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안녕.
한 방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하나둘 떠났다.
이직을 한 사람도 있고, 해고를 당한 사람도 있다. 비자가 만료되어 어쩔 수 없이 본국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다. 마지막 한 명은 곧 프리랜서로 전향한다고 한다.
다섯 명이 함께 3년, 길게는 4년을 보냈다. 어쩌면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 사이였다. 그런 동료들이 나만 빼고 다 떠났다.
그런데 마음에 동요가 없다.
가끔 이탈리아로 돌아간 동료에게 메시지가 온다. 잘 지내는지, 새로운 소식은 없는지 묻는다. 보고 싶다는 말도 함께. 그 메시지를 읽으면 함께 보냈던 시간이 떠오른다. 같이 웃고 떠들던 시간, 바쁜 날 정신없이 일 하던 시간들. 동료들은 그렇게 한동안 내 옆에 있다가 각자의 길로 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방을 지키는 사람은 내가 됐다.
먼저 카피라이터가 옆자리를 채웠다. 함께 일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는데, 오래 있던 동료처럼 잘 스며들었다. 나와 가장 많이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내가 디자인한 레이아웃에 필요한 카피를 쓴다. 다행히 차분하고 드라마틱하지 않은 성격이다. 그게 마음에 든다.
전 카피라이터는 기분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 사람이었다. 같이 일하다 보면 괜히 힘을 빼는 일이 많았다.
그러고 보니 사람마다 참 다르다.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팀의 분위기도 달라진다.
전에는 다섯 명의 동료들과 웃고 떠드는 시간이 많았다. 지금은 절간처럼 조용하다. 나쁘지 않다.
조용해서 일하는 동안 가끔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쓸 때 좋다. 나는 하루 종일 클래식을 틀어놓는다. 출근하면 음악부터 튼다. 음악이 있어야 디자인 작업도, 글쓰기도 조금 더 집중이 된다. 옆자리가 채워졌으니 이제 마케팅 담당자와 포토그래퍼, 비디오그래퍼도 새로 오겠지.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또 언젠가는 떠날 것이다.
온라인 게임 동료는 회사 안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일 뿐이다. 나는 퇴근 후 동료를 따로 만나거나, 퇴사한 동료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 편도 아니다.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물론 동료로 만나 좋은 사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경우는 아니었다.
한국에서 온라인 게임을 다닐 때도 그랬다.
캐나다로 오기 전 오래 다녔던 마지막 회사의 동료들과도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다. 일부러 끊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캐나다 번호를 갖게 되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면서 관계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내 소식을 누군가에게 따로 전하지도 않았다. 가끔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다른 사람의 계정을 타고 나에게 디엠을 보내기도 했다. 사실 한국에서의 온라인 게임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
야근은 너무 당연했고, 주말 근무도 예외가 아니었다.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을 위해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갑자기 “밖에 있다”는 연락과 함께 다른 장소의 주소를 보내오기도 했다. 그런 일들이 반복됐다.
디자이너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다시는 디자인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캐나다에 왔다.
좋은 선배와 후배도 있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의 온라인 게임생활을 다시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동료는 동료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 같다.
이곳에서도 매일 보는 사람들이 동료다.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고, 웃고 떠들고, 점심을 먹는다.
그러다 퇴근할 시간이 되면 안녕하고 헤어진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만난다. 그게 변하지 않는 일상이다. 살면서 여러 관계가 생긴다.
나는 관계에도 나름의 구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사이가 있고, 동료로 지내는 사이가 있다. 그리고 너와 내가 있다.
모든 관계가 오래 이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고, 모든 사람이 내 삶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은 잠시 내 옆자리에 머물다 떠난다. 그 사람과 함께한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 관계를 계속 이어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때의 자리에서 서로의 하루를 함께 보냈던 사람. 나는 그것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
오늘도 옆자리에 앉은 지 며칠 되지 않은 카피라이터와 점심으로 피자 한 판을 시켰다.
아직은 서로를 알아가는 중이다. 오래 함께 일하게 될 수도 있고, 어느 날 또 각자의 길을 갈 수도 있다.
지금은 그냥 잘 지내면 좋겠다.
잘 지내자, Oliv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