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9.14)
아가야, 안녕?
나는 너를 품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야.
그런데 있잖아,
살다보면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그런 전환점을 맞이하곤 해.
오늘이 바로 그 날이야.
특별한 계기가 있거나,
어떤 사건이 있진 않았어.
그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가능성이 있을지 없을지도 아직 모르는,
너를 생각하며
나는 살아보려 해.
네가 내게 안길 어느 날을 기대하며
나는 여러가지 준비를 해보려 해.
나는 조울증과 PTSD, 그리고 당뇨가 있는 환자야.
너를 만나기 위해서는
나는 일단 단약을 해야 해.
또는 입원을 하는 기간이 필요할 수도 있어.
단약을 해나가는 기간 동안
내 정신질환이 재발할 수도 있어.
모든 걸 감수하고,
천천히, 나를 먼저 가장 다정하게 돌보며
너를 만나러 가볼까 해.
너만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겠다는 얘기가 아니야.
나는 나를 먼저 살필 거야.
그게 오히려 너를 위한 준비라고 난 생각해.
어쩌면 느닷없이 왜 너를 만나고자
이런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나도 어리둥절하기도 해.
그렇지만 어떤 생명을 품기 위해서,
내가 나 스스로를 이렇게 살피려고 노력하고자 한다는
내 다짐이, 그런 나 자신이 너무 대견해.
너를 만나게 된다면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애틋함을 느끼게 되겠지.
그리하여 나에 대한 사랑도 느끼게 되겠지.
고마워,
나의 삶이 이토록 찬란하게 희망으로 반짝일 수 있다는 걸,
나를 돌보는 일이 이렇게 숭고할 수 있다는 걸,
넌 태어나기도 전에 나에게 가르쳐주고 있어.
종종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쓸 거야.
그 때마다 내가 조금이나마
언젠가 만날지도 모를 너의 생명을,
그리고 나의 삶을,
고마워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아가야,
어쩌면 들판의 꽃일 수도 있고,
날아다니는 꿀벌일 수도 있고,
오늘 내가 스쳐간 바람일 수도 있을,
그저 희망으로 나를 감싸안을 너에게,
나도 웃으며 마음껏 행복하기 위해 노력해볼게.
너에게 쓰는 편지의 마지막은 늘 이렇게 마무리 하려 해.
"아가야,
오늘도 나는 나를 돌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