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법 (3) - 무엇이 '드라마'인가

by김옥미

공연이 끝난 뒤에도 좀처럼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무대가 얼마나 화려했는지, 얼마나 많은 인물이 등장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도

한 사람의 표정과 짧은 침묵, 끝내 내뱉은 한마디만큼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우리는 이미 결말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숨을 죽인다.

나는 그런 순간에 드라마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드라마는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특정 장르를 뜻하지 않는다.

한 편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이름도 아니다.

드라마는 한 인물이 결정적인 상황 앞에서 이전의 자신이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선택을 하는 순간이다.

언제나 달아나던 사람이 돌아서는 순간,

침묵으로 자신을 지키던 사람이 처음으로 입을 여는 순간,

가족만을 지키려던 사람이 낯선 이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기로 하는 순간.

바로 그때 인물의 삶은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관객이 숨을 멈추는 까닭은 그 선택이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돌아선다는 것은 더 이상 도망치는 사람으로 살지 않겠다는 뜻이며,

말한다는 것은 침묵 뒤에 숨지 않겠다는 뜻이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다는 것은 자신만을 지키던 삶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이다.

겉으로 보면 몸짓 하나, 말 한마디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서는 한 사람이 지금까지의 자신과 결별하고 있다.


그래서 극작가는 사건을 길게 늘어놓는 사람이 아니라, 변화의 순간을 준비하는 사람에 가깝다.

무대 위에서 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수많은 대사가 오가더라도

인물이 처음과 끝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이야기는 쉽게 힘을 잃는다.

반대로 아주 단순한 상황이라도 인물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선택을 한다면 그 장면은 강한 드라마가 된다.


다만 사람은 아무런 계기도 없이 갑자기 달라지지 않는다.

평생 침묵하던 사람이 어느 날 이유도 없이 유창한 연설을 시작한다면 관객은 그 변화를 믿지 못한다.

늘 도망치던 사람이 단 한 번의 충고를 듣고 용감하게 돌아선다면

그 선택 역시 작가가 정해 놓은 결말처럼 보일 뿐이다.

변화가 진실하게 느껴지려면 인물이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밟아 온 시간이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균열이 생긴다.

인물은 그 균열을 모른 척하거나 서둘러 감추려 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고, 거짓말을 하고,

다른 사람을 탓하며 자신이 살아오던 방식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나 균열을 덮으려는 행동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만든다.

한 번의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부르고, 외면한 감정은 더욱 거센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인물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행동 때문에 점점 더 궁지로 밀려난다.

마침내 그는 예전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자리에 도착한다.

도망쳐도 잃고, 머물러도 잃는다. 침묵해도 상처받고, 말해도 상처받는다.

무엇을 선택하든 이전의 삶으로 온전히 돌아갈 수는 없다.

바로 그때 인물은 결정해야 한다.

익숙한 두려움을 붙들 것인지, 아직 알 수 없는 변화 쪽으로 한 걸음을 내디딜 것인지.


한 편의 희곡을 이루는 장면들은 인물을 이 순간까지 데려오는 작은 계단과 같다.

각각의 장면이 따로 떨어진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변화를 향해 놓인 계단이 될 때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힘을 얻는다.

그러므로 장면을 쓴다는 것은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 아니다.

인물의 과거와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대사를 주고받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좋은 장면은 인물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지금까지 지켜 온 믿음과 행동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도록 압박한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하게 하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게 하며,

선택하지 않으려던 것을 끝내 선택하게 한다.

그 압박 속에서 인물은 조금씩 드러난다.

평소에는 감춰져 있던 욕망과 두려움이 튀어나오고, 자신조차 몰랐던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난다.

인물이 위기에 놓였을 때 무엇을 선택하는지를 보면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가 원래의 자신이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에 도달하는 순간,

우리는 한 사람이 변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관객이 오래 기억하는 명장면도 대개 이런 순간이다.

사건의 규모가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폭발이 일어나고 누군가 죽고 세상이 무너진다고 해서 반드시 오래 남는 장면이 되는 것은 아니다.

관객의 마음을 붙드는 것은 그 사건 속에서 한 사람의 선택이 바뀌는 순간이다.

누군가 두려움 대신 바카라임을, 침묵 대신 발화를, 집착 대신 용서를 선택할 때

관객은 인물의 변화만을 바라보지 않는다.

자신의 삶에서도 그런 선택이 가능할지 가만히 상상하게 된다.

나도 저 사람처럼 돌아설 수 있을까.

오래도록 삼켜 온 말을 꺼낼 수 있을까.

나를 붙잡고 있던 미움과 두려움을 놓을 수 있을까.

인물의 선택은 관객의 삶에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드라마는 관객을 논리로 설득하는 일이 아니다.

작가의 주장이 옳다고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일도 아니다.

드라마는 한 사람의 변화를 관객이 눈앞에서 함께 겪게 하는 경험이다.

인물이 선택의 문턱에서 망설일 때 관객도 함께 망설이고,

그가 마침내 발을 내디딜 때 관객의 마음도 함께 움직인다.

그 순간 관객은 인물의 변화에 전율하면서 자신의 삶에 아직 남아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변화는 인물에게만 일어나지 않는다.

그 과정이 충분히 쌓여 있다면 관객도 작품을 보기 전의 자리로 완전히 돌아갈 수 없다.

이전에는 당연하게 여기던 것을 의심하고, 외면했던 감정을 바라보며,

자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하게 된다.

무대 위 한 사람의 내적 변화가 객석에 앉은 또 다른 사람의 마음에 작은 균열을 만드는 것이다.


극작가의 일은 바로 그 경험을 상상하는 데서 시작된다.

인물을 변화시키기 위해 사건을 만들고, 그 사건이 선택을 압박하도록 장면을 설계하며,

마침내 한 사람이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는 순간을 준비하는 것.

드라마는 장르의 이름이 아니라 그 (드라마틱한) 순간의 이름이다.

한 사람이 더는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순간,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본 관객마저 작품을 만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순간.

나는 그곳에서 비로소 드라마가 완성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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