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나라 사이에서, 여권의 색이 바뀌는 날
캐나다에 이민 온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한국을 떠날 때는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언젠가 나이가 들어 생을 마감하는 날이 온다면, 그 마지막도 이 땅일 거라고 자연스럽게 믿었다.
그래서 캐나다에서의 삶은 '잠시 머무는 시간'이 아니라 처음부터 삶 자체였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날들에 큰 불평은 없었다. 낯설었지만 새로운 삶이었고, 도전하는 시간들이 좋았다.
캐나다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 9월 말에 이곳에 정착했다. 눈부시게 물든 단풍을 보며 살았다. 캐나다 국기에 왜 단풍잎이 그려져 있는지, 살아보니 알 것 같았다.
어디를 가도 높게 뻗은 단풍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고, 나는 자주 걸음을 멈춰 나무를 올려다봤다.
숲과 나무, 하늘과 구름, 호수와 바람.
어느 순간부터는 그 풍경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이제 이 풍경 속에 머물 수 있겠구나.'
하지만 아름다운 곳에 산다고 해서 마음속 공허함까지 채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민자라면 한 번쯤 느껴봤을 감정일 것이다.
한국에 잠시 다녀올 때면 편리한 생활과 빠르게 변하는 유행 속에서 필요한 것들을 한가득 챙겨 왔다. 다시 캐나다로 돌아오면 조용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적막은 때로는 외로웠고, 때로는 아늑했고, 편안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나라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것 같은 마음이 들곤 했다.
그 무렵 시민권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 마음먹은 건 올해 초였다. 하지만 쉽게 신청하지 못했다.
서류를 준비하는 일보다 더 어려웠던 건 내 마음이었다.
'정말 한국 국적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었을까.' 출근하는 차 안에서 그 질문이 자주 떠올랐다.
ChatGPT에게도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했다.
영주권과 시민권의 장단점.
답은 늘 비슷했지만, 나는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비교하고, 또 비교하면서 내 마음을 설득할 이유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영주권자로 살아가는 데 가장 신경 쓰였던 것은 거주 의무였다. 최근 5년 가운데 730일 이상 캐나다에 머물러야 한다는 조건.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시민권을 취득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커졌다. 언젠가 한국에서 조금 더 오래 살아보고 싶다면, 오히려 캐나다 시민권이 필요했다.
그게 내가 시민권을 신청한 가장 큰 이유였다.
며칠 전 모든 서류를 제출했다. 이제는 시민권 시험과 심사를 거쳐, 길면 1년 반 정도의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그 시간이 지나면 나는 캐나다 시민이 된다.
가끔 그날을 상상해 본다.
기쁠까. 아니면 허전할까. 아마 두 마음이 함께 올 것 같다.
분명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로 생각하고 살아온 사람인데, 법적으로는 캐나다 사람이 된다.
국적은 바뀌지만, 기억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시민권은 내가 누구인지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어디에서 살아가기로 선택했는지를 인정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두 나라 사이에서 살아가는 마음, 그 마음을 증명하는 여권의 색만 조금 달라질 뿐이다.