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지게도, 사실상 나의 꿈은 다 이뤘다.
작가 데뷔를 한 시점부터 그랬다.
모든 게 허무해졌다.
꿈으로 반짝이던 내가
꿈도 없이 살아간다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삶이라는 것이 낯설었다.
그래서 더 큰 공모전,
규모가 있는 지원사업,
여러 수상에 대한 기대
그런 것들이
거창한 척 나에게 꿈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름의 성과에도
나의 꿈에 대한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관객들의 진정어린 눈빛에도,
무척 감사하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었다.
심리치료에서도
이 문제는 꾸준히 언급되었다.
왜 나 자신을 칭찬해주지 못하고
만족하지도 못하게 되어버렸나.
나는 작가가 꿈이었던 게 맞나?
꿈이란 건 무얼까.
지금 생각해보자면,
꿈은, 불가능한 어떤 것이다.
내가 지금 가장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그 무엇.
그리고 가장 자신만만하게 느껴지는 그 무엇.
그 양가적인 '예측'을 다 가지고 있는 역설의 그 무엇.
나는 작가가 되는 데 누구보다 자신만만했다.
그리고 자신만만한 만큼 무섭고 두려웠다.
창작이란 한 글자 한 글자 불가능한 허구와 대련하는 것이기에.
다시 돌아가보자면,
내가 지금 가장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럼에도 가장 자신있다고 느끼는 것.
그건 바로 '생존'이다.
계속해서, 살아나가는, 나의 생명 그 자체다.
당연하게 숨쉴 수 있는 사람이란 없다.
누구나 각자의 호흡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나간다.
그래서 나의 꿈은,
내가 하루라도 더 살아가는 일이다.
무얼 더 이루려고 하지 않고,
최선이 아니라 최강이 되려 하지 않는 것.
어느 카페에서 어떤 문구를 하나 발견하고는 놀랐다.
'질주하지 않고 완주할 것.
속도보다는 방향성을 생각할 것.'
나는 어떻게든 속도를 내서 질주할 생각밖에는 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살아갈 수도 있지.
그런데 나는 질주하는 삶이 내 평생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병증으로 나타났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살아가는 데 있어
완주를 상상하는 즐거움이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제는 감각해보려 한다.
내가 이렇게
오늘 하루 내 꿈을 이뤘음에,
그리고 또 내일이라는 꿈이 있음에
감사하다, 라고 쓰려다
다시 고쳐 쓴다.
나 자신에게 고맙다.
오늘도 살아있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