 대사를 형성하는 인물의 발화는 더더욱 중요했다. 왜냐하면 그게 연기의 핵심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현시점에도 나는 AI 영상 모델이 대사를 어색하게 해서 큰 고통을 받고 있을 정도니, 이 부분 역시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멋지게 액션을 마친 주인공이 ‘훗, 이 정도쯤이야’하는 대사를 번역기 TTS 말투로 바카라을 읽듯 말한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끔찍한가. 대사 하나 때문에 영상 전체가 엉망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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