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2장 부부닭강정

by김광일

"아저씨. 금방 돼요?"

골목 초입, 닭강정 튀기는 냄새에 발길을 멈춘 통통한 초등학생 하나가 유리창에 얼굴을 갖다 대며 가게 아저씨에게 물었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그 아저씨는 올해 쉰다섯 인 광수의 아버지 박덕수였다.

"지금은 좀 시간이 걸리는데. 학교 끝나고 오면 어떨까? 그때 딱 맞게 나와."

덕수가 난처한 얼굴로 말하자 아이의 눈에서 아쉬움이 뚝뚝 떨어졌다.

"네. 아저씨. 대신에 많이 많이 튀겨주세요."

"알았어. 그때 맞춰서 맛있게 튀겨놓을게."

아이는 씩씩한 걸음으로 걸어갔다. 토실한 엉덩이가 걸음마다 좌우로 흔들렸다. 덕수는 그 뒷모습을 흐뭇하게 보다가 기름 앞으로 돌아섰다. 아이가 오후에 정말 올지는 알 수 없었다. 오겠다고 하고 안 오는 아이가 열에 아홉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늘 그 아홉을 위해 튀겨두었다.

"단골이 많아야 하는데."

한숨을 내쉬며 영숙이 말했다. 영숙은 가게 안쪽에서 양념 솥을 저으며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러게 말이야. 요즘엔 다이어트다 뭐다 해서 애들이 간식을 잘 안 먹어. 삐쩍 마른 게 뭐가 좋다고. 그런데 광수는 아직 학교 안 갔어?"

그때 요란한 신발 소리가 났다. 군청색 활동복을 입은 광수가 가게 유리창에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학교 방침상 칙칙한 활동복을 입긴 했지만 양말은 색이 다른 짝짝이였다.

"저요, 지금 가요."

"야, 녀석아. 얼굴이 왜 다 죽어가는 모양이냐. 저승사자가 명부 들고 찾아왔다가 이미 볼일 끝난 줄 알고 돌아설 낯짝이네."

"뭐요, 내가 어때서요?"

"눈 밑이 시커멓다. 녀석아. 집이 음식점을 하는데 식당 아들이 그렇게 삐쩍 말라서야 쓰겠냐."

덕수의 핀잔에 영숙이 나서서 말렸다.

"애한테 왜 그래요. 사춘기 때는 다 그래요."

조금 전까지 다이어트 열풍을 비판하던 영숙이었지만 자기 아들만큼은 예외였다. 광수는 어머니 뒤로 슬쩍 몸을 숨겼다가 그대로 튀어나갔다.

"엄마, 아빠. 갈게. 이따 보셔."

광수는 새벽에 본 것 때문에 아직도 심장이 빨리 뛰고 있었다. 신나는 기분으로 골목을 뛰었다. 골목길 옆으로 플라타너스가 도미노처럼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시내 큰길의 가로수는 몇 해 전에 전부 이팝나무로 갈아엎었는데 이 골목만은 그대로 남았다. 재개발이 열 번쯤 밀린 동네라 나무를 뽑을 이유도 새로 심을 이유도 없었다. 장마 끝의 넓은 잎들이 아직 물기를 머금고 있다가 광수가 지나갈 때마다 머리 위로 몇 방울씩 떨어뜨렸다. 이 길 끝에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형제처럼 모여 있었다. 삼십 년 전에 셋을 나란히 지어놓은 것이다. 아이 하나가 여덟 살에 이 골목에 들어와 열아홉에 나갈 때까지 매일 같은 플라타너스 밑을 지나게 되었다. 광수도 십일 년 동안 같은 길을 걸었다.

광수가 떠나고 나서 덕수는 초벌 한 닭강정을 건져 채반에 올려 식혔다. 삼십 분쯤 식힌 뒤에 두 번째로 튀기고 영숙이 웍에 넣어 양념 옷을 입히면, 점심 무렵에는 진열대에 낼 수 있었다. 진짜 손님은 학교가 파하는 오후 세 시부터다.

학생수가 많던 시절에는 학교 근처 가게들이 다 잘됐다. 문방구는 아이들로 미어터졌고, 분식집에서는 어묵과 떡볶이를 바쁘게 팔았고, 좌판을 벌여 솜사탕이며 쪽자를 팔던 노점상도 돈깨나 만지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제일 잘되던 문방구가 먼저 사라졌고 분식점도 사라졌고 여기만 남았다. 문방구 주인은 폐업하던 날 셔터를 내리면서 덕수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했다. 서로 물건을 팔아준 적도 없는 사이였지만, 그것은 같은 골목에서 전쟁 같은 시절을 통과한 사람끼리의 전우애 같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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