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타지 않고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킥보드가 현관에 늘 있었다. 가끔 우산 걸이의 역할을 하거나 무거운 짐을 나를 때 사용하는 것이 다였다.
현관에 드나들 때마다 보기가 싫어 진작부터 당근에 내놨지만, 애물단지는 팔리지도 않았다.
오늘 집안 정리를 하다가 보드게임을 포함한 여러 물건을 당근으로 나눔 했다. 그 김에 킥보드도 “나눔”으로 전환을 했는데, 바로 임자가 나타났다.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러 가는 길, 손잡이의 손때가 유달리 검게 느껴졌다. 민망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후련한 마음에, 아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킥보드 나눔 했어. 커피 한 잔 하고 들어갈게.”
아뿔싸, 아이가 대번에 전화를 해왔다. 허락도 받지 않고 킥보드를 줘버렸다고, 다시 찾아오라고 성화인 것이었다. 당혹스러웠다. 일단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전화를 끊었다.
만원의 값어치도 못하는 물건이, 아이에게는 애착이 가는 물건이었는가 보다.
타지도 않을 킥보드를 새로 사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이 말대로 다시 찾으러 갈 수도 없고,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걱정이다.
물어봤어야 하는데.
아니, 물어봤으면 안 된다고 했을 테니 현관의 킥보드를 속시원히 치울 수 없었겠지.
그래도 물어보아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