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를 여행한다는 건
여행의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에게 여행이란 일상에서 벗어난 휴식이자 새로운 경험이며, 알지 못했던 세상을 배우는 일이다.
이번 여행은 특히 나 자신을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내가 어떤 성향의 여행자인지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도시 여행자'였다. 휴양지의 안락함보다는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관찰할 때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 그런 나에게 이번 칸쿤에서의 열흘은 낯선 환경과 맞서며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탐험의 시간이었고,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으며 넓은 세상을 배워가는 법을 알게 해 준 순간이었다.
그동안 나의 여행은 늘 도시 곳곳을 누비는 여정이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고, 그 도시의 역사와 이야기가 깃든 장소를 찾아다녔다. 걷다 지치면 공원에서 쉬어갔고, 낯선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잠시 여유를 누리기도 했다. 그렇게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고, 발견하는 도시 여행은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늘 짙은 여운을 남겼다.
지금까지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도시는 시카고와 뉴욕이다. 캐나다와 가까워 비교적 쉽게 떠날 수 있는 미국 여러 도시 중, 그곳에서 만난 미술관의 감동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미술관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마주했던 그 첫인상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선명히 간직되어 있다. 이 기억을 이어 다음 미국 여행으로는 텍사스에 가보고 싶다.
이번에 찾은 곳은 캐나다에서 비행기로 3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멕시코 칸쿤이었다. 떠나기 전부터 이번만큼은 온전한 '쉼'을 위한 여행이었기에, 그동안 읽으려고 아껴두었던 바카라 세 권을 챙겼다. 선베드에 누워 모히토 한 잔을 곁들이며 바카라을 읽고, 뜨거운 낮 동안은 잠시 수영을 즐길 계획이었다.
해가 뜨는 동쪽 해변에 머물며 매일 아침 캐리비안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고 싶었다. 붉은 해의 기운을 온전히 받으며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확언을 건네고, 내 안의 다짐들을 단단하게 다지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그동안 열심히 배워둔 수영 실력을 뽐내며 멋지게 물을 가르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캐나다보다 훨씬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은 수영장 바닥을 달구어, 맨발로는 도저히 딛지 못할 정도였다. 구름 한 점 없이 습기로 가득 찬 날씨는 한국의 한여름을 생각나게 했다.
지금 칸쿤은 우기라는 말에 내심 비나 태풍이 올까 봐 걱정했었는데, 머무는 동안 단 한 번도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 없었다. 오히려 그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유유히 선탠을 즐기는 외국인들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빨갛게 익어가는 몸으로 그 열기를 견뎌내는 모습이 놀라웠다. 몸을 가리는 래쉬가드를 입은 사람은 몇몇의 한국인과 오직 나뿐이었다. 나 역시 하루이틀 정도는 비키니를 입고 선베드에 누워 있어 보았지만, 내 피부는 그 강렬한 태양을 견뎌내지 못했다.
하루 종일 내리쬐는 열기 속에서는 바카라장조차 제대로 넘기기 어려웠다. 결국 챙겨간 세 권의 바카라 중 단 한 권도 온전히 읽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온몸에 햇빛 알레르기인지 모를 붉은 두드러기가 피어올랐다. 결국 멕시코 현지 약국을 찾아가 연고를 사서 발라야 했고, 뒤이어 찾아온 물갈이 때문에 멕시코 택시를 잡아타고 현지 병원까지 가는 소동을 겪었다.
열흘 동안 참 다채로운 경험을 한 셈이다. 그곳에 있을 때는 예상치 못한 상황들에 당황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일상으로 돌아와 돌이켜보니 그 순간들마저 다 좋은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지에서 또 하나 배운 것은, 수영복 차림으로 선베드에 누워 한없이 편안하던 이들이 저녁이 되면 마법처럼 우아하게 드레스 업하고 나타나는 모습이었다. 풀 메이크업을 하고 화려한 귀걸이와 목걸이, 단정한 구두를 착용한 채, 영화 속 주인공 같은 모습으로 식당으로 향하는 그들의 자세였다. 예의를 갖추고 품위 있는 태도가 그 사람을 말해주는 듯했다. 그들의 옷차림은 단순한 멋 부리기가 아니다. 마주 앉은 상대와 공간, 그리고 음식을 준비한 이들을 향한 성숙한 존중의 표현이다. 편안할 때와 격식을 차릴 때를 명확히 구분한 것이다.
나도 해가 지는 저녁에는 예의를 갖춘 모습으로 차려입었다. 한국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항상 잘 차려입고 다녀서 그 모습이 일상이지만, 이들은 예의를 갖춰야 할 장소에서 격식을 지키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다음에 휴양지에 간다면 나도 멋진 드레스와 구두를 한 벌 준비해야겠다.
세상은 이처럼 다양하다. 낯선 환경에서 일어난 일들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일, 예상치 못한 순간을 대처해 내는 자세, 생각과 달리 계획했던 일이 어긋난 날들. 이 모든 게 결국 넓은 세상 밖으로 나가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내 몸에 번진 붉은 두드러기도 어쩌면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이겨내려 애쓴 흔적일 것이다. 낯선 장소에 적응하기 위해 내 몸 안에서 일어난 일들이라 생각하니, 당시에는 심각하게 생각했던 몸의 두드러기 반응도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웃고 넘길 일이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가렵고 따가워 약을 먹고 있지만, 이 또한 세상을 온몸으로 알아가는 좋은 경험이라 믿으며 캐나다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한 번 앓아보았으니, 다음에 다시 칸쿤에 간다면 그때는 그 날씨에 조금 더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