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고 있다. 워낙 요리에 취미가 없기도 하고 언젠가부터 거의 손을 놓다시피 했던 터라 제육볶음 같은 간단 요리 위주로 하는 중이다. 어제는 메뉴를 추천 받았는데, 비가 오니 김치전을 해먹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흔쾌히 동의하고 생각해 보니 일단 김치가 넉넉하지 않았고, 김치국물을 손에 묻히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김치전은 식이섬유와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이었으므로 단백질이 들어간 다른 메뉴를 따로 준비해야 하는 어려움(?)이 예상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녹두전이다. 불린 녹두를 갈아 돼지고기 다짐육, 찹쌀가루, 숙주나물, 소금 등(위에 서술한 이유로 역시나 김치를 짜서 다져 넣는 일은 건너 뛰기로 했다)을 넣고 부치면 단백질과 맛을 동시에 챙길 수 있지 않은가! 마침 최근 쌀국수를 만들고 남은 숙주나물도 냉장고에 있고 녹두도 집에 있으므로 돼지고기 다짐육만 사가면 될 터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녹두를 씻어 불리는 일부터 시작하여 저녁 식사를 정성스레 준비했다. 그런데 낮잠을 실컷 자고 일어난 둘째 아이가 녹두전을 보자마자 '김치전 한다고 했잖아요.'라며 방문을 닫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식사가 시작되어도 둘째는 나오지 않았고, 둘째가 없는 채로 식사가 마무리 되었다. 나는 울화가 치밀었다. 이건 식사를 준비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조금이라도 먹는 게 효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 안 들으면 미국 여행 함께 못 간다 등 온갖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런데 둘째가 한 마디 했다.
"제가 전부터 녹두전 싫다고 했잖아요."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둘째가 녹두전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는 워낙 싫다고 하는 음식이 많아서 나는 나대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녹두전을 먹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것 자체가 기억이 전혀 안 난다는 사실에 미안함을 느꼈다.
흥, 그래도 그렇지. 녹두전이 뭐가 어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