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02)
아빠 집에 오기 전 나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새벽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gpt를 붙들고 묻고 또 물었다.
이토록 불안한데, 비상시 정신과 약을 더 먹어야 하는지.
gpt의 답변은 이해는 되었지만 나의 답답함은 도무지 풀어주질 못했다.
이제와서 또 아버지에게 가는 일정을 취소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아버지에게 가겠다던 당일에 비행기표를 취소하면서까지 일정을 조정했다.)
막상 아빠 집에 오니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빠는 내 편식을 생각하며 이 곳 저 곳을 소개하며 가자고 했고
가는 곳마다 맛있었고 밥값도 아빠가 다 내주었다.
아빠는 평소에 가고 싶었던 곳을 딸과 함께 가고 싶었던 듯 했다.
눈치를 봐가며 서로 음식을 먹고
(잘 먹나 안 먹나 내가 좀 양보할까 어쩔까 그런 눈치 ㅎㅎ)
사무적인 일들을 나는 돕고 동생이 오지 않았지만
아빠는 서운함을 티내지 않았다.
5년동안 아버지 곁에 있어주시던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바뀌어서 걱정되기도 했지만
성실하고 순수하신 분이었고
새장 이야기를 들으니 너무 웃겨서
(아빠가 강아지를 새로 입양시키면서 반려 새를 데려왔는데
그 새가 새장에서 탈출해서 119 출동하여 새를 잡았다는 뭐 그런 사건....)
아빠만의 재미난 일상도 있었구나,
또 나를 배려하느라 나에게 그 얘기를 전하진 않은걸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보고싶을 때 다시 연락할테니
그때까지는 내려오지말라는 아빠말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 마음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아버지는 이미 내가 온 첫 날에 차비라며 나에게 돈을 쥐어줬지만
얼마간의 돈을 더 쥐어주며
아빠 돈 많다-! 하며 한사코 나의 거절을 거절했다.
나는 40만원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평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 내가 걱정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추모의 공원에 있는 엄마도 잘 보고 왔고
그래,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사실 그럴 일이 없는 거였다.
문득 마음이 강물처럼 평안해졌다.
내가 생각하는 불행이란
그리 쉽게 찾아오지도 않고
혹여나 찾아온다 하여도
나는 쉬이 무너지지 않을 거였다.
그저, 평안하다. 다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