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수와 같은 반인 윤하늬는 석식을 마치고 학교를 나섰다. 사 층에서 내려오는 길에 이 층 교무실 앞에서 담임과 마주쳤다. 지구과학을 가르치는 전말숙이었다.
"집에 가니?"
“네."
“어. 잠깐만.”
짧게 인사하고 지나치려는 하늬를 담임이 불러 세웠다.
"너, 이번 시월에 농장 하나 빌려서 유성우 보러 가는데 같이 갈래?"
"예? 저는 아스트라도 아닌데요."
아스트라는 교내 천문 동아리 이름이었다.
“상관없어. 학년 제한도 없고. 소원 빌겠다고 가겠다는 애들이 꽤 많아."
"생각해 보고 말씀드릴게요."
하늬는 과외가 있어서요,라는 말이 혀끝까지 올라왔다가 삼켰다. 가방끈을 쥔 손에 땀이 뱄다. 학기 초에 플루트 과외를 받는다고 야간자율학습을 면제받은 뒤로 담임은 두 번 다시 묻지 않았다. 한 달에 백만 원이 넘는 교습비와 천만 원에 가까운 악기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으면 곤란했을 텐데 그것도 묻지 않았다. 이 작은 동네에서 담임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 그러렴. 한번 보면 평생 기억에 남는 선물이 될 거야.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
"네."
하늬는 계단을 두 칸씩 내려갔다. 교문을 나서려는데 운동장 철봉에 거꾸로 매달린 광수를 보았다. 사실 먼저 보인 것은 짝짝이 양말이었다. 파란 것 하나와 노란 것 하나. 무릎을 걸고 팔을 늘어뜨린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저러고 있었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 있었다.
옆집에 살면서 어릴 때부터 봐온 애였다. 초등학교 때는 광수가 알록달록한 우비를 입고 나오면 일부러 열 걸음쯤 떨어져 걸었다. 같은 골목 사는 애가 저러고 있으면 자기까지 이상한 애가 될 것 같았다. 하늬는 광수를 지나쳐 공유 전기자전거의 잠금을 풀었다.
"야. 윤하늬."
광수가 뒤늦게 몸을 일으켜 이름을 불렀다. 하늬는 못 들은 척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는 이미 학교 모퉁이를 돌아 광수와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자 투명한 소주병 열두 개가 일렬로 서서 하늬를 맞았다. 속까지 싹 비워낸 투명한 쌍둥이 열두 녀석이 문소리에 일제히 누가 왔나 고개를 쳐드는 형색이었다. 그중 몇 개에는 담배꽁초가 들어 있었다. 창문을 닫아둔 집 안 공기가 얼굴을 덮쳤다.
"아빠. 이게 다 뭐야. 창문은 왜 이렇게 꼭꼭 닫았어."
"어. 왔냐."
쉰이 넘은 남자가 이불속에서 턱수염이 가득한 얼굴을 내밀었다. 목소리가 이불속에서 나오다 만 것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하늬는 어두운 방들을 지나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었다. 찬 공기가 밀려들자 남자가 마른기침을 했다.
"엄마는 아직이야?"
"응. 아직 목포야. 아예 거기 좌판을 깔았나 봐. 네 언니가 거기 있다는데 그냥 돌아올 수 있겠냐."
"밥은?"
"응.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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