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어려서부터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안타까웠다. 모국어도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어를 배우는 것보다 독서를 하며 사고력을 넓히는 것이 우선이라고도 생각했고, 닭장같은 학원에서 수학 문제를 다 풀 때까지 갇혀 있는 것보다 집이나 놀이터에서 자유롭게 공상하고 뛰노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는 여자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둥 학원 선생님들로 부터 말로 상처를 받은 경험도 있다. 그래서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주위의 명문대생들에게 언제부터 학원에 다녔는지 제법 물어보기도 했다. 아주 어려서부터 다녔다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대개는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시절 추가 학습의 필요성을 느껴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요청을 하기까지는 학원에 보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학원비도 들지 않아 좋아, 공부에 지레 지쳐버릴 위험도 없어 좋아, 일석이조가 아닌가 말이다.
문제는 점점 조바심이 난다는 점이다. 중학교 3학년이 되도록 첫째 아이는 학원에 보내달라는 요청을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집에서 자율적으로, 그리고 꾸준히 공부를 하지도 않는다. 지켜보다 못해 '이럴 거면 학원에 다니던가'를 시전하니 아이들은 학원이 더욱 구미에 당기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다가 요며칠 집에서 아이와 함께 영어 수학 공부를 하고 있다. 학교 공부가 후달리는지 드디어 도움을 요청하고 나선 것이다. 아이가 엄마와 함께 공부하기를 요청하다니, 그야말로 ‘집학원’이 되었다. 기초가 전혀 없던 아이에게 영어문법을 하나씩 짚어주었더니 아이의 눈이 빛났다. 그저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하루 이틀 가르치다 보니 ”이것도 모르니“ 또는 “어제 이야기해줬잖니”라는 등의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무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생각을 거치지 않은 말을 애써 참는 이유는 먼저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릴까 염려되기 때문이고, 다음으로는 이제 엄마랑 공부하지 않겠다고 나올까 봐 조바심이 나기 때문이다. ‘집학원’의 원만한 운영을 위해서 무엇보다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다.
또 유의할 사항이 몇 가지 있다. 아이가 공부할 마음의 준비가 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아이의 마음이 상하지 않으면서도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혜롭게 구슬러야 한다. 아이가 지루해 하는 기색이 보이면 성에 차지 않더라도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결과가 좋지 않아 내심 실망스럽더라도 마음을 고쳐먹고 진심으로 응원해 주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새 내 지력으로는 더 이상 아이를 가르칠 수 없는 순간이, 내 품에 품기에는 아이의 몸도 마음도 훌쩍 자라버린 순간이 올 것이다. 그 날이 오기까지는 집학원을 열심히 운영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