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요양병원에 계시다 넘어지는 바람에
무릎 뼈가 부러지셔서 나는 지방으로 부랴부랴 내려왔다.
고향이지만 고향같지 않다.
좋은 기억도 많았겠지만 나의 가족과 나의 집은 여기 있다는 느낌이 들진 않는다.
요양병원에서 아버지를 큰 병원에 모셔다드리고
퇴원수속과 입원수속을 위해
병원 둘을 왔다갔다하고
서류나 절차 때문에 이리저리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내 심장이 계속 빠르게 뛰고
머릿 속은 새하얗고 진정이 되질 않았다.
내가 너무 놀랐나, 그저 힘에 부친가, 싶었다.
생각을 해보자니
아버지가 보태달라던 간병비와
앞으로 나오게 될 병원비를 감당하게 될까봐 무섭나, 싶었다.
숙소까지 따로 잡았는데도 잠 못 이루고 밤을 새다시피 했던 건
아버지에 대한 나의 마음이 혼란스러워서였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부성애를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러나 한 편으로 아버지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폭력적이었고
그런 가정 환경 때문에 나는 나의 폭력 피해를 가족에게 말하지 못했다.
원망하는 건 없다.
다만, 그 시절의 긴장감, 아버지를 보면 괜히 위축되는 마음,
그럼에도 계속 아버지로부터 부성애를 느끼고 싶은 욕구,
이 모든 것들이 양가 감정으로 부딪히면서
나는 속이 계속 울렁거렸던 것이다.
이 멀미로부터 벗어나고싶어서
아버지를 나는 어떻게 하면 좋나,
돈을 보태게 되면 어느정도까지 보태야하나,
나는 나를 보호하는 것도 힘든데,
어디까지가 나를 위한 경계인가,
그런 고민들로 어지러운데
아버지는 병원 면회갔을 때 내게 툭 묻는다.
"올라갈 차비는 있나."
아버지는 내려오기 전에 간병비를 보태라 했지만
막상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돈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저 나에게 차비 있냐고만 물었다.
약봉투 하나 내가 뜯도록 하지 않았다.
스스로 하려고만 하셨고,
얼른 퇴원하고 싶어했다.
나말고도 많은 사연들이 있을테고
힘든 사람들이 있겠지.
나는 부모가 너무 어렵다.
내가 덜 혼란스러웠으면 좋겠다.
그저 사랑할 수 있거나,
그저 미워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일이 닥치고보니
나는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음을 알았다.
어릴 때부터 애착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질 못해서
아버지로부터 그 애착에 대해 바라는 게 있는 것인데,
나는 아버지라는 존재에게
인정받고 싶다, 버려지고 싶지 않다, 지원받고 싶다,
기타 등등을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버지만이 줄수 있는 애착관계가 있을테다.
난 그걸 원한 거다.
내가 만약 아버지를 버리다시피 한다면
그 죄바카라감이 날 힘들게 한다기보다
내가 원하는 애착 관계에 대한 가능성이 영영 사라진다는 게 무서운 거다.
이런 내 마음, 이해받을 수 있을까?
이해받는 게 중요하긴 한가?
나는 그저 일상을 누리고 싶다.
내 마음이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아버지가 평안해졌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이 덜컥 앞서지가 않는다.
그런 내가 무섭고, 그러나 외롭고, 엄마가 그립다.
그립다.
내가 내내 겪어보지도 못한 애착 관계가,
나를 지지해 줄 어른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다독여줄 나 자신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